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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5. 2024

재즈의 전신 '래그타임' 아시나요?

[김정식의 재즈 에세이]

재즈의 전신, 래그타임(ragtime)


재즈는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을까? 20세기 초 부흥기를 맞은 미국에서 가장 세속적인 문화의 산물로 태어난 이 음악의 탄생 비화를 추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Jazz’라는 명칭부터 그 정확한 기원을 찾을 수 없으며 의미도 불분명하다. 다만 유럽의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흑인들에 의해 연주되기 시작한 래그타임(ragtime)과 고된 노예 생활 속에서 불리던 노래인 블루스와 흑인 영가 등이 혼합되어 재즈라는 독특한 음악이 탄생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Jelly Roll Morton, 김정식 그림

래그타임은 ‘재즈의 전신’이라고 불린다. 대표적인 흑인의 감성이라 할 수 있는 블루스나 흑인 영가의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와 다소 상충되는, 이 경쾌하고 흥겨운 래그타임이 재즈의 전신이라 불린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재즈가 아프리카의 전통 음악에서 시작되어 흑인들의 생활 속에서 서서히 변해온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모여든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탄생시킨 새로운 음악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재즈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가 아프리카에서 흑인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아프리카 문화와 우리 문화는 섞이질 않는다"고 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재즈의 상징적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함과 역동성은 래그타임에서 시작되었다. 폴카, 마치, 그리고 19세기 초 유럽 전역에서 대유행했던 춤곡인 카드리유(쿼드윌, quadrille) 등에서 영향받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강한 2박의 기본 리듬과 많은 당김음(Syncopation)을 사용한 경쾌한 선율이 어우러지며 세상 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독특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Scott Jopline, 김정식 그림

1973년 영화 <The Sting>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스콧 조플린’(Scott Joplin, 1868~1917)의 ‘The Entertainer’나 그의 또 다른 히트곡 ‘The Easy Winners’ 같은 곡들은 재즈 애호가가 아니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래그타임의 대표적인 명곡이다. 우리는 그 표면적인 분위기만으로도 래그타임이 척박한 흑인 노예의 삶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춤을 추기 위한 음악, 혹은 놀이나 쇼를 위한 음악이었다. 남북 전쟁 이후 맞이한 노예해방과 제1차 세계대전의 수혜로 갑작스러운 호황을 맞이한 미국은 새로운 대중문화가 생겨나기에 너무도 적절한 토양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민자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가져온 전통문화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서 녹아 새로운 대중문화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춤이었으며 그것은 음악의 발전을 강하게 이끌었다. 래그타임이 시작된 1800년대 중반부터 미국 전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다양한 춤은 지역마다 소문난 흑인 댄서들이 수시로 만나 경연을 하거나 공연을 열어 뜨거운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터키를 드나들던 흑인 선원들이 추던 이국적인 춤과 스페인의 대표적인 전통춤 볼레로, 그리고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가져온 더블(double)이라는 춤이 천재적인 흑인 춤꾼들의 몸을 통해 새롭게 혼합되고 변형되었다. 

Ragtime Dance, 김정식 그림

그것은 우리에게 낯익은 탭댄스 형태로 변하기도 했고 백인들이 흑인 흉내를 내며 연기하는 단막극 형태의 민스트럴 쇼나 보드빌 쇼에 사용되는 케이크워크(cakewalk) 같은 춤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그리고 도래하는 뉴올리언스의 초기 재즈 시대에도 연주자들은 마주르카, 쇼티쉬, 원스텝 같은 유럽에서 가져온 전통 춤을 위해 연주해야 했다. 남북전쟁 이전인 1842년 미국을 여행하며 쓴 찰스 디킨스의 「아메리칸 노트」에는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많이 살던 낙후된 뉴욕의 ‘파이브 포인츠’에서 벌어지고 있던 황홀한 춤판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춤꾼들 사이에서 새롭게 웃음이 터져 나오고, 여주인도 새롭게 미소 짓고, 남자 주인도 새롭게 자신감이 생기고, 다름 아닌 촛불들도 새롭게 불을 밝힌다. 단독으로 셔플, 둘이서 셔플, 컷, 크로스컷. 손가락을 튕기고, 눈을 굴리고 무릎을 안쪽으로 향하고, 다리 뒤쪽을 앞으로 보이며, 탬버린을 치는 그 사내의 손가락들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발가락과 뒤꿈치로 빙그르르 돈다." 래그타임 시대에 이런 열정적인 춤을 위한 음악을 오직 피아노, 혹은 벤조 등의 악기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자면 힘 있는 연주와 다이내믹한 리듬, 그리고 흥을 북돋는 다양한 연주 기법이 연주자들 사이에서 경쟁하듯 생겨나고 발전했을 것이다. 

James P. Johnson, 김정식 그림

래그타임에서 재즈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임스 P. 존슨과 젤리 롤 몰튼과 같은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개발된 ‘스트라이드 주법’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성큼성큼 걷는 모습에서 ‘stride’라는 명칭이 붙은 것처럼, 왼손으로 강하게 1, 3박과 2, 4박을 옥타브 간격으로 건너뛰며 연주한다. 래그타임은 재즈와 확연히, 분명히 구분된다. 재즈의 대표적인 리듬 형태인 스윙 리듬이 없었으며 악보 없이 자유롭게 연주하는 즉흥 연주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태로도 이 새로운 연주는 미 전역에서 빠르게 유행했으며 유럽으로 건너가 일반 대중은 물론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까지 매료시켰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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