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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19. 2024

예술가에 관한 명상(화가 황주리)

 내가 화가가 된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유난히 말이 없는 딸이 걱정되던 어머니가 다섯 살 되던 무렵 어린 나의 손을 잡고 동네 미술학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그림을 그리는 어린 화가가 되었다. 세상과의 끈을 연결해 준 게 그림이었다. 나는 늘 그걸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십 대까지는 그림이 나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며 유일한 꿈인 동시에 살아내야 할 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육십이 훌쩍 넘어 장하게도 아직도 화가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은 나는 가끔 잘한 일일까 하는 회의가 든다.



일단 살아온 나날만큼 매일매일 그려온 삶의 흔적들이 쌓이고 쌓여, 짐을 잔뜩 등에 지고 내려놓을 곳도 없는 속수무책의 낙타가 된 기분이다. 하긴 낙타가 아닌 존재가 어디 있으랴. 글만 쓰는 사람이 될 걸 그랬다. 평생 무명으로 소설을 쓰다가 죽어서 유명해진 ‘페르난도 페소아’나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되는 꿈을 지니고 살아도 정말 나쁘지 않을 것이다. 노트북 한 대와 책을 쌓아둘 작은 서재 하나면 족할 것이다. 하긴 이렇게 종이 글자를 읽지 않는 시대에 그 두꺼운 책들 또한 누가 읽을 것인가?



언젠가 대구 근대골목에서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 구절을 만나면서, 시 한 구절의 강력한 힘을 느낀 기억이 있다.



또, 음악처럼 가볍고 오래 멀리 가는 게 또 있을까? 아니 모든 인생이 그렇듯, 남의 떡이 커 보이는지도 모른다. 사실 모든 예술은 표현 매체가 다를 뿐 하나다. 슈만이 정신병원 체류 시 절 썼던 악보는 그림이다. 클레의 그림을 닮은 악보가 그림이 아닐 이유가 있을까? 본인 외에는 아무도 해독을 못할 뿐이다. 천재라 불리는 예전의 화가들은 요절하는 바람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의 작가들이 백 세 이상 살면서 작업을 한다면 이 작품들은 다 어디로 갈 것인가? 쓰레기가 되든지, 어딘가에서 숨죽이며 썩지도 못하고 쌓여있든지, 소위 비싼 작품 값을 상징하는 명품 브랜드로 남을 것이다.



예술가여, 너무 오랜 시간 모래성을 쌓아놓고 허물지도 못하는, 너무 오랜 희망과 절망을 걸머지고 체념도 포기도 못 하는 독립운동 같은, 하지만 과연 되찾을 조국은 존재하는 것일까? “언젠가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가끔 이 슬픈 편지를 다시 읽으며 숙연해진다. 누구나 그림을 그리는 오늘날,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는 대신 뜨개질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추운 겨울을 견디는 독거노인들께 따뜻한 스웨터를 선물하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그림은 그릴수록 어렵다. 인생도 그렇다.



어쩌면 세상사 모든 게 운이다. 세상의 불공평함은 작가들 사후에도 계속 존재한다. 솔직히 말해서 어느 때인가 그림이 막 팔리던 시절도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날이 갈수록 그림이 좋아서가 아니라 값이 오를 거라는 기대감으로 그림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주식이 되어버린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사업가가 아닌 예술가라면, 먹고 살 걱정, 재료값 걱정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저 자기 분야에서 매일 진화하는 사람이 되는 것 외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내가 이 나이까지 보고 듣고 느낀 건 지상의 생물체 모두는 에너지를 너무 한꺼번에 쓰면 빨리 소멸한다는 거다. 나는 늘 가늘고 길게 끝까지 살아남는 작가가 되는 꿈을 꾼다.



크게 성공한 작가는 그때부터 가짜와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겠지만, 언젠가 대가 중의 대가 L선생이 누가 봐도 가짜작품을 자기 작품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며 슬픈 생각이 들었다. 크게 성공한 그분이 부럽지 않기 시작한 시점이다.



성공한 화가란 늘 남 좋은 일 시키는 존재이다. 그의 작품은 평생을 공들인 ‘공든 탑’이며, 고가의 그림 값으로 누군가의 재산이 된다. 누군가는 늘 과대 평가되고 누군가는 과소 평가될 것이라 말한 건 ‘헤르만 헤세’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쌓여가는 문명이란 먼저 살다 간 인류의 흔적에 돌 하나 올려놓는 일이다. 어느 영화에선가 이런 앤딩이 인상 깊었다.



‘인간이 최초의 손자국을 동굴 벽에 남긴 순간부터 인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가의 일부가 되었다. -영화 the dig 중에서.



 



나는 가끔 마치 자신이 작고 작가거나 혹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작가라는 상상을 한다. 여전히 몽상가인 나는 수용소 안에서 그 영원히 잊히지 않을 일기를 남긴 ‘안네 프랑크’를 떠올린다. 내게 중요한 건 매일 성장하는 예술가, 매일 성장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아니 죽은 뒤에도.



요즘 젊은 작가들은 이름을 남기는 것에 그리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한다. 그들이 더 지혜로운 건지도 모른다. 작품을 팔 만큼 팔다가 다른 직업으로 바꿔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린다. 고로 존재 한다.’ 라고 믿은 지난 세대의 화가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쳇 지피티가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은근한 불안을 느끼는, 예술가의 이름으로 늙어가는 우리는 이미 공룡화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룡화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구십이 넘은 예술가들을 볼 때 그들이 한그루의 거대한 고목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니 문학을 전공했지만 시 한 줄 남기지 못한 구십이 넘은 우리 어머니를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든다. 어느 시인은 시인이 된 걸 후회한다지만, 나 역시 21세기하고도 오 분의 일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지금 이 시대, 가장 낡은 매체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된 걸 후회한다.



아니 후회하지 못한다. 할 수 없다. 후회하기는 너무 늦었다.



그냥 가자. 뚜벅뚜벅.



 <화가 황주리는 1987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10년을 머물면서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중앙일간지  여러 매체에 그림과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원색과 섬세한 붓터치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어 보는 사람을 힐링하게 만든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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