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회장 '프랑수아 피노'의 소장품
컬렉션의 초상《Portrait of a Collection: Selected Works from the Pinault Collection》
갤러리 송은 9월 4일부터 11월 23일까지 무료 전시
명품 브랜드 구찌, 생 로랑의 모기업인 케어링을 설립한 백만장자, 미술품 경매사인 크리스티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가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의 소장품이 전시되고 있다. 1936년생인 피노는 포브스 추산 280억 달러를 소유한 세계적인 기업가이다. 현재는 그의 아들 프랑수아 앙리에게 2003년과 2005년에 경영권을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다수의 작품을 수집한 컬렉터로 1999년 '피노 컬렉션'을 창립했다. 강남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 중이다.
프랑스와 키노, 출처: 네이버
프랑수아 피노가 설립한 피노 컬렉션은 미술 작품 1만 여 점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 컬렉션 중 하나다. 그의 그림 60점이 한국에 왔다. 2011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전시를 연 후 13년 만이다. 이번에 송은에서 마련한 전시 《Portrait of a Collection: Selected Works from the Pinault Collection》은 피노 컬렉션이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를 미술관으로 단장해 선보인 개관전 《우베르튀르 Ouverture》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되었다.
로비 1층의 얀 보 'Untitled 2020' 전시 전경, 출처: 송은아트스페이스
이러한 사명은 송은의 《Portrait of a Collection》에서도 이어져 이번 전시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베트남 출신의 덴마크 작가 얀 보 전시가 로비 1층에서 비중 있게 소개된다.
얀 보의 작품 세 점은 베트남 전쟁 직후 해로(海路)로 망명한 보트 피플 난민이라는 작가의 배경을 숨기지 않고 작품에서 구현한다. 즉, 식민주의와 기독교 문화의 아이러니한 관계성의 표현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Untitled 2020>은 절단이라는 인위적인 행위를 과감하게 개입시켜 성모자상의 일부를 반듯하게 잘라냈다.
데이비드 해먼스 Rubber Dread, 1989
로비에는 데이비드 해먼스의 작품이 전시된다. 그는 주류 미술계로의 편입을 기피하면서 정치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비판적인데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다섯 점이다. 작품 <Rubber Dread, 1989>가 주목 할만하다. 바람 빠진 자전거 튜브로 땋은 가닥들은 1930년대 자메이카에서 발흥한 종교 ‘라스타파리(Rastafari)’ 신자들의 특징적인 머리 모양 ‘드레드록(dreadlocks)’을 연상시킨다. 작품은 곱슬거린다는 이유로 천대받았던 흑인 노예들의 머리카락과 17-18세기 노예 범죄를 관장하던 백인 치안판사의 가발을 동시에 암시한다
이탈리아의 전위적 미술운동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에 감화된 해먼스는 도시를 돌아다니며 지극히 평범하지만 강한 상징성을 지니는 오브제들을 조합해 진공 상태의 화이트 큐브에 위치시킨다.
전시장 2층과 3층에 걸쳐 선보이는 회화 작품들은 구상적인 인물 묘사에서 출발해 동선을 따라 점차 추상으로 나아간다.
전시 전경, 출처: 송은아트스페이스
전시 전경, 출처: 송은아트스페이스
세속적인 고통에 집중하는 미리암 칸은 페미니즘적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캔버스 위에 극도의 긴박감을 구현하고, 피터 도이그는 새로운 기법을 창안하며 회화의 역사를 톺아보도록 이끈다.
미리암 칸, Sarajevo, 22. 08. 1995, 1995.
화면 속 여성은 왼손으로 갈색 머리 혹은 짙은 색 베일에 둘러싸인 얼굴을 감싸 쥐고 있다. 푸른눈동자는 왼편을 응시하고, 입술은 무언가를 외치려다 얼어 붙은 듯 반 쯤 열린 상태로 정지된 상태다. 특히 얼굴 을 받치고 있는 손과 다소 허망해 보이는 표정은 에드 바르트 뭉크의 〈절규〉(1893)를 떠오르게 한다. 미리암 칸이 이 작품에 붙인 제목 ‘사라예보’는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이면서 유고슬라 비아 전쟁의 참극을 견뎌낸 도시이다. 작가는 무력해보이지만 강렬한 감정 상태의 인물 형상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특정 국가를 넘어 전 인류에게 광범위한 상흔을 남기는 지정학적 격변을 고발한다.
피터 도이그, Red Man, 2017.
커다란 종이에 조각조각 잘라 채색한 피지(皮紙)를 붙인 콜라주로, 불분명한 이목구비에 붉은 수영복 바지를 걸친 남자가 해안을 등지고 화면 밖을 응시 하고 있다. 〈Red Man〉(2017) 속 인물과 배경은 미국의 배우 로버트 미첨이 쿠바의 트리니다드에서 찍은 사진을 참조했다. 제목에 사용된 ‘Red Man’은 쿠바 현지에서 밝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직설적으로 가리키는 단어다.여기서 남자의 눈과 입, 머리카락은 채도가 낮은 갈색으로 칠해져 연분홍빛 피부색과 대조를 이룬다.
마를렌 뒤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가로, 섹슈얼리티부터 죽음에 이르는 실존적 주제를 탐구하는 뒤마는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채 고통, 황홀, 두려움과 욕망이 교차하는 표정의 남녀를 주요 소재로 삼는다. 작가는 성차별, 인종 차별 등 시의적인 쟁점을 다루는 신문 기사나 미술사에서의 걸작, 영화, 또는 직접 찍은 폴라로이드에서 포착한 이미지들로 화면을 구성하며 대개 배경은 삭제되어 원초적인 강렬함을 자아낸다.
마를렌 뒤마, Angels in Uniform, 2012.
뤽 튀망, Twenty Seventeen, 2017.
바로 옆에는 벨기에 출신의 작가 뤽 튀망의 작품들이 자리해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드러난 인간의 잔혹하고 극단적인 본성dp 무겁게 골몰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역사를 담은 그림, 기억과 트라우마를 담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는 그가 이미지에 접근하는 방식은 앞서 소개한 마를렌 뒤마와 닮아있다.
라이언 갠더, The End, 2020. 출처: 송은아트스페이스
라이언 갠더가 말하는 쥐 3부작은 미술관의 하얀 벽에 난 구멍에서 고개를 내민 쥐가 작가의 어린 딸의 목소리를 빌려 철학적인 주제로 독백하는 형식을 취한다. 〈The End〉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전에 제작되었지만, 전 세계인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이 거대한 사건을 시의적절히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갠더는 “어떤 이들은 이 쥐를 작은 예언자라고 부르거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내가 스크립트를 쓸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제 이 작품은 인류 역사 속 한 순간을 포착하고 무언가를 예측하며, 현재 지구상의 모든 생명과 영향을 주고받는 무언가를 지시한다”고 덧붙인다.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 Opera (QM.15), 2016, 출처: 송은아트스페이스
지하에서는 신화적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공연이 재연돼 펼쳐진다. 해당 작품은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가 제작한 설치작품 <오페라(QM.15)>로,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마치 칼라스가 직접 전시장에서 공연하는 듯한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캐롤라인 부르주아(Caroline Bourgeois, 피노 컬렉션 수석 큐레이터) 기획 2024. 9. 4 –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