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매 순간 새로운 기억을 쌓아가지만, 일부는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진다. 무너진 생태계의 퍼즐 조각을 맞춘다면, 우리는 무엇을 복원하고 배울 수 있을까? 한때 우리와 밀접했던 존재들이 이제는 낯설게 멀어져간다. 그 잊혀가는 목소리와의 대화 속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질문들이 다시 떠오른다.
아트선재센터에서 내년 12월 3일까지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문제를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재조명하는 그룹전 《언두 플래닛》을 개최한다. 본 전시는 작년 강원도 철원군에서 진행한 장소특정적 연구를 기반으로, 지구와 생명의 지속가능성을 탐구하며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 ‘언두(Undo)’는 ‘원상태로 하다’를 뜻하지만, 동시에 ‘열다’, ‘풀다’의 의미를 포함하며, 새롭게 도래할 생태계 가능성에 대한 상상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전시는 ‘비인간(Non-human)’, ‘랜드 아트(Land Art)’, ‘커뮤니티(Community)’ 3개의 주제로, 철원 및 다양한 협업 활동을 기반으로 한 5인의 작가와 총 17명/팀의 작품을 선보인다. 양혜규는 꿀벌 ‘봉희’를 화자로 삼아 분단과 냉전으로 점철된 인간 세계를 돌아보는 영상작업 <황색 춤>과 신작 조각 두 점을 출품하며, 홍영인은 철원에서 겨울을 보내는 두루미를 위한 신발을 제작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풀피리 연주를 담은 영상을 통해 동식물과 같은 ‘비인간’을 조명하며, 시몽 부드뱅은 유럽 도시에서 출몰한 붉은여우를 영상에 담았다. 더불어 덴마크 문화부와 주한덴마크대사관의 후원으로 나나 엘빈 핸슨이 노르웨이의 채석장을 추적한 영상과 미생물이 번식하는 소형 생태계를 조성한 실라스 이노우에의 작품도 공개된다.
‘랜드 아트’ 주제에서는 로버트 스미스슨의 <스파이럴 제티>(1970)와 낸시 홀트의 <태양의 터널>(1978) 등 선구적인 작품과 우리나라 자연미술의 토대를 개척한 임동식의 회화 및 아카이브 자료가 소개된다. 또한 시마부쿠, 사이드 코어, 데인 미첼, 하셸 알 람키는 자연과 인간, 인공의 관계를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며 현대적 ‘랜드 아트’의 담론을 확장한다.
‘커뮤니티’를 주제로 한 섹션에서는 타렉 아투이가 철원의 어린이들과 소리 인식 방법을 탐구한 워크숍 영상을, 댄 리는 현장 연구를 기반으로 한 드로잉을, 팡록 술랍은 태국 치앙콩 주민들과의 협업으로 제작한 판화를 선보인다. 얀 보는 아버지의 필사본 편지를 통해 지속 가능성에 대한 모색을 이어간다.
《언두 플래닛》은 장소 특정적 연구, 비인간과 자연, 커뮤니티와 협업을 결합하여 기후변화와 생태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과 공존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꿀벌, 두루미, 붉은여우는 인간과 공존이 가능할까? 《언두 플래닛》 < 전시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