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고영애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60곳을 프레임에 담아 소개한다. 뉴욕현대미술관부터 게티센터, 바이에러미술관, 인젤홈브로이히미술관 등 현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미술관들을 생생한 사진과 맛깔스런 건축 이야기로 안내한다.
파리에서 TGV로 약 1시간 30분을 타고 가니, 명화 속의 배경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도시 메츠가 나왔다. 예술과 감성으로 거듭난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로렌 지방의 로렌 주의 주도인 메츠(Metz)는 퐁피두 센터 분관으로 부활하고 있었다. 메츠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고딕 대성당이 있는 유구한 도시다.
중세도시 로렌 지방 특유의 건축 자재인 조몽(Jaumont) 석재를 사용한 생 떼띠엔느 대성당을 비롯해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고즈넉하게 침잠해 있던 도시 일대에 퐁피두 센터 분관 건립은 활기를 불어넣었고 메츠를 예술 도시로 부활시켰다. 랭보의 연인이었던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의 고향이기도 한 메츠에서 시와 예술을 만끽해보는 순간을 상상만 하여도 짜릿한 전율로 달떴다. 유적들과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녹지대, 오래된 박물관, 고딕 성당들을 돌아보면서 이 도시의 역사적 깊이에 매료되었다.
아름다운 모젤 강가를 따라 산책하노라면 중세 저택과 17세기부터 내려오는 멋진 독일 양식의 건축이 두드러져 프랑스 지방이라기보다는 독일 지방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메츠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1871년부터 1918년까지 잠시 독일령이 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프랑스령으로 환원되었다.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접경 도시인 메츠는 주변국과도 교통이 편리하여 오랫동안 상공업 중심지로 자리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장점이 메츠에 현대 예술의 상징과도 같은 퐁피두 센터 분관이 들어서는 데 큰 몫을 했으리라 추측한다. 개장 이후 1년 동안 9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이 미술관을 방문하였다니 궁금함으로 내 마음은 이미 메츠에 가 있었다.
메츠 퐁피두 센터는 기차역 바로 옆에 있었다. 미술관을 찾아가는 길목에 파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터널에서부터 유구한 도시임을 감지했고 기대감으로 잔뜩 들떠 있었다. 작은 터널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독특한 메츠 퐁피두 센터는 심플한 박스형 건축이 주를 이루는 여느 현대미술관 건축과는 전혀 다른 특별함에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중국인 모자를 연상시키는 획기적인 지붕의 건물은 외관부터 독특하였다. 복잡하고 조형적인 구조물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지만 반투명한 지붕을 얼키설키 쌓아올린 나무 구조로 받치고 있는 구조적 기술의 정교함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시에 어둠이 짙게 깔렸지만 메츠 퐁피두 센터는 멋진 조명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고 아름다운 조형미는 주변을 온통 탈바꿈시켰다. 현대건축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고 있는 메츠 퐁피두 센터는 일본 건축가인 시게루 반과 프랑스 건축가인 장 드 가스틴이 설계하였다. 1977년 파리 퐁피두 센터 완공 후 40년 만에 메츠에 분관이 지어진 셈이다. 2014년 시게루 반의 프리츠커상 수상 소식으로 인해 건축학도들과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은 쉴 새 없이 메츠 퐁피두 센터로 이어지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메츠 퐁피두 센터로 향했다. 이미 많은 관람객들로 입구부터 북적이었다. 전시장 입구 표지판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중국 농부들이 쓰는 대나무 모자 형상을 닮은 이 미술관 외관은 독특했다. 원뿔형 대나무 모자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독특한 지붕은 밀짚모자를 엮듯이 통나무 프레임과 8각 격자를 엮은 총 90제곱미터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왕관 모양의 형상을 탄생시켰다. 파란 하늘 아래의 독특한 형상의 미술관이 약간 생소하였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목구조와 하얀색 지붕의 미술관은 새롭고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시게루 반 특유의 목구조(통나무)를 엮어 만든 공간들은 내부 공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원뿔 모양의 캐노피는 76미터까지 높게 솟은 중심축과 만나고, 세 방향으로 난 대형 박스형 창문으로는 TGV 역과 성당, 주변의 구릉과 공원을 조망하도록 설계되었다. 갇힌 공간이 아닌 도시를 바라보며 휴식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다. 그밖에 건물 중앙에는 대형 홀을 비롯해 강당, 사무실, 레스토랑, 기타 서비스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퐁피두 센터 분관의 전시 기획은 소도시의 전시라는 예상을 뒤엎고 아방가르드의 최전방에 서서 세련된 전시를 선보였다. 20세기 초의 필름 전시를 비롯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암울했던 작품을 모은 ‘1917’ 특별전이 열렸고, 2층 갤러리는 미국의 개념미술 작가인 솔 르윗의 대형 프로젝트가 전시 중이었다. 난해하고 어려운 현대미술을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려는 의도가 담긴 전시 기획이었다. 전시 공간 틈 사이로 들어온 햇빛으로 인해 드려진 그림자와 솔 르윗 작품의 까만 선들의 절묘한 조화는 마치 이 전시를 기획하기 위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창을 통해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그 공간은 힐링을 주었고 여유를 만끽하기에 충분하였다. 3층 갤러리에서는 로낭과 에르완 부홀 렉(Ronan & Erwan Bouroullec)의 디자인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로낭과 에르완 부홀렉은 프랑스의 형제 디자이너다.
퐁피두의 컬렉션은 7만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지만, 파리 퐁피두 센터 전시를 통해 한 해 동안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은 겨우 1000여 점 정도라 한다. 그 자구책으로 고민하던 중 전시되지 못한 수많은 컬렉션을 보여주고 소장할 수 있는 분관을 짓기로 결정하였고 메츠가 선정되었다. 만일 메츠에 시립현대미술관을 짓는다면 새로이 작품을 구입해야만 되는 경비 부담뿐 아니라 파리 퐁피두에 수장된 값비싼 작품 구입은 가히 엄두도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퐁피두 센터 분관이 지어짐으로써 풍부한 컬렉션의 혜택을 받게 될 뿐 아니라 퐁피두 센터라는 유명세로 인해 미술 애호가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분관으로써 역할을 분담하는 이중 효과를 얻게 되었다. 메츠 퐁피두 센터의 갤러리에는 자코메티 조각들로 차 있다. 자코메티 조각 한 점의 가격이 메츠 퐁피두 센터 건물에 소요된 비용과 엇비슷하다 하니 소도시의 예산으론 상상할 수조차 없는 대단한 컬렉션이다. 프랑스의 문화 정책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프랑스처럼 대단한 미술품을 자랑하는 나라조차도 미술관의 지방분권화에 있어서는 일본보다 오히려 늦은 감이 든다. 대부분 미술관들이 파리에만 집중되어 있는 프랑스 문화 정책의 진부함에 잠시 의구심이 들었다. 아비뇽 연극제를 비롯해 칸 영화제 등 다른 예술 공연 분야에서는 지방분권화가 뿌리내린 지 오래되었지만 미술관의 분권화는 근래에 와서야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예로 퐁피두 센터의 메츠 분관을 비롯해 랑스(Lens)의 루브르 박물관 분관(Le Louvre-Lens), 마르세유의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MUCEM) 등이 있다. 퐁피두 센터의 메츠 분관은 주변 도시 시민들에게 차별화된 미술품을 접할 수 있는 역할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독특한 현대건축물이 들어섬으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음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메츠를 찾는 관광객은 퐁피두 센터 분관 개장 이후 40퍼센트 이상 증가했으며 분관 건립을 계기로 관광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메츠는 예술 도시로 부활하고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퐁피두 주변과 역, 황제 거리, 모젤 강가의 산책로 등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 중으로 도시를 재생시키는 모습을 역력히 볼 수 있었다. 동서양을 아우르고 예술, 과학, 건축, 무용 등 장르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퐁피두 센터 메츠 분관의 개관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다. 시대를 뛰어넘는 21세기 담론의 장으로 예술 문화의 총체적 역할을 충실히 하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메츠 방문은 메츠 퐁피두 센터의 좋은 전시회와 멋진 건축물을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3000년의 유구한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색칠된 유적의 도시 메츠를 새로이 알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에떼 뒤 리브르(Eté du livre)’라 하는 문학 축제는 1965년부터 내려온 메츠의 주요한 행사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주의 시인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의 고향이며 유구한 역사적 도시에서의 문학 축제는 어쩌면 자연스런 행보다. 랭보(Arthur Rimbaud)의 문학적 깊이에 매료되어 동성과 사랑에 빠지게 된 베를렌은 만년에 상징주의와 데카당파의 시인들 사이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시의 왕’으로 선출되었다. 메츠 문학 축제에는 많은 문학인들이 참여하여 시문학 발표 외에도 다양한 예술 포럼이 열린다.
정원 속의 예술제(L’Art dans les Jardins)는 7월부터 9월까지 여름 기간 동안 메츠의 정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현대미술 전시회다. 이 기간에는 콘서트, 다양한 거리 공연, 퍼포먼스가 무료로 진행된다. 또한 뉘 블랑쉬(Nuit Blanche)는 10월 하룻밤 동안만 열리는 백야제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예술 축제다. 2002년 파리에서 처음 시작된 공공 예술 축제인 뉘 블랑쉬 백야제는 메츠에서도 2008년부터 개최되어 연중 주요한 문화 행사로 자리 잡게 된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메츠가 젊은 예술가의 발굴에 주력하고 있는 파리와는 차별화된 고유한 색깔의 축제 도시로 거듭나길 바란다.
고 영 애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온 고영애 작가는 서울여대 국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한국미술관, 토탈미술관 등에서 초대 전시회를 열었고 호주 아트페어, 홍콩 아트페어, 한국화랑 아트페어 등에 초대받아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미술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글과 사진을 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잡지에 건축 여행기를 썼다.
이 연재물은 그의 책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 중에서 <데일리아트> 창간을 기념하여 특별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을 골라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그가 15년 넘도록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현대미술관들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기록한 ‘현대미술관 건축 여행기’다.
[고영애의 건축기행] 프랑스 메츠 퐁피두 센터 Centre Pompidou-Metz < 문화일반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