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시대와 맞섰던 문인, 화가들은 시대에 어떻게 저항했을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작품을 소환해 본다. 예술은 예술 자체로서도 가치가 있겠지만, 시대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기에 작품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쳤던 예술가들이 수도 없이 있었다. 그들은 시대의 선각자들이었다. 시와 그림, 민화 등 비교적 최근 작도 다뤄본다. 오늘은 '저항'과 '민중'의 아이콘이 된 그림. (편집자 주)
정의와 성실, 공정 등 사회를 이루는 수많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 가치들은 사회가 원활하게 유지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그러나 다양한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가치를 꼽아보자면 단연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일 것이다. 특히 현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이 가치들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하는 고귀한 가치다.
요 며칠 나라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어수선하고 불안한 시국은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이제껏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온 이 가치들은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며 그 뒤에는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음을 현 시국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역사화의 대가이자 낭만주의 대표 화가로 불리는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1789-1863)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을 통해 캔버스에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담아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대혁명을 묘사한것으로 알고 있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그 이후인 1830년에 있었던 '7월혁명'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제작되었던 1830년 프랑스 사회는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당시 국왕이었던 샤를 10세는 ‘출판 자유의 제한’, ‘하원의 해산’ , ‘선거 자격의 제한’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7월 칙령을 발표하였다. 이 칙령의 발표는 많은 민중을 분노케 했고 1830년 7월 27일 ‘7월 혁명’이 발발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들라크루아는 당시의 긴장 넘치는 순간을 화폭에 옮겨 담았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총과 프랑스 국기를 손에 든 한 여인이 서 있다. 흔히 '자유의 여신'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 여인은 자유의 알레고리다. '알레고리(allegory)'란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하여 나타낸 것이다. 이 작품에서 여인은 프랑스 민중의 자유 그 자체를 의미한다. 혁명의 한가운데서 자유와 해방의 상징인 프리기아 모자를 쓰고 민중을 이끄는 강인한 모습은 당대 프랑스 민중들이 가진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의지를 잘 담고 있다.
한편 자유의 알레고리 주변 인물의 모습도 다양하다. 자유의 알레고리 오른편에 그려진 꼬마 아이와 왼편에 그려진 정장을 입고 실크 햇 쓴 남성, 그리고 셔츠의 단추가 풀어진 채 모자를 쓰고 있는 남성의 모습을 보면 소년과 부르주아 계층과 가난한 민중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이 혁명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혁명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담아낸 이 작품은 지역과 시대를 넘어 위기의 순간마다 여러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며 널리 사랑 받는 명작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2년 자유의 알레고리가 태극기를 든 모습으로 패러디 되어 당시의 임시 수도 였던 부산시청의 외벽에 걸리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들라크루아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쟁취하기 위한 민중들의 저항 정신을 잘 보여준다. 국가 전체가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지금을 훗날의 역사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쉽지 않은 시기이지만 모든 국민이 지혜를 모아 위기를 해결하여 더 크게 도약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저항하는 예술 ③] -자유, 평등, 박애《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 문화일반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