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월 3일자 '[김취정의 올 댓민화] 을사년 벽두에 보는 뱀 이야기'를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편집자 주)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이다. 을사년은 육십간지의 42번째로 청색의 '을(乙)’과 뱀을 의미하는 ‘사(巳)’로 ‘청사(靑蛇)의 해', 즉 '푸른 뱀의 해’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화, 전설. 민담에는 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뱀 이야기는 뱀이 갖는 생태적 특징에서 기인한다.
뱀 : 불사(不死)와 재생(再生)의 상징
"그때 마침 담 구멍에 있던 뱀이 저승차사인 까마귀의 적패지를 받아 꿀꺽 삼키고 들어가버렸다. 그래서 뱀은 죽는 법이 없어 아홉 번 죽었다가도 열 번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제주도 차사본풀이)
뱀은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다. 이에 뱀은 재생이나 영원불멸의 존재로 여겨졌다. 그리스의 의신 아스클레피오스를 상징하는 지팡이에 뱀이 감겨 있다. 이는 뱀의 생태적 특징 중 하나인 ‘독’ 때문이다. 이 때문에 뱀이 터부시 되어왔다. 하지만 모든 뱀이 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이 있는 뱀은 2700종의 뱀 가운데 4분의 1정도로 뱀 중 4분의 3은 독이 없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한 마리의 뱀이 감고 있는 지팡이를 짚고 있다. 출처 : 의협신문(http://www.doctorsnews.co.kr)
'1996년 제정돼 현재 사용중인 네 번째 휘장,' 출처 : 의협신문(http://www.doctorsnews.co.kr)
뱀은 한꺼번에 백 마리 이상을 부화시킨다. 이러한 뱀의 생태적 특징 때문에 뱀은 다산의 상징이 되었다.
붉은 새가 글을 물어 침실의 지겟문에 앉으니, 이것은 그 성자(聖子)가 혁명을 일으키려 하매, 하늘이 내리신 복을 보일 것이니. 뱀이 까치를 물어 나뭇가지에 얹으니, 이것은 성손(聖孫, 태조)이 장차 일어나려 하매 그 아름다운 징조가 먼저 나타난 것이니. (용비어천가 7장)
도조(度祖)로 추존된 이성계의 조부 이춘(李椿)은 군영에 있을 때 두 마리의 까치가 군영 안의 큰 나무에 앉았는데, 그는 멀리서 화살을 쏘아 한 살로 두 마리를 모두 떨어뜨렸다고 한다. 이 때 뱀이 나타나 까치를 물고 다른 나무에 얹어놓고 먹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성손은 이춘의 손자, 곧 태조 이성계를 말한다. 따라서 이 일화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울 것이며 그 징조가 미리 나타났음을 말하는 부분이다. 뱀은 오랫동안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고분벽화에 수호신으로써 뱀이 표현된 예가 많다. 사신도의 현무가 그것이다.
현무는 북방의 수호신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일원의 종교적 관념에 따르면 북방에 생명의 시원이 있다. 사람들은 허물을 벗어 새롭게 태어나고 겨울잠을 자기 위해 일정 기간 종적을 감추는 뱀을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 재생, 영생의 상징으로 보았다. 이런 이유로 뱀을 무덤의 수호신, 지신, 죽은 이의 재생과 영생을 돕는 존재로 생각했다.
강서대묘 현실(玄室) 북벽의 의 '현무도', 고구려 6세기 후반~7세기. 철선묘 기법. 석벽에 채색.
거북이나 뱀의 세부 표현은 유연한듯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으로 고구려인의 힘이 느껴지는 걸작이다. 민화에서 그려지는 그림 소재들을 보면, 그 뜻도 좋고 그 모습도 장식적이거나 어여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뱀은 그 생김새가 곱지는 않다. 오히려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민화에서 뱀이 그려진 예는 십이지신을 묘사한 그림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십이지신으로서의 뱀 그림 중 뱀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으로 송창수의 〈12지신 巳〉을 들 수 있다.
송창수, "12지신 巳", 현대사진 출처: 송창수 작가 제공
송창수의 〈12지신 巳〉의 뱀은 12지신으로서의 그 늠름한 자태를 잘 보여주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뱀이 그려진 다른 그림으로 '하락도12폭병풍(河洛圖十二福房機)'을 들 수 있다.
‘하락도12폭병풍(河洛圖十二福房機)’, 20세기초, 종이에 채색. 전체 1584x520.0cm, 각 150.5×37.6cm, 출처: “조선 병풍의 나라 2” p. 20.
'하락'이란 고대 중국의 전설 하도 낙서(書)를 합쳐 일컫는 말이다. 하도는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등에 지고 나온 그림이며, 낙서는 낙수(홍가)에 나타난 신령한 거룩神)의 등에 쓰여 있었던 글을 뜻한다. 3-4폭에는 십이지 도상이 그려졌는데, 열두 동물이 원을 중심으로 지어 있는 형세이다.
‘하락도12폭병풍(河洛圖十二福房機)’ 부분
‘하락도12폭병풍(河洛圖十二福房機)’ 부분
지금까지 뱀의 상징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2025년 을사년은 푸른 뱀의 해이다. 푸른 뱀은 지혜와 변화의 상징이기 때문에 2025년은 새로운 시작과 기회의 해라고 할 수 있다. 문득, 원칙을 세우고 지켜나가겠다는 김구의 의지가 담긴 그의 휘호,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이 떠오른다.
김구.‘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출처: "태극사상연구소(hansasang.org)". "https://eastology.tistory.com/13"
'불변응만변'은 김구 선생이 1945년 해방을 맞아 귀국하기 전날 저녁 이 문구를 써서 남긴 족자가 다음과 같이 전하며, 베트남의 민족영웅 호찌민의 좌우명으로도 유명하다(출처: 강병국, 『주역독해』). '불변응만변'에는 독립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한 시점에서 원칙을 세우고 지켜나가겠다는 김구의 의지가 담겨있다.
2025년 을사년을 맞이하며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을사늑약이 불법적으로 강제로 체결되었던 을사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을사년, 즉 법과 원칙이 통하는 모두가 함께 행복한 을사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음 6회에서는 지난 4회에서 예고한 대로 중국과 한국 문헌에 나타난 연꽃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 뒤 민화 속에 핀 연꽃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화조도" 부분, 20세기, 지본채색, 84×32,※도판 출처: "민화본색1", p. 169, 도 42
2025 을사년(乙巳年)- 민화 속의 뱀 이야기 < 김취정 [올댓민화]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