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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 ⑨] 사직단

by 데일리아트

서울이야기 (9) 땅과 곡식에 복을 기원하던 - 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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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정문 앞의 두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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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속 사직단


손자와 함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서울의 길을 산책하는 길은 늘 나에게 새로운 영감과 활력을 안겨 준다. 내가 바라보는 서울과 손자들이 바라보는 서울은 참 다르다. 나는 보다 의미가 깊은 역사의 관점에서 손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손자들은 역사의 교훈보다는 새롭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렇게 할아버지를 따라 나서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할 뿐이다. 오늘은 역사적 의미도 있고 재미있는 곳이라 한결 마음이 가볍다. 인왕산 자락의 초입에는 조선 왕조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사직단과 단군을 모신 단군성전, 궁술 연습장 황학정을 만날 수 있다. 오늘은 이곳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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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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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사직단 모습


서울에서 가장 먼저 생긴 도로터널인 사직터널은 자주 다니면서 정작 사직단이 뭐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른들도 모르는 사직단을 손자들에게 설명하는것이 쉽지 않다. 큰 손자 형주에게 사직에 대해서 들어봤냐고 물었더니, 한참 생각을 하다가 혹시 '종묘사직'할 때 그 사직이냐고 했다. 간혹 사극에서 '전하 종묘사직을 지켜주옵소서' 라는 말을 들어봤다는 것이다. 아이의 기억력이 놀랍다. 그렇다. 종묘사직, 조선의 역사는 종묘와 사직을 지키는 것을 가장 우선시했다.


종묘는 역대 왕의 신위를 모신 곳이고 사직은 토지신을 섬기는 곳이다. 유교적 통치원리를 조선의 사상적 배경으로 삼은 조선에서 임금이 사는 궁궐 보다 먼저 지은것이 종묘와 사직이다. 종묘가 돌아가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라면, 사직은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를 내세우면서 농업을 나라의 근간으로 삼았던 조선 시대에 땅과 곡식에 복을 기원하던 사직단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성역이었다. 그래서 종묘는 조선의 정신적 가치를 지키는 가장 핵심적공간이었고 농업을 숭상하는 조선에서 땅과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단은 조선 경제의 근간을 지키는 핵심 공간이었다. 그래서 신하들은 국가의 위난이 있을 때마다 종묘와 사직 운운했고 심지어 임진왜란 때는 종묘에 봉안한 신위를 가져가느라 피난길이 늦어지기도 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사직단을 돌아보자. 사직단 단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지만, 입구에서 안의 제단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4년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1395년에 한양에 왕도를 건설하면서 좌묘우사(左廟右社)라는 유교 원칙에 따라 동쪽에는 종묘, 서쪽에는 사직단을 지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공원 조성을 구실로 훼손되었던 것을 1960년대 후반에 복구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사직단의 왼쪽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우리 겨레의 시조이자 민족의 상징인 단군을 모신 단군성전이 자리하고 있다. 일제가 사직단을 공원화하면서 이곳에 일본식 신사를 짓고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는데, 해방 이후 신사가 철거되면서 1968년에 단군성전으로 바꾸어 낙성식을 거행했다. 이곳에는 현재 단군의 영정과 모형상이 있고,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단군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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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술연습장에서 활쏘는 모습을 그린 손자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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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정 앞의 궁술연습장 활터


단군성전을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인왕산 초입의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황학정(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5호)이 나온다. 황학정은 1898년에 고종 임금의 어명으로 지어진 궁술 연습장으로, 고종도 이곳에서 활쏘기를 즐겼다. 손자들은 아무것도 없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제단만 설치된 사직단 보다는 활을 쏘는 이곳이 훨씬 즐거운 모양이다. 활쏘는 시늉도하고 이리저리 돌아 다닌다


원래 황학정은 경희궁 내의 회상전(會祥殿) 담장에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때 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이 헐리면서 1922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본래부터 이곳은 조선 시대 무인들이 궁술 연습을 하던 활터 가운데 하나인 등과정(登科亭)이 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전통 무예인 활쏘기를 금지하면서 활터는 거의 사라졌지만, 유일하게 이 황학정만이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면서 우리나라 궁술을 계승하는 연마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황학정 국궁 전시관에는 각궁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전통 활 문화와 함께, 세계의 활 문화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활 만들기와 활쏘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인왕산 자락 일대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나무와 계곡, 그리고 흙냄새로 가득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할아버지는 손자와 함께 사직 공원과 인왕산 자락 일대를 천천히 걸으면서 도심 속 자연에서 옛 선조들의 멋과 낭만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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