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범 작가는 직조를 통해서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가? 세로와 가로의 교차가 만들어내는 견고한 구조는, 단순히 형태를 구성하는 기법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직조라는 기법은 상호 연결성과 지속적인 변화를 표현하는 과정이다. 각각의 다른 요소들이 서로 교차하며 생기는 질서와 흐름이 서로 얽히고 설키는 삶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
직조는 '일체의 재현적인 요소를 제거한 채 남겨져 있는 흔적들'에 대한 숭고함을 표현한다. 작가는 표면적인 아름다움이나 일시적인 가치의 추구보다 세월이라는 시간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흔적들을 표현한다. 이재범은 자체로 존재하며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 본질적인 요소들을 작품을 통해 추구한다. 즉 형상화 이전의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작가의 작업은 개인의 통제 밖에서 발생하는 어떤 깊은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다. 결과가 아닌 과정과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가치를 두는 접근 방식이 이채롭다. 예술이 미적인 결과물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 존재와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깊은 철학적 성찰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본인의 의사에 의한 결과물이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자신을 도구로 활용하여 이뤄진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는 자신을 도구로 삼아 그 과정에 깊이 몰입하고, 그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물아일체'라는 개념에 부합한다. 자신과 작품, 또는 자신과 세계가 완전히 일체가 되어 작업에 완전하게 몰입하는 상태를 작가는 지향한다.
이 상태에서 작업은 더 이상 의식적으로 구상하거나 계획하는 것에서 벗어난다. 본질적이고 자연스러운 창조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것은 창작이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욕망의 결과가 아니라, 더 큰 자연의 흐름이나 우주적 힘에 의해 이끌린 결과라는 의미가 아닐까?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예술 여정의 끝에서 얻어지는 깊은 통찰과 경험이며,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갖는 행위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자신을 도구로 하는 결과물'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물아일체'의 순간에 자신이 단순히 도구가 되어 그 흐름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재범 작가 전시는 2월 12일 부터 17일까지 갤러리 인사아트 2층에서 개최된다.
[강의실 밖 그림 이야기] 씨실과 날실로 엮은 인생 - 이재범 작가 < 정병헌교수의 [강의실 밖 그림이야기]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