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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화가 열전 ② ] 마네의 등장

by 데일리아트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에서부터 태동된 미술사조이다. 인상주의는 선적인 데생을 중요시하고 보수적이었던 아카데미에서 벗어나, 개인의 감정 혹은 사물이나 풍경의 개인적 인상에 집중한다. 기존미술에 대한 저항과 더불어 감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마네를 인상파라고 포함하는 것에는 많은 의견이 있다. 그러나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를 기점으로 새로운 미술의 씨가 뿌려진 것은 분명하다. 1865년 마네는 '살롱전'에 <올랭피아> 출품했으나 엄청난 비난을 받고 낙선되었다. 이어서 올랭피아를 낙선자들의 전시인 '낙선전'에 출품하였고, 동시에 많은 진보적인 동료들의 낙선전 참여는 인상주의라는 미술사조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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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올랭피아, 캐버스에 유화, 190 x 130.5cm, 1963,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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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넬, 비너스 탄생, 1963, 오르세미술관, 사진: 원정민


마네의 <올랭피아>가 심사위원과 관람객들로부터 악평을 받게 된 이유가 있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고전의 미인이 아닌 나체의 매춘부를 비너스의 도상처럼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관램객을 응시하는 여성의 시선과 등을 곧추세운 까만 고양이, 흑인 하녀를 함께 배치하여 고전미술의 금기를 깼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 살롱전에 출품한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은 <올랭피아>와 같이 나체의 여성을 그렸음에도 살롱전 1등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는 그 이후 왕립미술학교의 교수로 임용하며 승승장구 한다. 두 작품은 같은 나체의 여성을 그렸음에도 묘사의 대상이 비너스인지 매춘부인지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볼 땐 선정적이고, 관음적이라고 악평을 평가받았던 마네의 작품보다 오히려 카바넬의 작품은 노골적으로 여성을 관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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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롱샴에서의 경주, 43.9x84.5cm, 1867, 시카고 미술관


그렇다면 19세기말 마네와 같은 작가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여러가지 요인 중 카메라의 발명은 아주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이전시대에 그림의 1차 목표는 사실의 재현이었다. 그러나 사진의 발명으로 정확한 데생의 선과 윤곽선을 추구하던 화가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재현의 가치가 사라진 상황에서 화가들은 자신들의 2차 목표였던 회화의 예술성을 강조하게 된다. 당시 발명된 사진은 흑백이었기에 사진과 차별되는 예술성이 무엇일까 고민한 화가들은 색채를 궁극적인 예술성으로 보게 된다. 색은 반드시 빛을 동반하기에 색과 빛은 새로운 예술의 지향점이 되었다. 당시 화가들에게 빛은 야외의 태양빛이었다. 야외의 풍경들을 직접 보고 스케치하며 자신에 눈에 비친 빛의 변화를 화폭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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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크로켓 게임, 1973, 프랑크푸르트 슈타델 소장


마네 역시 계절, 시간, 날씨 등에 따라 달라지는 빛을 그리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마네의 작품은 원근법의 깊이감은 사라지고 평면적이게 되었고, 붓질은 투박한 듯 거칠었다. 마네의 특징적인 표현은 이후 인상주의 화가들의 전형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 19세기의 파리의 도시문화를 직접 사생하며 본인의 눈에 담긴 풍경들을 화폭으로 옮겨낸다. 15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마네가 바라보던 당시의 파리도시의 활기찬 모습과 생동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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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잔느: 봄, 74x51.5cm, 1881, J. 폴 게티 박물관


<잔느>라는 작품도 변화하는 빛을 작품으로 남기고 싶어했던 인상파 답게 여인초상을 빌려 변화하는 사계절을 표현한 것이다. 마네는 작품을 처음 구성할 당시 사계절을 4폭 연작으로 제작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작품명을 <봄>으로 하였으나, 여성의 초상을 봄으로 부르는 것은 당시 사회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모델의 이름을 따 <잔느>라고 짓는다. 봄을 상징하는 싱그러운 생동하는 분위기를 새초롬하게 서있는 당시 파리지앵의 현대적 여성의 모습과 활기찬 색채들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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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가을, 메리로랑, 1882, 낸시미술관


이 작품은 마네의 화업에서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기도 하다. 마네는 <올랭피아>나 <풀밭에서 아침식사>와 같이 항상 반항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제작하다 보니 프랑스 관전인 살롱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마네 작품 중 드물게 1882년 파리 살롱에서 처음 전시하며 많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는다. 그렇게 계획대로 순차적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제작하고자 했던 마네는 봄인 <잔느>와 <가을, 메리로랑>만을 남긴 채 이내 곧 매독으로 1983년 세상을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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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풀밭위의 점심, 208x264.5cm, 1863, 오르세미술관, 사진:원정민


인상파의 시작을 알린 마네였지만, 특이하게도 인상파 무리들과는 거리를 두려고 했고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꾸준히 화가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살롱전에 출품했다는 점이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마네는 즉 인상주의 라는 하나의 사조에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죽기 직전에 제작한 만년작 <폴리베르제르의 바> 를 통해서도 짐작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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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폴리베르제르의 바, 96x 130cm, 1882, 코톨드 갤러리


<폴리베르제르의 바>는 마네 사후 비교적 최근까지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대리석 테이블 바로 앞에 있는 한 여성이 서있는 작품으로 여성 뒤의 거울에 비친 모습이 상당히 이질적이다. 거울이라면 바로 화면 중앙에 있는 여성의 뒷모습이 바로 비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네가 원근법을 몰라서 이런 그림을 그렸다는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공부하며 원근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상당히 의도적인 구성이다. 사실 마네는 기존 원칙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이러한 작품을 남겼다. 원근법의 대원칙은 하나의 소실점인데, <폴리베르제르의 바>는 두개의 소실점, 즉 두개의 시선을 한 화면에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다시점을 긍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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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월, picture for woman, 사진, 1979, 퐁피두센터


마네의 ‘부정의 미학’은 이후 피카소의 큐비즘을 암시하고 현대미술의 많은 거장들에게 영감을 주게 된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설적인 현대 사진 작가 제프월의 작품에서도 마네를 읽을 수 있다. 마네를 기점으로 인상주의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태동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새로운 미술은 과거의 것을 뒤엎거나 부정함으로서 탄생해왔다. 하지만 과거가 있었기에 새로운 것이 등장할 수 있었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마네도 고전의 명화를 통해 영감을 얻었고, 그 안에서 새로움을 찾았다. 그의 치열한 고뇌와 예술성은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패러디되고 영감을 준다. 현대까지 미술계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19세기부터 1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마네는 독보적인 개척자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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