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의 작품들은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내가 사는 동네, 가족, 동물, 나무, 해와 달이 주요소재로 등장한다. 자연과 나는 다르지 않으며, 하나안에 전체가 들어있다. 모든 자연은 각자의 자리에서 아름답다. 일상의 마주치는 모든 것은 소중하다고 말한다. 가족과 자연의 일상적 풍경에 한국의 미, 동양적인 정신이 담긴다. 그는 자신만의 전형을 만들어 현대적으로 그려내었다. 도가사상, 민화, 불화, 문인화, 수묵화, 도자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조선의 미를 현대적으로 계승발전 시켜 나간다. 해방 이후 한국의 현대미술은 전통성과 한국성이 화두였다. 서구미술사조의 대거 유입에 따라 우리 것을 이어가고자 하는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세속을 떠나 자유롭게 살고자 한 작가는 전통회화의 연관속에서 점차 그림을 단순하게 변모시켜 나간다. 민화를 비롯 전통회화, 도가적 소재, 전통 수묵화 기법 등을 작품에 활용한다. 자연일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정신세계(체면, 일상, 비교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다시점, 원근법과 비례감 무시, 입체감과 공간감 상실, 대치구도와 반복성 등의 특징을 살려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장욱진, 독(1949), 캔버스에 유채, 45.8 x 38cm, 국립현대미술관소장
본격적으로 한국적인 모더니즘을 작품의 정체성으로 작업하기 시작하며 그려진 작품이 <독>(1949) 이다. 화면 가득 채운 장독 앞에 까치 한마리, 왼쪽 상단에는 둥근 보름달과 새싹이 돋은 나뭇가지를 배치하였다. 물상을 극대화하여 전화면을 채우고 주변 빈 공간에 사물을 배치하는 구도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독> 은 제2회 신사실파 전시회에 출품한다. 신사실파는 ‘새로운 사실을 추구한다’는 조형이념을 처음으로 표방한 미술단체다. 이 단체는 한국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이규상,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등이 모여 활동했다. 이들은 모두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이다. 추상적 경향을 추구한 그룹으로 장욱진은 김환기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된다. 김용준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신사실파의 미>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칼럼을 게재한다.
“장욱진 그림은 시인, 화가, 문인의 서재에 한점씩 걸었으면 좋겠다. 시를 쓰다 말고, 그림을 그리다 말고, 글을 쓰다 말고, 잠깐 붓을 멈추고 우스꽝스러운 아이와 나무와 장독과 까치를 한 번씩 바라보고 웃을 수 있는 기쁨이 있다. … 이규상의 컴포지션은 다방에, 유영국 그림은 호텔이나 백화점 쇼윈도우에, 김환기 그림은 호텔벽이나 초호화 문화 독본을 간행하는 출판사에 걸어 놓으면 좋겠다”고 썼다.
장욱진 그림은 사람에게 위안과 기쁨을 주고, 김환기나 유영국의 그림은 공간의 품격을 높이는데 좋은 그림으로 보인 듯하다. 작가는 1960년대 초반 서울대교수를 그만 둔 후 명륜동의 삶이 번잡해지면서 별도의 화실을 만들어 생활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덕소 강가 언덕에 작은 화실을 마련하고 12년동안 홀로 작품활동에 전념하였다.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을 한 곳에 몰아 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것도 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림 그릴 때의 나는 이 우주 가운데 홀로 고립되어 서 있는 것이다.” -강가의 아뜰리에 –
장욱진, 진진묘(1970), 캔버스에 유채, 33 x 24cm, 개인소장
덕소 시기 작품은 선이 강조되며 형태가 기호화, 단순화, 도상화 되는 게 특징이다. 그 결정체 작품 <진진묘>이다. 장욱진의 대표작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아마 5위 안에는 들 것이라 생각한다. <진진묘>는 ‘참으로 놀라운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부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이기도 하다. 1970년 1월 3일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에 무릎 꿇고 참선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화상이 떠올라 그 길로 덕소화실로 달려갔다가 7일만에 이 그림 한 장을 들고 집에 돌아와 “여기 있소.” 한마디 남기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한다. 일주일 동안 식음도 잊고 그려낸 그림이다. 단단한 물감층을 바탕에 켜켜이 쌓아 올려 화강암 질감이 느껴진다. 암석 같은 질감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표현해 낸 것이다. 보관을 쓴 보살의 티 없이 맑고 온화한 모습. 엷은 미소, V자형 계단식 옷 주름,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치마 끝단이 아름다운 작품이다. 고구려 불상<연가7년명금동입불상>이나 신라시대 만들어진 <금동미륵반가사유상> 83호를 연상케 한다.
작가 장욱진이 명륜동 관어당에서 물고기를 바라보는 모습/ 출처.장욱진미술문화재단 홈페이지
그러나 덕소에 전기가 들어오고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명륜동으로 돌아온다. 이때 집과 이어진 한옥을 구입하여 연못을 파고 <관어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화실로 꾸민다. 생활은 단순했다. 오로지 그림과 남은 시간은 술로 휴식하는 생활이었다.
그는 밤낮 그림을 그리는 일만 하다 보니 변화를 갖기를 원했다. 그때는 스스로 공백기를 갖는다. 그에게 공백기는 휴식을 뜻하고 휴식은 곧 술을 마시는 것을 의미했다. 40여년 그림과 술로 살았다. 그림을 그릴 때는 몇 달이고 술을 입에 대지 않다가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 만다. 일주일, 이주일씩 안주도 없이 한잔 술에 소금 한번 찍어먹는 것으로 술을 마셨다. 주종도 가리지 않는다. 그에게 술에 취한다는 것은 의식의 마비를 통한 도피가 아니라, 내적 갈등과 감정의 긴장에서 해방을 뜻한다. 충분한 휴식이 있은 후 에너지가 충전되고 나면 새로운 그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의 단골집은 명륜동집에서 가까운 우리은행 뒤편 <공주집>이었다. 이곳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오윤, 오수환 등이 혜화동부근 미술교사로 근무하며 자주 가는 술집이기도 했다. 이 단골집은 아직 단층건물로 남아 현재는 부동산이 영업중이다.
장욱진, 가족도(1955), 캔버스에 유채, 6.8 x 18 cm, 국립현대미술관소장
명륜동 시기 가족과 생활하며 가족 그림을 많이 그렸다. 맨 처음 그린 가족그림은 1955년작 <가족도>이다. 이 작품은 1964년 반도화랑 개인전에 전시된다. 그런데 한일경제협력 사업 일환으로 방문하여 반도호텔에 머물렀던 시오자와 사다오에게 이 작품이 판매된다. 그림이 잘 팔리지 않던 시기 부인 이순경 여사는 구매자의 명함을 받아 뒀었다. 후에 이 명함은 장욱진 작가와 친밀하게 교류한 김형국 교수가 작품의 소재를 찾아 나서는 단서가 된다. 장욱진은 그림 판돈으로 둘째 딸 바이올린을 구매하고, 나머지는 서울대 제자인 조각가 최종태와 술값으로 다 써버렸다. 작가는 판매된 최초의 <가족도> 그림을 아쉬워하며, 1972년 유사한 구도의 <가족도> 한점을 다시 그린다. 장욱진 작가 작고 이후 김형국 교수가 그림의 소재는 파악했으나 시오자와 사다오가 병환 중에 있어 작품확인에는 실패한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을 진행하며 미술관에서 작품을 다시 찾아보기로 한다. 다행히 구매자의 아들과 연락이 닿아 아버지의 아틀리에 다락방에서 작품을 찾아낸다. 이런 미술관의 노력으로 일본에 판매되었던 그림을 재 구매하여 두 작품을 나란히 전시하게 된다. 회고전에서 두개의 <가족도> 그림은 다시 찾게 된 이야기와 함께 단연 화재가 되었다.
<가족도> 전시 판매를 도왔던 반도화랑은 이대원이 운영(1959-1969) 중이었다. 이대원 작가의 집은 혜화초등학교 근처로 장욱진이 명륜동 거주 시 매일 걸었던 새벽 산책길에 자리한다. 농원의 화가인 그는 장욱진의 경성 제2고보의 후배이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한다. 이후 부모님이 물려준 파주의 농원을 오가며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고 화가의 삶을 살았다. 1959년에는 아시아재단 후원종료 이후 반도화랑을 인수받아 운영한다. 외국어에도 능통해서 해외에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등을 소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새벽을 무한히 사랑한 화가는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명륜동 거주시기 새벽산책을 나갔던 어느 날 혜화동 로터리에서 아동문학작가 마해송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새벽 산책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 14년 이상을 교류했다. 마해송 작가도 새벽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성균관대 앞에 살면서 선글라스를 끼고, 강아지를 데리고 밤색 점퍼에 단장을 짚고 매일 새벽 산책을 나왔다. 마치 금방이라도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옛 이야기를 들려줄 할아버지 같았다. 산책 후 두사람은 혜화동 로터리 지하에 있는 복지다방에서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장욱진, [문학사상] 1976년 1월호 표지 그림
이들의 공통점은 동심이 반영된 예술세계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한사람은 그림으로 다른 한사람은 동화로.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한국적 정서를 담아낸 동화적인 순진무구함이 배어 있다. 마해송은 방정환 선생과 색동회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고유섭과 보성고보 동기생이었다. 이들은 새벽 산책길 인연이 되어 마해송의 장편 동화 <앙그리께> 표지그림을 장욱진이 자청하여 그린다. 마해송 작고 10주기에는 장욱진이 문학사상 잡지의 표지화(1976.1월호)에 그의 모습을 담아내었다. 작가는 이제 다시 그를 볼 수 없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아침 산책길에 만났고, 우리는 아이들 이야기를 했고, 그때 하늘에는 달과 해가 친한 동무들처럼 떠 있었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길 위의 미술관 - 장욱진②] 가족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이 그림이 되다 < 답사 < 아트체험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