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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이야기 17] - 종묘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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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 정전을 그렸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인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죽은 조상의 혼(영)은 묘(廟)에 모시고, 시신을 땅에 묻어 묘(墓)라 했다. 무덤인 것이다. 그럼 보이지 않는 혼을 어떻게 모셨을까? 죽은 조상의 혼은 신주(神主)라는 나무패(위패)로 받들어 모신다. 우리가 흔히 '혼구멍 낸다'라고 할 때, 혼구멍은 신주에 뚫린 구멍을 말한다. 즉 죽어 혼을 만들어 신주의 혼구멍을 드나들도록 하게 한다는 말이니,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종묘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는 곳으로 국가나 조정 자체를 의미할 정도 존엄하다. 얼마나 중요한 지는 정도전이 조선을 건국하고 가장 먼저 지은 것에서 알 수 있다. 나라의 법궁인 경복궁보다도 1년 먼저 지었고, 지을 때에도 그냥 지은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전해오는 『주례』<고공기>라는 법식 책에 의해서 지었다. 종묘는 도성내 좌측인 동쪽, 사직은 우측인 서쪽에 둔다「左廟右社」라는 내용으로 궁궐의 중심인 동쪽에 지었다.


종묘의 정전을 본 손자가 물었다. "왜 이렇게 길게 지은 건가요?"


현재 정전의 길이는 105미터나 되는데, 왕이 죽어 신위를 자꾸 모시다 보니 처음의 7칸 규모에서 점점 동쪽으로 더 늘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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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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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세자 조상신이 걸어 다닌 삼도


5 대가 지난 왕은 원칙적으로 정전에서 영녕전으로 신위를 옮겨 봉안한다. 그러나 태종이나 세종과 같이 공덕이 뛰어난 선왕의 신주는 옮기지 않고 영구히 정전에 봉안했다. 그런데 1592년 임진왜란이 터졌다. 선조는 몽진할 때에도 이곳 종묘에 모신 왕들의 신위는 꼭 가지고 다녔다. 종묘에 모신 역대 왕들의 신위가 곧 나라인 것이다. 그런데 왜군의 공격에 의해서 화마를 입자, 선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광해군이 중건했다. 그러나 광해군은 종묘를 자신의 손으로 짓고도 그 신위가 종묘에 입향되지 못했다. 중종에 의해 강제 폐위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폐위된 연산군도 이곳에는 없다.


종묘의 대문인 외대문을 들어서면 키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정규 해설이 없는 토요일에는 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맘 껏 누릴 수 있다. 명지대 유홍준 교수는 비가 올 때 종묘에 오면 가장 아름답게 감상 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정전에 깔린 박석 아래 한 모서리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거친 박석 사이로 빗물이 흐르는 것이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울퉁불퉁한 돌을 깔아 만든 삼도가 아스라이 멀리까지 이어지고, 수 천 그루의 나무에서 뿜어내는 정취가 마음을 안정시킨다. 이렇듯 종묘 탐방은 왕의 권위가 지배했던 궁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왕들의 영혼이 함께 해서 그럴까?


길을 따라 가다가 정전에 이르자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자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정전의 분위기가 손자를 압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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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에서 손자들의 모습


"할아버지, 왕들을 위한 제사는 언제 지내죠?"


묵념으로 예의를 차린 큰 손자가 질문했다. 작은 손자도 궁금한 듯 눈빛을 반짝였다.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는 1년에 5번 지냈으나 지금은 매년 봄과 가을 5월 첫번째 일요일과 11월 첫번째 토요일에 봉행되고 있다. ‘종묘제례’라고 부르는 이 제사는 통치 질서의 기본이 되었다.


"아, 종묘제례! 배운적 있어요."


종묘는 건축의 보편적 가치와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애 양식을 지닌 의례 공간이라는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세월의 흐름속에 역사 의식이 점차 사라지고 조상에 대한 생각도 흐려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건전하고 건강한 역사관과 조상에 대한 은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고 요구되는 세상이다.


종묘관람은 정해진 시간에 예약하여 해설사와 함께 1시간 정도 관람할수 있으며 지하철 종로3가역 1호선 11번출구, 1, 5호선 8번출구에서 도보로 2분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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