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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토끼를 사랑하는 청년 작가 - 박정은

[청년 작가 열전 ④]

토끼를 기괴하게 사랑하는 작가
사랑을 겪는 이들에게...
어젯밤에 뭐 했니?

 우리나라 예술계를 이끌어 갈 청년작가들을 소개하는 <청년작가 열전>.   꿈과 패기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쳐 나가는 진정한 예술인. 그들의 땀 방울에 우리나라 문화와 예술의 미래가 달려 있다. 오늘은  청년 예술가 박정은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박정은 작가. 작품과 함께 한 컷

어릴적에 이솝 우화를 많이 듣고 자란 세대는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것이다.  영리하고 꾀 많은 토끼는 거북이보다 발이 빠르다.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거북이보다 두 발로 점프하는 토끼를 거북이는 이길 재간이 없다. 토끼는 거북이 오기를 기다리며 잠을 청한다. 한 참 잠을 잔 뒤에 일어나보니 거북이는 저만치 목표점에 근접해 있다. 속도를 내어 달려가지만 거북이를 당해낼 수가 없다. 거북이가 이긴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게으름을 피우기보다는 우직하게 한 발 한 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결국 승리한다는 성실에 대한 교훈이다. 요즘은 이 내용에 잠자고 있는 토끼를 그냥 지나칠게 아니라 깨워 같이 가야 하는것이 페어 플레이 정신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토끼는 예로부터 조상들에게 꾀 많고 영리한 동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막상 토끼를 대하면 그런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에 놀란다. 먼저 순백의 색깔이 그렇다. 세상에서 범접할 수 없는 순수한 흰색.  흰색을 띈 동물들이 많지만 토끼의 순결한 흰색에 필적할 동물은 없다. 그리고 더 놀라는 것은  겁먹은 토끼의 눈이다. 금방 눈물이라도 흐를 것과 같은 그 눈동자는 마냥 가냘픈 소녀의 이미지이다. 늘 지켜 주어야 할 것 같은 순수한 소녀. 누가 이런 토끼를 꾀 많은 동물로 묘사했는지? 엣날부터 전해오는 구전 동화, 토생전, 별주부전등을 보면 조상들이 토끼를 보는 안목과 현재의 느낌이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토끼를 사랑하는 작가를 만났다. 박정은 작가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예쁘고 순결한 토끼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소 기괴한 토끼이다. 동물에게 물려죽기도하는... 왜 동물에 집착하는지? 하필 토끼인지, 그리고 그 토끼를 기괴하게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박정은 작가이다.


 - 자기 소개를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1997년 생이고 국민대학교에서 입체 미술을 전공한  박정은입니다.

The Cycle, 종이에 콘테, 39x54cm, 2021

 - 다소 기괴해 보이는 동물들을 작품화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은 반려견과 반려묘가 대세인 상황이다. 모두 자기가 키우는 번려 동물을 더 예쁘게 가꾼다. 왜  동물을 기괴하게 만드는가?


제 작품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은 자연의 숭고입니다. 그로테스크한 자연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혼란 속의 질서와 잔인함은 저에게 해방감과 영감을 줍니다. 저는 인공적이고 보기 좋게 구성된 형태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만들어 내고자 하는 기괴하다고 할 수 있는 형태들은 자연과 인간에게 느끼는 애정이 담긴 시선이며 저 자신과 제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더욱 솔직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이를 통해 저는 실존하는 것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드는 작품들은 사랑에 기인한 비이성적이고 자기 혐오적인 생각, 형체 없는 공포와 위협을 가시화한 결과물입니다. 작품을 통해 예측이 불가하고 맥락이 없는 공포를 안전하고 통제가 가능한 현실의 공간으로 옮기는 성찰과 치유의 과정입니다. 저의 작품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시선이나 스스로의 기준에서 자유로워지며 원초적인 감정과 마주하기를 바라고 창작 과정에서 느낀 이해와 치유의 경험을 관람하는 이들도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갤러리 소원 전시 전경

-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토끼라는 소재를 왜 사용하는지? 토끼가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어린 시절 토끼는 저에게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당연하였습니다. 친할머니가 마당에 토끼장을 지어 토끼를 기르셔서,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가면 한참을 토끼들을 구경하고 만지는 데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동물들은 애완용이 아니라 가축이었는데요. 우리 가족은 토끼 고기를 먹기도 하고 할머니는 토끼 가죽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셨습니다. 토끼를 들어 올릴 때면 손잡이처럼 붙어있는 거대한 귀를 꽉 잡고 들어 올렸는데 그럴 때면 그 동물은 육중한 뒷다리를 버둥거리며 저항했습니다. 어린 저는 그들을 길들이고 싶어 있는 힘껏 귀를 움켜쥐곤 했고 그들의 발톱에 긁히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촉감과 무거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제 눈을 사로잡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철창인데요, 철창을 발견하면 저는 본능적으로 그 안에 어떤 동물이 숨어 있을지 기대하며 관찰하곤 합니다. 어느 날은 할머니 집에서 밤 산책을 하다 논 한켠에 나 있는 둥그런 우리를 발견하고 홀린 듯 다가갔습니다. 동물을 가두어 놓는 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주변에 무성히 자란 잡초와 쓰레기들로 어떤 동물이 들어있는지, 사용되고 있는 우리인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잡초 사이를 비집고 우리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를 저는 이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우리 속에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수입해 온 것 같은 거대한 토끼들이 열댓 마리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인기척을 느낀 토끼들은 일제히 거대한 귀를 세우고 달빛에 눈을 반짝이며 제 눈을 바라보았고 그때 느낀 생경함과 두려움은 지금까지도 저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토끼는 추상적인 감정과 작품을 잇는 연결 고리가 되었습니다. 토끼는 제가 더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뮤즈이며 갑옷 같은 존재입니다. 제가 살아가며 느끼는 폭풍과도 같은 감정들과, 그것과 상반되게 무심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괴리감을 낳았고, 이 괴리감은 인간보다는 제 인식 속 토끼의 이미지와 결합되어 제 경험과 자아를 투영하도록 이끌었습니다. 포식자를 발견하기 위해 커진 귀와 튀어나올 듯한 두 눈, 빠르게 도망치기 위한 커다란 뒷발을 가진 토끼는 저에게 더 큰 동질감으로 다가옵니다.

Iron Nest, 고철, 나무이젤, 129x60x46cm, 2022

- 작가는 토끼뿐 아니라 버려진 고철, 폐자재를 작품에 많이 활용한다. 왜 버려진 것들을 작품에 사용하는가? 그리고 작가는 작품명에 참 재능이 있는것 같다. <어젯밤에 뭐 했니>라는 제목은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이 작품의 소개도 부탁드린다.


"사랑을 향한 갈증은 음식을 향한 갈증과 닮았다. 마음에 난 구멍을 메우기 위해 쓰레기 같은 애정을, 쓰레기 같은 음식을 몸속으로 밀어넣는다. 더부룩함을 견딜 수 없어 다 토해낸다. 누군가 물을 것이다. 어젯밤에 무엇을 했느냐고. 나는 수치스러움에 말을 돌려버린다.” (작가노트에서 발췌)


스리랑카의 쓰레기장에는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를 먹는 코끼리 떼가 출몰합니다. 여기에서 모티프를 따온 “어젯밤에 뭐 했니?”는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욕망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태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어젯밤에 뭐 했니, 고철, 62x42853cm, 2022

버려졌다는 것은 거절당했음을 의미하지만, 기존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버려진 것들은 저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됩니다. 저는 버려진 것들에게 애정을 느끼며 작품의 재료 이외에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찾아내는 데에도 큰 흥미를 느낍니다. 그래서 집에 주워 온 물건들이 많습니다.


버려진 물건들로 작업을 할 때에는 기성품이 작품에 부여하는 우연성과 강제성을 즐기기도 합니다. 아무리 형태를 변형해도 그들이 갖는 정체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형태를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조형으로 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제 작업의 정체성에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전시 전경, 공간 황금향 개인전

- 박정은 작가의 작품중 <사랑을 겪는 이들에게>라는 작품이 있다. 제목이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마성이 있다. 작가가 혹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닌지? 작품을 만들 때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드는가? 그리고 작품을 만들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저는 형태를 구성할 때 즉흥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순간에 집중하여 직관적으로 작업하곤 합니다. 특히 생명체에 기반한 형태를 만들다 보니 그들의 움직임이나 생동감을 담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 작품을 만들 때 경험과 감정들을 노골적이고 솔직하게 녹여내고자 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랑과 사랑에 의한 슬픔은 제 작업의 주된 소재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슬픔의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들을 작품에 투영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작품들과 많은 내적 대화를 나누며 작품들과 또다시 사랑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사랑은 고립감을 증폭시키고 스스로를 취약하게 만드는 감정입니다. 슬픔, 분노, 질투, 두려움 등의 감정을 마주하며 나약한 자신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랑에 빠진 저는 극도로 희생적이고 불안정하며 의존적인 모습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때때로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나체의 모습을 넘어 살가죽마저 벗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겪는 이들에게>는 철망, 스폰지, 폐지 등으로 토끼의 골격과 근육을 만들고 종이 테이프를 붙여 제작한 작품입니다. 거대한 크기에 비해 변형이 쉽고, 오래 유지될 수 없는 재료들을 사용하여 사랑 앞에 한없이 나약하고 취약해지는 경험을 대변합니다. 사랑을 '겪는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나누는 것 이상으로 사랑을 위해 희생하고 아파함을 뜻합니다.


조형 작업을 하지 않을 때에는 항상 드로잉을 합니다. 드로잉은 저에게 있어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솔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만들지 않을 때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신체 능력을 향상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종이에 콘테, 54x39cm, 2021

- 자신에게 예술 활동은 어떤 의미인가? 왜 작품 활동을 하는가?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이랄까, 포부는 무엇인가?


예술 활동은 저에게 가장 높은 차원의 쾌락을 주는 행위입니다. 제가 가진 자기 표현에 대한 욕구는 다른 어떠한 행위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예술 활동을 하는 저는 이미 제가 항상 꿈꿔온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행복은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으며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에 이미 완전함을 느낍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와 그리고 세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인지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게 될지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멈추거나 익숙해지지 말자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저는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세상을 보고자 합니다.

휴지심에 테이프를 감아 형태를 구성한 모습, 철, 폐지, 마스킹테이프 가변 설치,  2023

 - 함께 작품 공간을 사용하는 동료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함께 작품 공간을 사용하는 동료들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학부 생활 동안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사람이 없는 시간을 피해 작업을 하고, 도움을 받는 것을 극도로 꺼리곤 했습니다. 제가 가진 역량을 파악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치 있는 시간이었지만 요즘은 동료 작가들과의 시간이 매우 소중합니다. 서로 돕고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이 유익하며 즐겁다는 것을 점점 알게 되고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함께 성장하고 그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내가 가진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합니다. 저에게는 작업을 통해 만나는 모든 인연이 매우 소중하고 제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에 응해 주어서 감사드린다. 다음 추천 작가에 대해서 소개 부탁한다.


평소 저는 드로잉 작업도 많이 하면서 다른 매체의 작업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와 맞게 저와는 전혀 다른 매체인 평면 작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주기범 작가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주기범 작가는 회화 작업을 하지만 캔버스를 조립해서 입체적으로 설치하거나 구조물을 이용하여 전시장 벽을 포함하여 전시 공간 전체를 쓰는 설치 형식의 전시를 합니다. 회화 작업임과 동시에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전시 방식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최근 전시에서는 변형 화판을 이용한 작업을 진행도 했었는데요. 회화 작가이지만 다양한 형식을 연구하는 주기범 작가의 작업 세계관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 데일리 아트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자라나는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는 좋은 창구와 소통의 장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아티스트들에게 좋은 영감의 원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정은 (Jeongeun Park)


Seoul, Korea


1997.02.15


2024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입체미술전공 학사


2023 갤러리 소원 개인전


2024 공간 황금향 개인전


dkdlel0215@naver.com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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