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문학관 ⓒ백명훈
문학이 지상의 마지막 양식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가져본 시절이 있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그 문학에 대한 동경의 별이 서구에서 많이 반짝거렸다. 혹은 러시아에서도...
그러던 중 외래어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글을 쓴 민족작가의 글을 발견하고, 이루어진 성취를 자각하게 되었다. 진리가 그러하듯 어떤 진실은 가까이에서 발견되곤 한다.
글이란 '도를 닦는 그릇과 같다'는 치열한 구도 정신의 일관된 자세로 임했던 한 분의 삶과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주목되는 작품을 썼지만, 어떤 작가는 친일과 변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흠집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작가는 나라의 품위를 훼손시키지 않고 한 길을 뚜렷이 걸었다는 데에 더 시선이 갔다. 시대의 조류에 물들지 않고 흠결없이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나는 그런 고집을 지키는 분들에게 존경을 바치고 요즘 말로 팬심을 드러낸다.
작가에게도 응원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황순원
너무나 잘 알려져, 새로운 앎이 더 필요없다고 여겨지는 소설가 황순원. 작품의 탐색에서 굳어진 고착을 허물고 해체하여 나만의 해석을 심고 싶은 것이 황순원의 『소나기』다. 2025년에 한강의 작품도 필요하지만 『소나기』 역시 그러하다고 믿는다. 교과서에 실림으로 국민적 공유글이 된 황순원의 소나기가 신생을 입고 젊은 세대에게 어필 되었으면... 그래서 양평의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을 찾았다.
아직 모르거나 비어있는 영역을 채우고 싶다. 우리들 안에서만 박제되고 짧은 소멸을 맞음은 아쉽지 않은가!
'황순원 문학촌' 촌장 김종회 교수에 의하면 이곳은 양평군과 경희대를 설득 협조를 얻어, 자신의 은사인 황순원 작가를 위해 만들어진 기념관이라고 한다. 국내 백여 곳의 문학관 중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황순원 문학관에서 소나기의 무대를 재현한 공간
문학관 내부 게시물
황순원 작가가 경희대 재직 중 국문과에 학생들이 몰려, 서울대 국문과 학생 유치가 역부족이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초시가 어떤 신분인지, 소녀의 이름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신비로운 이야기에 끌려갔던 단편의 귀한 호흡. 비를 피한다 하지 않고 “그리로 가 비를 그을 수 밖에 “라는 표현이 아직도 싱그럽다.
우리 안에 깨끗한 지역이 아직 남아 있다면, 정화가 필요하다면 작품 『소나기』 속으로 들어가 그 서정적 세례를 받아보자.
비를 피하여 수숫단 속에 들어앉은 소년과 소녀 이들에게 신분의 경계는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소설의 한 대목을 생각해냈다.
"그날 도랑 건널 때 내가 업힌 일 있지?
그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
그리고 종결에서
‘"그런데 기집애는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든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 달라구 …"
이후 더 이어지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그러기에 더 많은 생각을 유추케 하는, 순수성과 완결성의 미학이다.
오래전 읽었던 황순원 작가의 짤막한 시 여덟자, <빌딩 >을 소개한다.
"하모니카
불고 싶다"
이 시적 발상은 작가의 순수한 성품을 드러내준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데는 하나의 단어만 필요하다 '고 엄격한 표현에의 정의를 내렸다. 그와 같이 말 다스리기에 치열했던 소설가 황순원.
문학관 내부 게시물
글 쓰는 이들에게 모범적 사례인 듯 싶다. 소설과 달리 시는 숨을 구석이 전혀 없는 무서운 쟝르인데 '문학을 하는 사람에겐 작품을 쓰는 일이 바로 구원입니다'란 일침은 가슴 깊이 모셔야 할 주문 아니겠는가!
내면만 아니라 외면도 잘 가꾸라고 부친이 선물한 면도기, 노년에 즐겨쓰던 검은 베레모가 단정히 걸린 기념관 내부 14,000평 야산 부지 널찍한 야외 면적까지 합하여 타 문학관과 구별되는 이곳은 그래서 이름도 '문학촌'이라 불린다. 5월부터는 인공 소나기도 뿌린다는데 그 소나기를 피해 나는 어느 소년과 수숫단속에 숨어볼까?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부친. 그 아들 시인 <즐거운 편지>의 황동규로 이어지는 삼대의 빛나는 족적, 복 받았다 하리. 목월과의 우정으로 자식을 낳으면 이름을 똑같이 동규로 하자고 한 약속을 실천하여 그 자식들이 각자 황동규 박동규로 불리우고 있는 낭만적 의기. 봄이 와 진달래 핀 양평 황순원 선생님 묘지에 바람이 스치우는데...
학, 곡예사,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쓰던 매서운 문학 정신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옮겨지기를.
[길 위에서] 산너머 저쪽, 소나기 마을-황순원 문학관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