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리뷰
역사는 어느 생과 사, 사이에서 쉼 없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보통 후대가 보고 이해하는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역사는 선택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느 시대 어느 왕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하찮은 개인의 역사는 어떠한가. 개인의 역사에는 승패가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 나, 토니 웹스터가 묘사했듯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산(p242)' 개인에게 역사는 비교적 죄책감과의 싸움, 합리화의 과정이 전부일 것이다. 그렇게 개인의 역사는 되도록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립되기 마련이다.
에이드리언(10대 때 자살한 친구)의 다이어리를 그 시절 자신의 애인(짝사랑에 가까웠던 첫사랑)의 엄마에게서 찾아가라는 연락은 토니에게는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이제까지 이기고 져 본 적 없던 삶에서 제대로 승패에 직면하게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무료한 삶을 견디며 죽음을 기다리기만 하는 그에게 이 위기는 어쩐지 꿈의 실현으로 느껴지게 한다.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환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 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p242.
토니 웹스터는 진짜로 고통을 느꼈을까? 토니 웹스터가 인생의 말년에 그의 역사를 재편해야 하는 위기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자기 멋대로 잊으려 했던 것들, 기억하려 했던 것들을 확실시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지점에 이제까지의 나를 버리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있음을 그는 알고 있다. 그것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흔히 고통을 동반한다고 들었을 터다.
‘'나는 마침내, 내가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에이드리언의 논거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었고, 그에게 경외심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도량이 넓고 준열한 기질의 소유자였다. 그는 논리적으로 사고했고, 논리적 사고로 도출한 결론에 따라 행동했다. 반면 우리 대부분은,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논거의 하부구조를 세운다. 그런 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상식이라고 말한다.’ p95.
이제껏 돼보지 못했던 소설 주인공의 삶, 에이드리언 같은 삶을 살아볼 기회가 그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사실 토니는 영원히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사람일지 모른다. 베로니카와의 관계적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토니라는 사람 자체의 문제로 보인다. 해서 그에게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는 게 별게 없어 보인다. 끝까지 미스테리로 남을 베로니카에게 인정받고 싶은 삶에 매우 닿아 있다. ‘에이리드리언 같은 사람’이라면 베로니카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언젠가 새겨진 그 기준이 굉장히 절대화되어 보인다. 새로운 역사의 시작점에서 그는 다시금 예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것은 단지 기회에 지나지 않았다. 기회가 주어진다고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다.
‘인간은 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아니다, 생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그 생에서 가능한 모든 변화의 닫힘을 향해, 우리는 기나긴 휴지기를 부여받게 된다. 질문을 던질 시간적 여유를. 그밖에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나?’ p255
말년의 토니에게 던져진 수수께끼들은 자신의 역사를 재편하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누구나 기회의 결과가 달콤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러한 예감이 틀림을 이 소설은 말해준다. 때문에 이 소설의 한국어판 제목은 아이러니하다. 토니 웹스터는 개인의 역사에서 패자가 된다. 그리고 승자들에 의해 재편된 역사로 자신의 역사를 기억할 것이다. 기억해줄 후세나 부인, 친구도 없이 그는 완전한 혼자다. 다만 그는 재편된 역사가 동반하는 고통을 달콤하게 감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