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 설계, 그 어긋난 거리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
※ 이 글은 브런치 시리즈 〈기후는 정치다〉 중 8편입니다.
환경에 진심인 시민은 많은데, 왜 정책은 그대로일까?
실천과 제도, 거리와 권한 사이의 간극을 다시 묻습니다.
플라스틱 분리배출, 다회용기 사용, 대중교통 이용…
한국 사회는 생각보다 환경 실천률이 높은 편이다.
환경에 진심인 시민은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좋은 정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시민과 정책 사이에, 구조적 단절이 있기 때문이다.
캠페인 참여율은 높지만,
지자체의 기후 예산은 여전히 전체 예산의 1%도 되지 않는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탄소중립 필요성에 동의하지만,
탄소세나 자동차 제한 정책은 도입되지 못한다.
시민은 움직이고 있는데,
정책은 시민의 ‘뒤’가 아니라, ‘옆’에도 있지 않다.
지금의 환경정책 구조는
시민에게 의견을 묻는 듯하지만, 결정은 먼 곳에서 내려온다.
공청회는 끝났고, 보고서는 닫혔고,
‘시민참여’는 설계된 틀 안에서만 이루어지며,
가장 많이 실천하는 사람들은 종종 논의의 테이블에 없다.
정책은 시민을 동원하지만,
시민은 정책을 움직이지 못한다.
자원순환센터 인근 주민이
지하철 출퇴근자들이
임대주택에 사는 청년이
환경정책의 당사자이자 설계자로 서야 한다.
그들의 경험과 생활이 정책의 언어가 될 때,
실천과 설계는 처음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이제 정보를 몰라서 실천하지 않는 시대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접속’이다.
시민이 정책 결정에 접속할 수 있는 구조.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
정책을 감시하고 평가할 도구
실천과 제도가 교차하는 플랫폼
이게 없으면 정책은 계속 공중에 뜨고,
시민은 계속 아래에서 혼자 실천하게 된다.
시민의 실천과 정책의 설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온다
나는 그 지점을 믿는다.
실천이 쌓이고, 제도가 따라오고,
그 사이에 신뢰가 생기는 구조.
우리는 정책의 바깥에서 더 이상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정책 안으로 들어가서, 같이 설계해야 한다.
환경은 개인의 의식이 아니라,
집단의 구조로 설계될 때 진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