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레기 봉투보다 법을 들기로 했다

작은 실천에서 정책으로, 내가 옮겨선 이유

by 전재윤
※ 이 글은 브런치 시리즈 〈기후는 정치다〉 중 1편입니다.
시민 실천과 정책 사이의 간극, 환경운동과 정치 사이의 연결을 기록합니다.


분리배출은 열심히 한다. 텀블러도 잘 들고 다닌다.


SNS에서 환경 콘텐츠가 보이면 공감 버튼을 누르고,

뉴스에서 플라스틱 문제를 다루면 내 일처럼 화가 난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뭘 바꾸고 있는가?”


나의 행동은 분명 옳았다.

하지만 그것이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플라스틱 라벨을 떼고, 일회용 컵을 피하고, 자전거를 타는 하루하루는

때로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지만,

그 사이 정책은 내 행동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쓰레기통 앞에서 고민하고 있었고,

정책은 이미 그 쓰레기를 ‘재활용 불가’로 분류하고 있었다.


정의감은 강했지만, 무력했다

환경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작은 실천의 힘’을 믿었다.


길 위에서 피켓을 들고, 시민 캠페인에 참여하고,

분리배출 교육을 하며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이상한 피로가 쌓였다.


언론은 재활용률이 올라갔다고 했지만,

실제로 폐기물은 증가하고 있었다.


정부는 플라스틱 감축을 선언했지만,

현장에서는 커피숍 테이블 위에 아무렇지 않게 일회용 컵이 쌓여 있었다.


개인의 책임이 집요하게 강조될수록,

제도의 책임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정의감은 강했지만, 구조를 바꾸지 못하는 정의감은 금방 지친다.


나는 왜 ‘법’을 이야기하게 되었나

그 후 나는 ‘참여’라는 단어에서 ‘정책’이라는 언어로 이동하게 되었다.


단지 문제를 알리고 공감받는 것을 넘어,

문제를 바꾸는 구조에 손을 대고 싶어졌다.


국회의 입법 과정은 처음엔 낯설고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우리 삶의 무수한 장면들이 전부

법과 제도에 의해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원순환기본법, 탄소중립기본법, 환경영향평가법.


이름은 낯설어도,

이 법들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분리배출을 잘해도

재활용업체는 기준 없이 폐기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캠페인을 해도,

프랜차이즈 본사는 이를 외면할 수 있다.


환경은 결국 ‘설계’의 문제다.

그리고 그 설계를 움직이는 도구는 ‘의지’보다 ‘법’이다.


제도는 느리지만, 가장 멀리 간다

정책은 느리고, 정치 과정은 복잡하다.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논의와 대립, 관료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한 번 제도가 만들어지면,

그것은 수많은 개인의 일상을 바꾼다.


텀블러 할인보다 컵 보증금 제도가,

시민 캠페인보다 일회용 컵 규제가,

SNS 공감보다 조례 하나가 더 많은 변화를 만든다.


나는 지금도 분리배출을 하고,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실천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일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것이 내가

‘쓰레기봉투’보다 ‘법’을 들기로 한 이유다.


이 글은 단지 내 변화의 기록이 아니다.

더 많은 이들이 개인의 피로를 넘어, 구조의 변화로 이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