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추앙 벚꽃 말고
샛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이 너무 아름다워서일까. 봄이면 꼭 사랑에 빠지고 싶다.
3년 전 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단어가 등장했다. 우리가 새로운 사랑의 언어를 얻게 된 순간이었다.
아버지 밭일을 도우며 옆집에 사는 구씨(손석구). 이름이 뭔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초록빛이 일렁일 만큼 소주병을 방에 모아두며 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세 남매 중 가장 말수가 없는 막내 미정(김지원)은 대뜸 그런 구씨에게 “날 추앙해요”라 말한다. 아니 요구한다. 이후 너도나도 ‘추앙’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의 해방일지>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처음에는 추앙이 뭔지 몰랐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해. 나는 매일 새벽까지 친구들과 단체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며, ‘추앙은 조금 오글거리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사랑이라면 대충 알겠는데. 추앙이란 건 어떻게 하는 거지. 같은 질문을 하는 구씨에게 미정은 “응원하는 거. 뭐든 될 수 있다. 뭐든 할 수 있다. 응원하는 거”라 답한다. 물음표가 지워지지 않는 대답이었다. 그럼 응원은 어떻게 하는 거지. 머릿속에 떠올랐던 건, 전형적인 응원의 방법들. 구씨라는 인물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미지들이었다.
미정은 “나는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고 수시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사랑도 노동이다. 내 모습이 “누구랑 있으면 좀 나아 보일까” 하나하나 따져보니 피곤하다. 사랑은 등가교환이다. 저울에 매번 내 마음 네 마음을 올려보니 마음을 “전적으로” 주지도 받지도 못해본다. 계산할 건 많은데 가진 건 줄어드는 교환 속에서 미정은 조용히 지쳐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긴긴 시간 이렇게 지내면 말라죽을 것 같아서 당신을 생각해낸 거예요.
천둥 번개가 치던 밤. 미정은 신원 미상의 구씨에게로 달려간다. 이대로 살면 정말 죽을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소주 냄새를 풍기는 구씨를 찾아가 추앙을 요구한다. 이듬해 봄이면 “너도, 나도 다른 사람이 돼 있을 게 확실하다”고 믿으며.
마침내 구씨의 추앙도 시작된다. 아침 출근길에 용달차로 역까지 배웅 나가기, 퇴근길에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가기. 그 외에 라면 끓여주기, 아이스크림 사주기, 돈까스 사주기 등이 있다. 구씨와 미정 사이에 추앙이라는 단어가 몇 번을 더 오가는 동안 겨울이 된다. 봄에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 같았던 둘은 겨울이 되니 분홍색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미정을 이해하게 된 건 후년 봄이었다.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만 있는 게 익숙해진 아침 8시의 지하철 3호선. 무심코 둘러본 낯선 얼굴들에게서 미정이 겹쳐 보였다. 모두가 해방이 필요해 보였다. 서울의 인파와 지하철의 혼잡도는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줄 서서 먹는다는 맛집에서 점심을 먹어도 맛있지 않았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데도 매일 피곤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가 지루했다. 앞으로 이 하루가 쭉 반복될 걸 상상하는 게 세상에서 무엇보다 무서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너무 지쳐있었다. 중간에 개새끼도 한번 만나보니 사랑은 지긋지긋했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니라 추앙이었다.
그런데 제길. 나에겐 추앙해달라고 요구할 구씨가 없던 것이다. 현실 반영 드라마도 결국 드라마구나. 나는 누구를 추앙해야 하는가. 내게 이웃집에 사는 잘생긴 알콜중독자는 없었지만, 늘 응원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5분 남짓의 채팅으로 하루치 웃음을 채우게 하는 친구들이었다. “쨍하고 햇볕 난 것처럼. 구겨진 것 하나 없이” 행복하기만 했으면 바라는 사람들. 카카오톡 상단에 고정해 둔 채팅방에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추앙 뭐 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