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의 시
이선영의 초기 시는 단정하고 반듯하다. 그러나 그 단정하면서 반듯한 외관 뒤에는 강한 억압의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작품 곳곳에 잠재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은 시인의 내면을 규율하는 강력한 권위로 작용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이나 통제가 아니라, 침묵과 절제로 유지되는 엄격함이 오히려 더 강한 압력으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선영 시인이 서른 살을 앞두고 발표한 시「서른 살을 기다리며」는 이러한 억압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서른 살이 되는 그날 아침은 분주하리라
거울 앞에서 새로이 몸단장을 하리라
서른 다발의 꽃과 좋아하는 음악으로
서른 번째 생일을 자축하리라
그 첫날 아침엔
스무 살 이후 금지되었던 내 모든 장난들을 풀어놓으리라
무기한 감금되었던 내 모든 죄수들을 방면하리라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낡아서 마음껏 잡음을 내는 라디오처럼 살리라
낡고 낡아서
더 이상 낡을 수 없어서
이윽고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
한 데에 버려지는 물건처럼
비로소 나의 삶을 살아가리라
-이선영, 「서른 살을 기다리며」 전문
이 시에서 ‘서른 살’은 단순한 연령이 아니라 전환의 상징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억압과 금지의 시간이었다면, 서른 살은 그 금지를 해제하는 경계선으로 설정된다. 특히 “무기한 감금되었던 내 모든 죄수들을 방면하리라”라는 구절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죄수’는 실제 범죄 의식이 아니라 내면에 억압된 욕망과 충동, 그리고 금지된 장난들이다. “스무 살 이후 금지되었던 내 모든 장난”이라는 표현은 사회적으로 성인이 된 이후 더욱 강화된 규율과 통제를 암시한다. 장난은 본래 생의 활력과 자유의 표지이지만, 그것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은 시적 화자의 일상이 얼마나 긴장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으리라”라는 선언은 현재의 삶이 두려움에 의해 규정되어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두려움의 대상은 추상적 세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권위, 이를테면 가부장적 아버지나 보수적인 가정, 혹은 내면화된 규범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선영의 초기 작품에서는 검은색의 늙고 낡은 무표정한 형상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그것은 다시 아버지의 모습과 연계된다.
집에 들어서면 꼭 그 자리
어둠의 한 귀퉁이에 시커멓게 정차해 있는
아버지, 고물 자동차
-이선영, 「아버지, 고물 자동차」
아버지는 검정색 중고차를 몰고 나녔다. 낡은 자동차는 아버지와 동일시 되면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결코 자신의 분신을 폐차시키지 않는 아버지의 고집스러움에 시적 화자는 불편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어둠의 한 귀퉁이에 시커멓게 정차해 있는" 고물 자동차의 형상은 곧 시인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시 「서른 살을 기다리며」로 돌아가 보자. “낡아서 마음껏 잡음을 내는 라디오처럼 살리라”라는 구절 역시 상징적이다. 잡음은 통제되지 않은 소리, 즉 질서 밖의 발화이다. 그는 지금까지 ‘맑고 바른 소리’만을 요구받아 왔으나, 이제는 불규칙하고 거슬리는 소음까지 포함된 존재로 살고자 한다. 더 나아가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 한 데에 버려지는 물건처럼” 살겠다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버려짐을 통해서라도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드러낸다. 이는 “나를 제발 놓아달라”는 내면의 절규와 다르지 않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무의식이 ‘죄수’의 형상으로 인격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죄책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무의식은 종종 상징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윤동주의 시에서는 아직 완전히 인격화되지는 않은 그림자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이상의 작품에서는 거울 속 분신으로 타자화되어 나를 위협하였다. 이선영 시의 경우, 억압된 감정은 ‘감금된 죄수’라는 구체적 존재로 형상화된다. 이는 무의식의 내용이 이미 상당 부분 의식의 언어로 올라왔음을 의미한다.
무의식이 인격화된다는 것은, 그것이 더 이상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대면 가능한 대상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죄수들을 방면하겠다’는 선언은 곧 억압을 자각하고 해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죄책감을 덜어내어 그림자의 압력을 낮추는 일종의 ‘김 빼기’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 언어를 통해 안전하게 배출하려는 시도이다.
이 시는 특정 개인의 고백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수 있다.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수많은 ‘금지된 장난’을 경험한다. 그것은 사소한 일탈의 욕망일 수도 있고, 사랑의 방식이나 진로의 선택에 대한 자유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금지들이 반복될수록, 죄책감은 가중되고 내면의 죄수는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다.
그 죄수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침묵 속에 감금될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잠긴 문을 두드린다. 분노, 우울, 무기력,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문학 치료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 죄수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이다. 이선영이 죄수라 부른 그것을 누군가는 ‘그림자’라 부를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슬픔’이나 ‘두려움’이라 명명할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 속의 감정을 언어화하고 인격화하는 방식은 현대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예컨대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에서는 기쁨, 슬픔, 분노, 두려움, 혐오 등의 등의 감정이 각각 독립된 인물로 등장한다. 이는 인간의 내면이 단일한 자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목소리들의 집합임을 우화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인격화란 무의식의 내용을 대화 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것은 나의 분신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나와 갈등하는 타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통합의 가능성에 접근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선영에게 서른 살의 생일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진정한 나 자신'으로 새로 태어나는 날인 것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내 마음속에는 어떤 죄수들이 감금되어 있는가.
-스무 살 이후 금지된 장난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나는 감금된 그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문학은 당신에게 그 문을 조심스럽게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