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2024년 7월 15일 모두의 만족 엄지 척 닭다리 삼계탕
“혜성아! 잘 쉬었어?”
“네!”
“야! 근데 오늘 어쩌냐? 삼계탕이다.”
“그러게요.”
“쉬고 왔으니 잘할 거야! 그렇지?”
“네!”
2박 3일 경주 여행을 하였다. 고즈넉한 천년 수도. 경주라는 도시가 그토록 중후한 멋을 지니고 있던 도시였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수학여행으로 가 보았고. 걸스카우트 집회 때문에 또 가게 되었고, 심지어 신혼여행도 경주로 갔었는데 그때마다 그 도시의 진가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경주에 왔구나'가 내 감상의 전부였다. 큰 아이가 코로나 시절 끝에 초등학교 졸업을 하였다. 그 바람에 수학여행은 갈 수 없었다. 교장의 권한이라며 교육청이 학교 측으로 선택권을 주었으나 책임전가였을 뿐이었고 정년퇴임을 앞둔 교장이 아무리 코로나가 끝나가는 기간이라 하여도 모험을 할 리가 없었다. 주변 어느 학교는 교장이 다 책임진다며 과감히 수학여행을 보내 6학년 아이들에게 환호를 받았다고 하였지만 우리 아이 학교 교장은 아무 일 없이 정년을 보장받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수학여행이 없음을 고지하였고 아이들은 무척 실망하였다. 그 바람에 우리 큰 아이는 '응답하라1988'의 덕선이가 다녀 온 경주여행을 늘 노래 부르게 되었고, 못 가서 두고두고 한이 될 뻔한 초등학교 졸업여행을 중학교1학년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드디어 경주로 가게 되었다.
사실, 경주행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경주가 제비로 뽑힌 것이었다. 올해 여름휴가는 우리 가족 각자가 가고 싶은 도시를 종이에 적어 내고 가위바위보의 최종 승리자가 뽑기로 했다. 뽑는 순간 논쟁의 여지없이 바로 그곳으로 결정하리라 합의를 본 것이었다. 재미있는 휴가 계획이었다. 누가 어떤 도시를 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 남편이 가위바위보의 최종 승리자였고, 그가 뽑은 종이에 경주가 적혀 있었다. 경주는 큰 아이의 위시리스트였다. 그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큰 아이는 소리쳤다.
"진짜 경주에 간다."
아이들과 갔던 경주 여행은 역사탐방 그 이상이었다. 경주에는 소위 MZ 세대들의 손꼽는 장소들이 많았다. 왕릉 사이의 사진 한 컷은 명장면으로 손꼽히며, 첨성대를 포함한 신라의 유적들은 찬란히 아름다웠다. 곳곳에 남아 있는 천년의 흔적은 뿌리 깊은 나무들이 말해 주었는데 나무들의 굵기가 여느 나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굵고 웅장한 나무들의 아름드리가 사방에 드리워진 왕릉의 정원에서 흐르는 시내와 새들의 소리는 마치 왕궁의 누구라도 되는 호사를 누리는 듯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하고 장엄함에 압도되었다. 아이들과의 경주여행은 정말 좋았다. 감동이었다. 다른 미사여구로 표현이 안될 만큼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 어린 시절 지루하고 하찮게 본 그곳을 40대 중반의 어른의 눈으로 보니 연륜만큼의 지혜와 고상한 운치가 느껴졌다. 아이들도 이곳을 따분한 역사책 그 어느 한 페이지가 아니라 전 세계 전무후무한 천년을 유지한 수도로 자랑스러운 자부심을 갖게 되어 모두가 흡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급식실.
‘왕궁의 정원에서 불던 바람은 어디 갔더냐’
“혜성이 일 복 많네. 얼마 전, 우동면도 삶더니 오늘은 삼계탕. 아이고!”
“일 복 많으면 좋죠.”
우스개 소리로 던진 말인걸 알지만 웃으면서 받을 수가 없었다. 초복도 아니고 말복도 아닌 제일 더운 중복, 누가 끓여준 삼계탕을 먹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자그마치 170킬로그램의 닭다리. 경주 수도의 나무 아름드리가 웅장하더냐 170 킬로그램 되는 닭다리가 웅장하더냐.
살이 통통한 닭다리 170킬로그램은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었다. 일단, 불순물 제거를 위해 씻으려고 솥에 물을 받고 쏟아부으니 솥단지 하나가 꽉 차버렸다. 이 정도로 무거운 소쿠리를 들 때는 솥단지 안으로 몸이 빨려 들어간다. 진짜 솥에 빠질 수도 있다. 허벅지에 힘을 꽉 주고 정신을 얼마나 붙들었는지 모른다. 닭다리를 씻고 데쳐서 헹구는데 국 솥 한 개로 될 양이 아니었다. 솥 한 개는 이미 무, 양파, 마늘, 황기등을 넣고 푹 끓이고 있었는데 삼계탕 맛을 내기 위해 닭다리를 반 정도만, 약 100킬로그램을 먼저 데쳐서 각종 국물 재료가 끓고 있는 솥에 넣었더니 솥이 넘치기 일보직전이었다. 닭다리를 많이 끓이면 살이 국물로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국물 맛이 나면 건져야 했다. 할 일이 태산 같아 마음이 분주하다 못해 난잡했지만 '내 몫은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 결심하니 해안이 섰다.
“진선언니! 한 솥으로는 안 되겠어요. 넘쳐요. 도저히 안돼. 우리 두 솥에 끓여요.”
“그.. 그... 그럴까?”
"옆에 낙지볶음이랑 나물 한다는데 어쩌지?"
"내가 얘기할게. "
나물팀과 잠깐의 실랑이가 있었다. 나물도 삶고 볶아야 하는 취나물이라 솥이 필요했다. 진선언니가 나물팀 은숙언니에게 얘기했다. 낙지볶음팀은 이미 조리에 들어갔고 나물팀은 아직 조리 전에라 부탁해 볼 만했다. 나물팀 은숙언니와 선미언니가 전처리실까지의 솥단지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힘겨워하는 삼계탕팀을 위해 조리실 솥단지를 포기했다.
닭다리 삼계탕의 양은 가늠이 안될 정도였고 야리야리한 진선언니의 큰 눈에는 겁이 가득했다. 닭다리 반을 솥에 넣고 끓이고 있는 동안 다른 솥의 끓고 있던 물에 나머지를 데치고 얼른 그 물을 쏟아 버리고나서 빈 솥을 만들어 데친 닭다리 반을 부었다. 원래 삼계탕이 끓고 있던 솥에서 우러낸 국물을 퍼다 다른 솥으로 날라 두 솥의 삼계탕을 만들었다. 뭔 정신으로 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저 기억나는 건 허연 닭다리를 넣고 빼고 건지고를 무한 반복했다는 것. 닭다리를 쳐다도 보기 싫었다. 멀미가 날 지경이었지만 한 50분 정도 끓였을까 진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잘 익은 닭다리를 살이 떨어져 나가기 전에 바트에 건져 냈다. 두 솥에서 국물을 끓이니 밥 말아 먹기 좋아하는 아이들 최애 메뉴라 인기가 많을 걸 예상하면 양이 모자라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잘 삶아진 닭다리를 건져 아이들의 삼계탕에 하나씩 얹어 줄 총 12 바트의 닭다리를 먼저 온장고에 안착시켰다. 그다음은 진하게 우려낸 삼계탕 국물에 무와 마늘, 파를 넣고 소금, 국 간장 마지막에 인삼가루를 부어 완성하였다.
“와! 인삼향이 죽인다.”
“우와! 얘들 좋아하겠다. 정말 맛있겠다.”
“어찌 이걸 둘이 다 했을까?”
전쟁통 같았다. 옆 솥단지도 낙지볶음이라 데치고 볶고 하느라 삼계탕에 품앗이 올 인력이 없었다. 다른 팀들도 완전 녹초가 되었다.
“우와! 국물 끝내주는데.”
“밥이 모자라겠어. 아이들이 추가 배식 많이 오겠는걸.”
“혜성아! 진선아! 수고했어.”
"아니에요.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완성을 하고 나서야 밥을 먹을 때 모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복날이라 아이들 잘 먹인다고 혼신을 갈아 넣은 음식이 완성되자 언니들의 얼굴은 벌겋게 익어 있었다. 그래도 제시간에 나오기가 어렵다 생각했던 험난할 것만 같던 삼계탕이 순조롭게 완성되어 다행이었나 보다. 도와주고는 싶었으나 모두 바빴던 터라 삼계탕 팀에 가지 못해 걱정만 했었지만 보란 듯이 해내고 나니 대견함과 안도감에 언니들이 한마디 한 마디씩 해주었다. 뿌듯함. 170킬로그램의 1700개 닭다리 삼계탕을 완성한 만족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입가의 미소로 번졌다.
엄지 척. 아이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해 무엇하랴. 닭다리 삼계탕은 완판.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결과중심의 급식실을. 국물도 거의 남지 않았다. 어깨가 으쓱으쓱. 전교 1등을 했던 날도 이리 기뻤을까. 복날 땀에 흥건하게 젖은 바지, 마스크 사이로 삐져나오는 인중을 타고 흐르는 땀, 숨이 막혀 국물을 퍼주기가 버거웠지만 그래도 수월하게 끝난 하루에 감사했다. 숨 가쁘게 빈틈없이 돌아갈 정도의 초를 다투는 압축 노동의 일과는 두시쯤 샤워실로 들어가 물을 뒤집어쓰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일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조리실 사투가 아득해진다.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감정들도 달달한 몽쉘통통과 에너지 드링크 한 모금에 오늘도 끝이구나 하며 온순해진다. 누군가 마법을 부리는가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오고 억세게 힘 좋은 아줌마들의 거친 입담들과 큰 목소리는 무장해제 되어 친절한 아가씨들이 즐비한다.
모두를 흡족하게 했던 그 경주는 사라졌지만, 모두가 맛있게 먹은 삼계탕을 만들어 급식실 모두가 뿌듯했던 하루였다.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서 삼계탕 먹었겠네. 안 끓여줘도 되겠어. 앗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