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슬프잖아요"
나는 구직 중이다. 1981년 생. 어느 덧 나이는 40대 중반. 이력서에 내세울 이력도 없고 끄적거리는 몇 개월짜리 아르바이트와 1년 계약직 한 두개 정도. 이렇게 초라해질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육아와 일을 병행하려고 했을 것이다. 아이들이야 10여년이면 훌쩍 커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호르몬의 양이 그들과 내가 상반되는 그래프를 그리며 감정이 충돌로 이어지다보니 제 방을 도피처와 낙원삼아 두문불출하며 밥상에서나 가끔 보자 애원해야 하는 사정이 되었다. 나의 피난처는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어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자하는 목적을 이뤄주는 월200만원 직장이다. 온전히 내가 기댈 곳이 그뿐인데 이제 서글프지도 않다. 어차피 피할 수 없으니 현실은 속 시원하게 받아들이는게 상책이다.
이 소박한 나의 꿈을 위해 나는 숱하게 이력서를 다시 썼다. 나의 성장과정, 성격, 지원동기 등등 20대 때와는 다르게 영- 적을 것도 없고 의지도 없다. 분명 살아온 세월은 길어졌건만 겪은 일만해도 책 몇 권은 되겠건만 1000자 내로 적어야 하는 성장과정에는 500자도 힘겹다. 그 힘겨운 500자에는 자랑은 없고 나이 먹은 티를 내는 기성세대 냄새만 가득했다. 이력서를 냈던 많은 곳들은 아마도 읽지도 않았을 나의 서류를 읽음으로 표시한채 휴지통에 버렸을 것이지만 정말 고맙게도 면접까지의 기회를 준 이도 아주 가끔 있었다.
얼마 전, 스타벅스의 바리스타에 지원을 했다가 낙방한지 열 번은 넘었을터인데 이사 온 낯선 동네서 이력서를 넣어 보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때에 면접 전화가 왔다. 설렜다. 그래도 대기업이라고 혜택도 기대해보면서 면접을 잘 보고싶은 욕구가 생겼다. 지나친 욕심이었나 싶기도 하다. 면접 날, 옷장에 그렇다할만한 외출복 하나 없는 것이 씁쓸했지만 깨끗한 남방을 골라 입고는 나보다 훨씬 어린 상관에 대한 예우를 최대한 갖추려 노력했다.
”제가 이력서를 보고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점장은 너무 어린 사람은 안돼 또는 나이 많은 사람은 안돼 하는 기준을 세워 놓지만 저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에 아주 드문 일이었지만 50대 분이랑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아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아 면접 기회를 드려 본 겁니다. 아직 40대이신데 일을 사회에서 자꾸 소외되면 너무 슬프잔아요. 아직 젊으신데.....“
그저 감사했다. 아니 감사 정도가 아니라 감동이었다. 그러나.......
그런 가뭄에 콩 나듯 선인을 만난 운빨에 비하면 그 날 나는 나를 충분히 어필하지 못하였고 금쪽같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라고 나를 위로했다. 이렇게 나를 얼마나 합리화해야 슬픈 날이 끝날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또 도전하고 있다. 굳은 살이 아프지가 않다 이제는...그래서 이력서를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