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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엄마

by MAMA

밤 사이 공기가 차가웁다 따사웁다 한다.

어느 날은 아침 결에 지면의 아스팔트 냄새가 올라 와 더워지는가 싶더니 저녁이 되면 쌀쌀한 바람에 패딩을 꺼내 입는다. 시간의 흐름이 칼에 썰린 무 동강이 모양으로 베어지는 게 아니기에 그런가 싶다 하지만, 여름이 더워질 것을 알면서도 봄을 무척 기다린다.


엊저녁에 배가 터지도록 먹은 김치볶음밥 탓인지 두 눈이 퉁퉁 부었다. 새 아파트에 이사 온 지 1년 만에 입대위가 구성이 되고 빤짝빤짝한 러닝머신과 각종 헬스 기구들이 즐비한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이 드디어 개장을 해서 한시적 무료라는 유혹에 날마다 운동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어떻게든 본전을 찾고자 하는 의지 이기는 하나 불혹을 넘긴 내 몸은 어제 헬스장에서 1시간여 동안 운동을 했음에도 어제의 칼로리를 다 소비하지 못하고 신진대사 속도를 점점 늦추고 있는 듯하다.


일요일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성가대 연습까지 하니 이미 오후 3시가 되었다. 사실, 아이들이 성가대며 찬양대 봉사를 하겠다고 나서서 두 아이의 귀가를 계속 타인의 손에만 맡길 수 없어서 귀가시간을 얼추 맞추고자 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같은 성가대의 우리 집 근처에 사시는 권사님께서 태워다 달라고 부탁하셔서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 한 10여분 정도 기다리니 아이들이 손에 간식을 들고 차에 탔다.

차에 타자마자 아이들은 낯선 분과 서먹하게 인사를 하고는 제 손에 들린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간식은 소시지 핫도그와 주스였다. 잘 튀겨져 설탕이 먹음직스럽게 뿌려진 바로 그 핫도그. 차 안은 금세 기름냄새로 가득했고, 내 혈압은 올라가기 시작했다.


권사님을 차에서 내려주고는 솟구치는 화를 꾸욱 누르면서 나지막하고 살벌하게 아이들에게 날카로운 말로 쏘아붙였다.


"그걸 꼭 차에 타자마자 먹었어야 했어? 예의가 그렇게도 없었냐? "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했다.


"모르는 거야?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거야?"


아이들을 다그쳤다. 일면식도 없는 노인이지만 그래도 교회 권사님이시고 아이들의 사정이야 어떻든 기다려 주셨고 심지어 차에서 내리시면서 가방에 있던 과자도 주셨는데 그 간식을 이 좁은 공간에서 나 포함하여 두 어른이 앞에 계시는데 급하게 저들끼리 사정없이 바로 먹어 치웠어야 했냐는 거다. 교회에서 점심식사도 해서 배가 고플 리도 없었을 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간식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걸 저들끼리만 먹는다고 해서 배 아플 리도 없지만 구태여 차에 타자마자 기름 냄새를 풍기면서 먹었어야 했냐는 것이다.


큰 녀석은 골이 단단히 났다. 주의 날인 주일 저녁은 성스럽고 자비롭지 못했다. 쉬이 화를 내지 말라 했거늘 나란 녀석은 쓰잘데 없이 높은 윤리의식이 문제인지 아이들의 예의 없는 꼴은 두고 보질 못한다. 그래서 큰 녀석은 어릴 때부터 많이 혼이 났다. 이 어미의 잔소리와 타박을 견뎌야 했을 갓 태어난 지 몇 년 밖에 안 된 유아부터 어린이를 거쳐 초등학생 그리고 중학생이 될 지금까지 참 많이도 혼이 났다.


"내가 뭘 그렇게 잘 못했는데?"

"치! 엄마는 맨날 나만 뭐 라그래. 또 나지? 또 내가 잘못했지?"


아이에 대한 나의 신뢰도는 이 모양이 되었다. 엄한 어미는 시쳇말로 꼰대로 추락했고, 아이와의 관계는 걸핏하면 싸움질이 되었다. 나야말로 잘 가르치고 싶었을 뿐인데 항상 넘어짐이 습관이 되어버린 엄마라 일어나도 내 마음만 아프고 속만 썩는다.


그래도 어찌하랴 사랑으로 든 매였고 사랑으로 한 쓴소리였음에 난 거짓이 없다. 냉랭했던 월요일 아침과 걸어 잠근 방문을 연 건 그저 그런 문자 한 통이었다.


'저녁에 뭐 먹고 싶어?'

'김치 볶음 바아 아아아 압'


김치볶음바압 덕에 붓기 덜 빠진 눈으로 회사 대청소를 했다. 회사 뒷마당에 켜켜이 쌓인 묵은 낙엽을 쓸고 포대에 담고 버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버리고 두어 시간의 육체노동 끝에 그나마 핼쑥해진 얼굴을 마주하니 제법 땀이 나는 것이 딱 적당한 가벼움으로 기분이 좋았다.


회사 뒷 산에서 넘어온 나무를 전기톱으로 자르느라 한참을 씨름하신 큰 사장님과 연신 큰 사장님의 심부름을 한 동갑내기 사장님은 땀과 톱밥을 뒤집어썼고 덕분에 점심 식사는 온 직원이 함께 가든형 식당의 고기 한 상으로 배를 두둑거리게 되었다.


"나는 다 먹었어. 나머지 박대리랑 문주임 많이 먹어."


큰 사장님, 2층 정대리님, 입사동기 박대리와 같은 상에 앉게 되었는데 정대리님은 워낙 입이 짧아 일치감치 수저를 놓았다. 아직도 불판에 지글지글 볶음밥이 눌어붙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밥그릇을 지그시 내려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


"못 됐어."


남은 오리 주물럭과 신김치며 각종 나물 반찬을 잘게 잘라 오리기름에 잘 볶아 놓은 볶음밥을 박박 긁어먹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뭘 잘 못했나' 싶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정대리님을 쳐다보았는데 고개도 들지 않고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남은 딱 한 숟가락 밥 한 덩이만 응시하고 있었다.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져서리 위도 아래도 모르고 허기를 채우기에 바빴나 싶기도 했고, 남은 한 숟가락은 양보를 했어야 했나 싶었고 여하튼 짧은 3초간의 시간에 눈치를 재빠르게 보느라 식은땀이 났다.


"이 밥 한 숟가락이 남으면 꼭 먹기 싫어. 우리 엄마가 그때마다 그랬어. 너 그거 다 안 먹으면 지옥 가서 남긴 밥 다 먹어야 한다. 진짜 싫어."


체할 뻔했다. 난 또 나보고 하는 소리인 줄 알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도 아직 해갈되지 않은 그 '못 됨'에 대하여 의심이 체 가시지 않아 '설마, 나한테 했던 말은 아니겠지? 그럼, 정말 정대리님 돌아가신 엄마한테 못 됐다고 그런 건가?' 곱씹어 생각했다. 난 엄마를 못 되다고 생각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엄마는 아빠한테 항상 불만이었다. 언니나 동생은 불만을 토로하는 엄마의 푸념을 늘 단칼에 단절하면서 전화를 끊는 편이었다. 나는 그러지 못하고 들어주었는데 어느 날은 나도 듣기가 버거웠던 것 같다. 그만 좀 하시라고 타이르듯 말을 하니 동조를 안 해주자 버럭 화를 내면서 아빠 편이니 엄마 편이니 하는 유치한 편 가르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만하고 싶었다. 내 나이도 이제 마흔인데 그런 엄마의 전화를 받고 있자니 짜증이 났다. 아빠한테 가던 화살은 이내 나한테 돌아왔고 '못됐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난 속이 상하고 힘들어도 엄마한테 가지 않는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나는 어떤 엄마일까? 못 된 엄마? 착한 엄마?'


나는 아이가 커서도 늘 문턱이 닳도록 달려오는 편안한 쉼터 같은 엄마이고 싶다. 따스한 엄마 밥이 맛있고,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고, 엄마 옆에서 엄마의 냄새를 맡고 잠이 드는 그런 엄마이고 싶다.


김치볶음밥도 오리주물럭도 아무 생각 없이 맛만 생각하고 먹었더라면 잘도 먹었을 맛 좋은 음식이건만 잡다한 생각과 겹쳐 볶아지고 주물러져서 결국 생각의 어느 한 켠을 막아 버렸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과 나의 돌아봄에 엊저녁 먹은 김치 볶음 바압과 오리 주물럭을 삼키느라 결국, 소화제를 먹었다.


난 진실로, 못된 엄마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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