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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느려도 괜찮아 달라도 괜찮아

by MAMA


금요일이다. 요즘 산불로 인한 우려와 걱정으로 사람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비가 언제 오려나 하지만 얄궂게도 어제 내린 쪼끔의 비는 가뭄에 콩 수준뿐이었다. 오늘따라 어제 고작 그뿐인 비 때문에 속도 모르는 하늘은 시리게 맑고 푸르고 바람은 더욱 차다.


"문주임님! 우리 오늘 칼국수 먹으러 갈 건데 뭐 드실래요? 닭칼국수 아니면 바지락?'


사장님들께서 출근을 안 하셔서 오늘 직원들끼리 한식뷔페가 아닌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잠시 잠깐의 외출이라도 회사밥이 아니라는데 의가 있어 맑은 꽃샘추위의 찬 바람도 즐겁기만 했다. 칼국수 집은 북적거렸다. 예약을 했으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한참 기다릴뻔했다.


칼국수는 칼국수 했다. 맛깔스러운 겉절이와 청록의 열무김치. 쌓여가는 바지락 껍데기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 사발을 면치기로 들이키기 바쁜 이들의 얼굴에는 금요일의 설렘으로 저마다 화색이 돌았다. 덩달아 신이 난 주방은 쉴 사이 없이 밀려드는 손님들로 바쁘고, 가게는 만원이었다. 먹는 양이 워낙 적은 아래층 주임님들은 여기저기 나눠주기 바쁘다. 기사님은 닭 칼국수가 더 낫다 하시고, 차장님은 보리밥에 보리가 적다 하신다. 왁자지껄 떠들며 먹는 점심 한 끼에 소소한 웃음이 피어난다. 회사에서 이따금씩 사장님께서 사주시는 점심으로 인해 이 동네 이사 온 지 1년밖에 안되어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는데 맛집 지도를 완성해 가는 듯하다. 직원들과 둘러앉아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는 게 별 게 아닌데 싶을 때가 있다. 이러한 작음들을 너무 하찮게 여기고 살았던 게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뭐 드실래요?"


칼국수를 다 먹고 회사 복귀하는 길, 김대리의 전화다. 메*커피에 들르신다고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이럴 때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는 달지 않은 무언가로 적당한 타협을 보아야 한다. 지난번에는 마시지도 않는 아메리카노를 시켜 집에 가져가 남편에게 주었지만 오늘은 이왕 탄수화물 폭탄인 칼국수를 먹은 김에 날을 잡자 싶어 입사동기 박대리와 동일한 메뉴 자몽에이드를 시켰다.


고양이 엄마 박 차장님과 주임님들이 주문한 음료를 받으러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박 차장님과 2층 주임님들과 다른 차를 타서 우리 차의 기사님과 박대리 음료를 가지고 와야 했기에 그렇게 했다. 날이 차가웠지만 적당히 따스한 햇볕에 기분이 좋았다.


"차장님! 계좌번호 주세요."


박 차장님이 칼국수 값을 계산을 했다. 이따가 주겠노라 한 것이었으니 바로 줄 샘이었다. 줄 게 있으면 뭉그적거리지 말아야 한다. 가까운 사이이건 먼 사이이건 그건 서로에 대한 예의다.


"응? 무슨 계좌번호? "

"칼국수 값 줘야지."

"요즘 누가 계좌번호를 줘? 카카오로 보내!"

"어? 난 그런 거 안 해봤는데..."

"카카오뱅크 안 써?"

"난 안 써봤는데.."


나를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 나는 이 모양이다.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로 가는 과정을 실시간 생방송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대에, 뇌에 칩을 심어 뉴런을 연결하여 사지마비 환자를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시대에, 트렁크에 드론을 싣고 다니다가 교통체증이 심하면 드론을 타고 하늘 길로 날아가는 시대가 곧 도래하는 지금, 나는 이 모양이다.


내 휴대폰은 삼성 Galaxy A-7이다. S-25 가 최근 기종이라는데 난 휴대폰에는 관심도 없다. 심지어 잘 받지 않아 부모님이며 서방님이며 나한테 전화를 하면 속이 탄다. 카카오톡은 톡을 주고받는 곳이 아닌가. 돈을 주고받다니 말도 안 된다 믿지 못하여 이용을 하지 않았다. 사실, 앱 사용에 능숙하지 못하다. 수억 명이 보는 유 선생님도 정말 모르는 정보를 알고자 하는 경우 아니면 보지 않는다. 책을 찾아보는 걸 좋아하고 내가 자라왔던 배워왔던 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배우지 않아도 세 살짜리 아이들도 잘만 다루는 휴대폰에게 내 시간을 쏟는다는 것이 아깝기만 하다. 몇 인치 안 되는 그 액정 안에 세상과 시간이 갇혀 있다는 사실이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짓이라 믿었다. 그 생각에 후회는 없다. 과거도, 지금도, 앞으로도 쭈욱 그럴 것 같다. 그 기계에 도저히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한 자 한 자 공을 들여 종이에 적은 글에 더 끌리고, 시장에도 직접 가서 단단한지 무른 지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야 한다.


'송금 완료'


카카오톡에 들어가 송금을 완료했다. 얼리어답터들이나 유행을 따라가는 이들에게 나 같은 이들은 게으르거나 기술을 이용할 줄 모르는 의아한 족속이기도 하겠지만 내 미련함은 고집스러운 신념이다. 휩쓸리지 않고 내 속도대로 모든 것이 빠른 게 대접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나는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법을 익히고 있는 중이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로 기술로 황폐해져 가는 정서들이 넘치는 시대를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 조금 달라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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