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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n't She Lovely?

-Stevie Wonder-

by MAMA

딸이 물었다.

"엄마! 추성훈 아저씨 알아?"

"격투기선수. 일본에서 유명한 모델 야노시호랑 결혼한 사람 말하는 거야?"

"응!"

"그 아저씨는 왜?"

"그 아저씨는 딸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대?"

"응?"

"생각하면 너무 좋아서. 엄마도 그래?"

"..........."

"치! 됐어."


나의 3초간의 정적은 이내 대화의 단절을 만들었다.

샤워 후 나의 라지 킹 사이즈의 드넓은 침대에서 새하얀 이불에 비비적거리며 뒹굴거리던 딸은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시뻘건 마라탕을 좋아한다. 마라탕 식당에서 저울에 재어 파는 양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아 집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사다 마라 소스를 넣어 끓여주면 두 딸은 소주한 잔이라도 걸친 것처럼 걸쭉한 매운 국물을 먹으며 땀을 뻘뻘 흘린다. 숙주와 청경채, 고기를 건져 엄지를 척 들면서 나에게 윙크를 한다. 그런데 나는


눈물이 난다. 너무 매워서


지난겨울, 무리를 해서 큰 아이를 강남에 있는 영어학원을 보냈다. 제법 잘 따라가 주었고 두어 달 만에 승급도 하였다. 방학이 끝난 후에도 아이는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이지만 수업시간이 꽤 길다. 오후 5시에 시작하면 밤 10시가 넘어서 끝난다. 막둥이는 벌써 씻고 제 방에 들어가서 잔다. 나도 덩달아 졸음이 쏟아진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출근준비, 아침준비, 집안일을 하고 퇴근 후에도 쉴 새 없이 움직이다 보면 10시쯤이면 나도 눕고 싶다.


눈물이 난다. 너무 졸려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고 아라뱃길을 간 적이 있다. 한적한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전, 북적대는 그곳에서 아라뱃길까지 6km 정도였다. 집에 자전거가 두 대 뿐이었다. 주변에 자전거 대여소도 없었고, 지금처럼 길에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나 전동킥보드가 있던 때도 아니었다. 나는 그나마 집에 두 발 달린 큰 아이의 성인용 킥보드를 밀면서 따라갔다. 그 킥보드에는 아이들이 더워서 벗어던진 묵직한 재킷들까지 걸려 있었다. 아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신나게 좋은 날씨를 만끽하였다. 전 수동 킥보드로 왕복 12km를 오갔더니 발바닥이 아팠다.


눈물이 났다. 너무 힘들어서


번번이 부딪친다. 아이들과 매일 살을 부대끼면서 아이들의 일상을 공감하고 등하굣길을 함께 하며 아이들을 늘 기다리는 엄마였을 땐, 아이들이 내게 이렇게까지 짜증을 부린 적도 무뚝뚝했던 적도 없다. 아이들이 어리광부리던 솜털내기가 아니라 사춘기를 지나고 있음에도 시간 탓이 아니라 내 탓을 하게 된다. 침대 밑과 책상 의자에 마구 던져진 잠옷을 세탁기에 넣었다. 막둥이 녀석이 그걸 왜 빠냐면서 짜증을 냈다. 식사 중에 아이들이 키가 많이 큰 것을 남편에게 자랑하듯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의 급 성장기의 살 터짐을 말했더니 버럭 화를 내고 자기 마음을 모른다면서 큰 녀석이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눈물이 났다. 내 마음을 너무 몰라주어서


엄마네 집에 갔다. 소파 위에 엄마가 시집올 때 해 오셨다던, 청색 홍색의 두꺼운 보료가 있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웬 무속인의 집인 줄 알았다. 우리는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말이다. 그 이유는 인조가죽으로 된 싸구려 소파가 낡아 가라앉고 찢어졌기 때문이었다. 엄마네 갈 때마다 마음에 걸렸던 소파의 너덜거림이 결국 저렇게 결론이 나고 말았다. 부모님은 소파에 몇 백은 고사하고 몇십도 쓸 돈이 없다. 나라도 그까짓 것 하고 사드리고 싶은데 차가 겨우내 두 번 고장 나는 바람에 가계사정에 빨간 불이 들어와 빠듯한 형편이 더 빠듯해져 여유가 없다.


눈물이 났다. 내가 못난 딸이라서


남편이 힘들어한다. 상사의 괴롭힘에 이직을 한 것이지만 이직한 곳이 집하고 정말 멀어졌다. 전에 살던 곳이었다면 출퇴근이 20분밖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70km로 늘어난 출퇴근 거리는 살인적이다. 게다가 첫 프로젝트가 대기업에 수주를 넣은 일이라 까다롭기가 말도 못 하고 사장님의 다혈질적인 성격에 피로감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매일 술이다. 어제 막 집에 들어오자마자 큰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학원등록을 놓칠 뻔했다고.


눈물이 났다. 남편이 불쌍해서



다시,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다시, 어제가 가고 오늘이 왔다.

다시, 달은 떠나고 해가 드밀었다.


"아침이야. 7시 반이라고. 학교 가야지."


소식이 없다. 오늘따라 감감무소식이다. 두 딸들의 방은 아직 고요하다.

커튼을 치고 햇볕이 쏟아졌다. 눈부신 볕에 아직 뽀송뽀송한 솜털이 솜솜하게 움직인다. 덩치가 싱글사이즈 침대를 꽉 채우고도 남지만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기 같다. 나는 아직도 아이들을 깨울 때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뽀뽀를 해준다. 꿈지럭거리는 입도, 침이 흘려져 하얗게 말라버린 볼도 귀엽기만 하다. 인상을 쓰고 짜증을 내도 예쁘기만 하다.


눈물이 난다. 사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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