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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Jul 05. 2024

#15, 글을 마무리하면서(終思)

에필로그

이야기보따리를 풀다의 첫 번째 이야기를 끝마쳤다.

글의 제목은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면서 두달이 지났다.

혼자서 자충우돌하며 여기까지 와서 브렌치북을 만들어 둔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도움도 청해보고 하였으나 답은 애매하였다.

또 다시 옛날의 고집이 나올까 무섭다.

어찌하였던 책의 모습을 갖추어야했기에 브런치북을 일단 만들자고 작정하였다.

제목을 '나의 첫 산은 험준하였다.' 로 정했다.이제 보따리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이이야기 보따리는 참 많이 들어 있디. 어느것 부터 시작할까 생각해보다 

결혼후 첫번째로 겪은 가장 고통스러웠던 이야기를 먼저 내어 놓기로 하였다.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젊은 나이에 겪으며 힘든 산을 짐을 등에 지고 넘어야했다.

첫산은 젊은 나에게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출발하여 푸른 들판을 가벽게 걸어 가파르고

험준한 산이 나를 맞이하였고 나는 그 산을 넘었다.


그럼 다음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일까, 새콤달콤한 이야기 일까,

오래 묵혀 두어 곰삭은 시큼한 이야기 일까,  어느 것이든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이 이야기 보따리에는 국내여행에서 해외여행으로 아이들과 함께 우리땅을 운전하며 

여행하였던 이야기, 아이들을 유학보내기 위하여 해외 면접을 보러간 이야기. 

나의 어머니의 헌신 이야기, 할머니의 남다른 삶의 이야기, 빼 놓을 수없는 시댁이야기

그리고 글을 쓰려고 작정하였을 때 머리에서 서로 나오려고 하는 글들,  이야기들

그러나 먼저 백혈병투, 간병기를 먼저 시작하였다. 순서가 그렇다


나는절벽끝으로 내 몰린 사람이었다. 

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우리의 긴 투,간병기는 가정사이다. 동시에 어느시대나 누구의 집에나 발생할 수있는 이야기다.

가족이 병으로 고통받고 그에 파생되어 경제적 고통, 가족간의 갈등 등을 겪으면서 삶을 사는 

이야기인 것이다. 기록이다. 누군가의 위로이자 용기가 될수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다.극복하면 추억이되고, 그렇지 못하면 슬픔으로 고통만 남는다


지난 이야기이기에 극복되었기에 담담히 쓸 수 있었다.

처음 글이라는 것을 썼다. 길고도 짧은 십수년에 걸친 이야기를 기억으로 차곡차곡 가슴속에 

들어있던 슬픔을 당시에는 울어보지도 못하였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러나 동정은 바라지 않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이러한 고통을 받고 더한 힘든 삶을 사는 분들이 분명있을 것이다.

신은 견딜수 있을 마큼의 고통을 준다는 말 믿지않는다.

못견디면 자식을 두고 자살해야하는가

시작하고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다. 할 수있을까?

하지만 모든것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듯이 여기까지 왔고  이번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여기까지 오니 다시 욕심이 났다.

자격이 되지않을 지 모르는데 책으로 낼수있을까?

읽어주고 사주실분이 있을까?

노인의 글을 누가 읽어줄까?

어떻게 하면 될까? 

요즈음의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윗트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글이 길면 읽지않는다 그대로 손가락으로 스크롤하여 넘겨진다.

나는 글을 느리지만 끝까지 읽는 사람이다.  

그중에도 좋은 글은 꼼꼼하게 읽는다. 그냥 취향이 그렇다.


또 다시 많은 의구심과 욕심이 생겼다. 혼자서는 못한다 어떻게 할까,

등의 많은 생각이 나서 마무리글을 쓰 두고도 계속 수정하고 미루고하였다.

하지만  또 읽는 분들에게는 지루한 이야기 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신파조의 이야기는 피했다. 눈물과 동정을 구하는 듯한 글도 자제하려 했다 

그럼에도 인간인지라  글을 쓰며 감정이 솟구칠 때가 있었다.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다시 선명히 떠 올라, 마음 다스리길 여러 번 하였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고 두려움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 여린 마음이 사안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피했던 것 같았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분은 오래전에, 십 수년 전에 돌아가셨다.

참으로 좋은 남편이었다. 나의 걸음을 내가 서있는 곳에서 전국으로 세계로 확장시켜주었다.

아마도 일찍 떠날걸 은연중에 알아서 그랬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단지 그는 ... 용기를 내어야 할 때 물러났다.

나는 푸념 삼아 욕할 수 있지만 다른 분은 모르시니 저의 푸념 섞인 원망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큰동서는 뭐라 할 말없다. 미안한 마음도 없고 여전히 운전하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동원하여 퍼붓고 싶다. 그래도 분은 풀리지 않을 듯하다.  

자기 가족도 모르고 다른 사람 몰래 만만한 시동생과 그 아내(나)에게 못할 말과 행동을 했다.

바늘로 사람을 찌르는 궁중의 사악한 후궁이 하는 그런 방법, 바늘로 폐부를 찌르는 말,

그리고 이 분도 심장병으로 앓다 죽었다. 좋아하는 열심히 절한 극락이라는 곳에 같을 까?

어디를 가든 다음 생에서는 옷깃도 스치는 인연이, 바람조각 하나라도 부딪히는 인연이

되지 않기를 염원한다. 만난다면 복수할 수있기를...  


그래도 매냥 미워할 수 없기에 ( 나의 정신건강상에도 좋지 않다.) 서서히 횟수가 줄어들고 

이 글을 끝으로 아마도 또 훨씬 옅어져 갈 것이다. 내가 눈감을때는 기억도 나지않기를 바란다.


큰 시숙,  점잖음 뒤에 가려진 행동과 말, 양상군자.

시어머니는 분노게이지를 올리는 참 이상한  분이었다. 

우리 엄마와 나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끼는 분,  

시아버님 시골 분이시지만 나름 인생철학이 있고 강인한 분 멀리 만주까지 가서 살아 돌아오셔서 

가정을 일으키신분 존경한다. 나도 몰랐다. 아마도 자식들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유류상속분을 정리하다 거슬러 올라 가 조선말기에 만든 구호적을 보고 알았다.

한글이라고는 없는 한자로된 옛호적을 열람하며 알았다. 


우리가 검사결과를 말씀드리자 진정으로 기뻐하셨던 분, 진정 어른이셨다.

그리고 한 가지 해주셨다 어디서 하얀 굼벵이를 몇 마리 구해서 마요네즈병에 넣어 주셨다. 

달여 먹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다. 

 

밑 빠진  독에는 물을 붓지 않는다 흔적이 없이 사라진다고 하셨다.

맡 빠진 독에 물을 담으면 흔적 없이 다 빠져나간다고 생각하셨다.  

그때 너희는 밑 빠진 독이었다, 고하셨다 


그리고 논 5마지기와 큰 현금을 주셨다 당시로는 큰 돈이었다. 

물론 우리 엄마의 땅 판돈보다도 적고, 계를 하며 여직원들이 빌려주고 도와준 돈보다 

적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이었다. 

시 아버님은 그런 마음을 우리에게 좀 강하게 표현하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나와 남편에게 미안해하셨다. 

미안하다고, 근데 너무 늦었었다.


아버님은 우리 집에 자주 오셨다. 안사돈이 계셔도 병원 가실 때는 우리 집에 머무셨다

음식이 맛있으셨던 것이다. 

또한 우리 어머니의 과감하고 직선적인 대화가 아버님은 좋은 신 듯하였다.


앉으면 사돈에 팔촌의 그 아웃에 이웃까지 아래 동네 윗동네 건너 동네의 온갖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달리 우리 집에는 세상이야기 사회이야기를 하였기에 아버님이 좋아하셨다.

아버님도 세상이야기를 할 분이 있어 좋았던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그렇지 못하다

기쁘신 것 같았다. 대화가 있으니 그러셨을 것이다.

남편과 나와 어머니는 신문을 보고 대화를 잘하였다. 세상이야기를 평소에 하였다.

그렇기에 아버님이 오시면 함께 대화를 하였다. 

남편도 우리 어머니와의 대화를 즐겨 많이 하였다.

어머니는 대화에 흡인력이 있는 분인 것 같았다.


우리 집은 다른 형제들 집과 달리 따뜻하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오해를 풀고 마음을 전달하고 원망은 아래쪽으로 누름독 속에 꾹 눌러 두었었다.


아무리 글이라지만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슬픔을 구구절절 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프고 고통스러웠다고 읽는 분들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지난 서류나 아이의 투병기 때 사진, 아이들 데리고 여행한 사진 등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읽는 분들이 조금의 공감만 해주시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라 중학교때 였던것 같다 내가 시집가며 일제 야시카 카메라를 사 가지고 갔다.

남편은 그 카메라로 사진을 엄청 찍었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둘째 아플 때의 사진을 보며 서로 자기가 아니라고 우겼다.

당사자인 둘째도 첫째도 서로 자기 아니라고 싸웠다.

그다음에  그사진은 앨범 뒤쪽에 넣어두었다.

그런 일화가 있기에 아이의 사진은 노출하지 않았다.


나는 늘 생각하는 것이 있다.

우리 인생은, 

신이 만들었든 아니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운명이 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름다운 일본정원 같은 운명을 사는 사람, 

가는 길이 언덕도 있고 들판도 있고 적당히 높은 산도 있는 운명을 사는 사람

평생을 가도 가도 진흙바닥인 삶을 사는 운명을 가진 사람, 

끝없이 가는 길이 자갈길이라 편히 걸을 수 없는 운명의 길을 가는 사람

가는 길이 산 넘어 산이고 이산이 끝나면 평지겠지 하고 열심히 걸었건만 다시 또 높은 산이 있는 삶 

즉 산이 아니라 산맥을 걷는 운명의 길을 가는 사람


여러 종류의 삶을 사는 것 같으나 종래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신이 만들어 놓은 판에 올라 앉아 움직이는 바둑돌이라고 생각한다. 

잘 짜 놓은 판 위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더하여 유전자까지 합세하여 힘을 발휘한다.

이것은 살아오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든 나의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고 반론의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주변의 다른 삶을 사시는 분을 돌아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감사히 생각하며 사시기 바란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흔히 죽을 때 까진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사람은 한 치 앞을 모른다.


나는 나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면서 내가 태어나 살면서 

첫 번째 산을 넘은 것을 글로 옮겼다.

그 첫 번째가 험준했다.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며 첫 산을 넘은 이야기를 마친다.

읽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나 생면부지의 사람이

인생담(人生談)을 하나 풀어놓았는데 오셔서 읽어 주셨으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러분들의 글도 열심히 읽을 것이다. 지식을 탐구하는 데는 끝이 없고 즐겁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에게는 흔적이 있다.

족적이 있고 지문이 있다. 글에도 특유의 지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많이 들어 삶을 쓰 보고자 생각한  작가 지망생이 정말 글을 쓰 보았다.


나는 기슭에 다다랐다.

이제 편히 앉아 쉰다


조용히 호숫가에 앉아 

물결이 이는 것을 보며

바람을 느낀다.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느껴본다.

모든 날들이 견딜만하였고, 행복했다

햇살은 따뜻하다



죽림헌(竹林軒)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소회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죽림에 헌을 권해주신 단풍국블리아님께 감사합니다.


나의 글을 읽어주신 부지런히 라이킷해주신 작가님들 저에게는 너무 소중하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셨습니다.


처음 라이킷시작하여 지금까지 힘을 보태시고 제가 팬이고 싶다고 하였을 때, 

나도 팬이되겠다고 해주신 금봉작가님 감사합니다.

네이버블로그에서 브런치로고를 따라 오셔서 읽어주신 이웃님들 감사합니다.

제가 없음에도 블로그를 꾸준히 읽어주시고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은 진리입니다. 

#하나의이야기 #새로운글 #기슭에닿다 #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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