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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Aug 23. 2024

#11, 은밀한 치료

아이를 두고 어머니와 나는 각자 다른 처방을 하였다

첫 번째 외래 검진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검진상태가 좋다고 하셨다.

나빠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너무 감사하여 숨죽이고 있던 숨이 터져 나왔다.

하``````아`````

나는 지금도 긴장하거나 무슨 일에 집중하면 숨을 잘 못 쉰다.

또 입원하라고 하실까 봐 가슴 조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 채, 모르는 것이 정상이지만

선생님께 해실거리며 웃고 내 무릎에서 내려 뒤뚱거리며 진료실을 기웃거린다.

의사 선생님도 마음이 편안해지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의 얼굴을 보면 못내 안타까운 표정이다.

그래도 아이를 얼래어 주신다.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얼굴과 몸이 계속 이러면 어쩌나요, 하였더니

계속 검사결과가 좋으면 약을 줄일 것입니다. 그러면 상태가 조금씩 바뀔 것입니다, 하신다.

그런 뒤에 계속 괜찮으면 약을 처방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단백질 등 영양가 있는 이유식을 먹이도록 하세요 하신다.

아마도 면역체계도 무너져있을 것입니다.

다시, 아이를 재건한다고 생각하시고 잘 챙겨 먹이고 약도 먹이고 동시에 잘하셔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정확한 병명도 모르고 그저 실험적이었으나 이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최종 골수이식 방법도 남아있고요 


그렇게 감사한 마음을 선생님께 전하고 아이에게 인사해야지 시키며 나왔다.

의사 선생님과 진료실 간호사의 배웅(?)을 받으며 나와서 수납하고

병실로 찾아갔다, 도움을 많이 주신 분들이라 찾아뵙고 인사하고 싶었다.


병실에는 다른 보호자가 있었다. 우리 앞침대의 아기환자는 1주일 사이 퇴원하였다.

병리검사실 간호사 라운지의 간호사들 모두 찾아뵙고 인사 나누고 병원을 나와 

병원 앞 잔디에 앉아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울컥하며 눈물이 나오려 하였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잔디를 걸어 다닌다.


그곳에서 우리가 버려진 사실도 모르고,

바로 여기서 시아버님께서 집 팔지 못하게 하시고 자식은 또 낳으면 자식이니 포기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누가 알까, 그때 나의 참담한 심정을 그리고 용기인지 오기인지를 피운 사실을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세상 참, 인간은 한 치 앞을 알지 못한다. 잔인하기까지 하다.


잔디는 초록초록하고 하늘은 높고 푸르며 아이와 나는 한없이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모두가 포기해도 엄마는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문득 예수쟁이 우리 어머니가 기도하며 부르는 노래가 내 입에서 나왔다.


주의 강 같은 사랑, 주의 강 같은 사랑, 주의 강 같은 사랑 넘치네, 할렐루야

내가 이 가사를 어떻게 알지, 엄마가 기도하며 부르고 온 집안을 다니시며 일하시며 불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잠재의식에 자리하였다.

생각해 보니 저 찬송가 가사에 딱 맞았던 것 같다.

우리 집, 친정집이 예수님을 믿는 신실한 분들이 계신다. 할머니와 어머니다.

나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다.

나는 남편 따라 가톨릭이다.  시댁 오리지널 불교다. 세 종교다. 종교 때문에 다툰 적 없다.

여하튼  이 순간 주의 강 같은 사랑과 은혜가 이 병원과 넓은 잔디밭에 가득하다.


우리 어머니는 노래를 잘하신다.

옛날 영화배우인 문정숙 씨라는 사람이 불렀던 번안가요 '아마다 미오'를 정말 잘 부르시고

자주 부르셨다. 듣기 참 좋았다.

그리고 '봄날은 간다'를 참 맛깔스럽게 부르셨다.

왠지 짠~한 노래다. 할머니, 어머니 모두가문만 보고 조혼하여 오신 분이다.

두 분 다 기독교인이다. 일본강점기 때를 그렇게 피하신 분들이다. 할머니는 조선시대 말을

어머니는 대한제국말과 대한민국을 사신 분들이 시다.

자식사랑 엄청나신 분들이다. 할머니 우리 집에 열심히 오시더니 아이가 아픈 동안 오시지 않았다

그때 이미 할머니 연세가 9 순을 넘기셨다.

옛 어른들 말씀이 너무 오래 살면 자신의 명을 넘어 자식의 명을 받아 사는 것이라고 사랑하는 

손녀딸도 보러 오시지 않으셨다. 


행여 명을 바꿀까 무섭다고 하셨단다.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며 아이를 잘 돌보라고 하셨단다

귀한 외증손주를 소중히 , 소중히 생각하셨다.

보지 않아도 본 것같이 알 수 있다. 할머니의 마음은, 염화시중(拈華示衆)이니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니 

이런 말보다  무서운 사랑의 마음과 눈이셨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남편은 아직 오지 않았고 엄마에게 말했다. 나빠지지 않았다고  몇 번 더 검사해 보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 아이의 약을 줄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리고 이유식으로 영양가 있는 것을 먹이라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어머니는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그날 밤 남편에게 말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이제는 무엇인가를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결정을 하였다

아이는 모자를 쓰고 다닌다.

이마의 흉터와 주사자국 등 조금이라도 얼굴의 모습을 가리기 위해서 모자를 씌웠다.

보는 이마다 한 말씩 한다. '얘 얼굴이 왜 이래요'하고,

변명 아닌 변명하기도 싫고 다 설명하기도 싫다. 이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 모르게 비밀치료를 시작하였다.

각자 은밀히 서로도  모르게 움직였다.


나는 검진 다녀온 날,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생각하였다. 성장촉진제를 먹이되 양을 줄이자고

결론을 내렸다. 상태를 보며 큰 변화가 없다면 계속 약을 줄여서 먹이자고 결정하였다.

다음날부터 말없이 조용히 진행했다.

약은 내가 먹인다고 저녁에 와서 먹일 것이니 아무도 낮에 약을 먹이지 말라고 했다 절대로,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왔다. 손을 깨끗이 씻고 아이의 몸을 살폈다

멍이 든 곳이 있는지 새로이 생긴 멍자국이 있는지를 입안부터 몸전체를 구석구석 살피고 

점검했다. 멍이 생긴다는 것은 혈액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고 혈소판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냥 그때 나의 상식으로 그리고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하는 것을 항상 지켜보고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한 결과로 나도 모르게 선무당이 되어 같다. 반의사가 되어갔다.

그것을 모두 기록해 두었다. 

새롭게 멍든 자국이 없었다. 약을 먹였다. 아이 보는 데서가 아니 밖에서 1정이 200밀리그램

의사의 지시는 1/4 등분한 50밀리그램이다 한번 투약이 50밀리그램이다. 

나는 다시 쪼개었다 반으로 25밀리그램으로 먹였다. 한번 투약이 의사지시의 1/8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지켜보았다. 퇴근하면 일과다 입안 머리밑 얼굴 발바닥 손바닥 귀뒤 온몸 구석구석구석을 

살핀다. 혈소판이 파괴된 곳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다시 약을 쪼개고 쪼개어 먹인다.

크게 변화가 없다, 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아이를 두고 지금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르나 싶다. 정말 무섭다 살 떨리게 무섭다.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이사실은 안다면 돈 때문에 그런다고 했을 것이다.

당연히 아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하느님, 부처님 조상님 모두 아실 것이다. 


어느 날 퇴근하여 집에 가니 아이에게 피가 터진자국이 생겼다. 간이 위에서 아래로 툭 떨어지는 것 같다.

애먼 엄마에게 묻는다. 오늘 아이가 어디 부딪혔어요, 하고 물으니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가가 요즘 속도가 붙어서 뒤뚱거리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다시피 한다.' 하신다.

그리고는 아마 가구모서리나 그런 데서 받쳤을 것이다. 그렇게 쪼르르 쪼르르 다니니, 하신다

아~ 그랬다면 정말 다행이다. 하고 어디 어디 달라진 곳을 적어 두었다.

별 이상이 생기지 않으면 이번검사 후에... 하며 생각했다. 좀 더 줄여보자


어머니는 정말 또 이상한 것을 아이에게 먹이신다.

아침에 숟가락으로 아이에게 무슨 기름을 한 숟갈 먹이신다.

아이는 싫다고 고개를 저으며 뱉으려고 한다. 


어머니가 달래신다. 이거 안 먹으면 병원에 또 가야 한다. 머리에 주사  콕해야 한다.

협박하신다. 아이는 아무 말 않고 받아먹는다. 아이도 병원을 싫어한다

엄마 뭐예요 하고 물으니 어머니가 씩 웃으시며 생들기름이다. 깨끗하게 하여 내가 직접 가서 짰다

행여 다른 것과 섞일까 봐, 하신다.


그걸 외 먹이실까 그땐 몰랐다. 요즈음은 우리가 다 안다. 오메가 6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때는 오메가가 뭔지 모를 때다. 아니 널리 알려져 보급된 시기가 아니다. 오메가 3.


그리고 또 어머니교회에 부탁하여 큰 대병에 무엇인가를 가져오셨다. 병을 보니 위에

거품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니 엄마가 화를 내며 나무라신다.

그건 무엇이냐고 물으니 좋은 거다, 고 하신다.


또 물었다. 산지렁이 고운 물이라고 하셨다.

아~ 정말 뒤로 넘어가고 싶다. 구역질이 나오려고 한다.

어머니 말씀이 깊은 산에 나무밑에 있는 지렁이를 캐어서 소금을 뿌려 깨끗이 몇 번을 씻어

헹군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고운다고 하였다.


일해줄 인부를 구하고 해야 하니 사람 구하는 것도 어려웠고 돈이 든다고 하였다.

그것을 또 아이에게 먹였다.

아이는 어머니와 나의 실험대상이 되었다.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결국은 우리 두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 둘만의 비밀이고 

아이는 매일 낮에는 할머니의 관찰대상, 밤에는 내가 하는 투약의 관찰대상이 되었다.


나는 살짝 약을 또 줄였다. 흔히 우리가 음식 할 때 한 꼬집하는 그런 한 꼬집이 아니라

손톱 끝에 묻힌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정도로 양을 줄였다.

병행하여 영양은 어머니가 다 챙겼다. 이름도 잘 모를 이상한 야채들을 어찌 알고 구하는지

채소들을 갈아 먹였다.


보름이 지나 병원에 예약하고 검진 갔다.

병리검사실에서 혈액을 뽑아 검사할 동안 나는 아이 따라 병원을 돌아다녔다.

이 녀석은 이젠 놀이터인 줄 아는가 보다.

나는 가슴이 졸여 숨이 막히고 몸도 손도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은데, 지은 죄가 있으니,

이윽고 아이와 진료실에 갔다. 선생님께서 검사지를 보시면서 갸웃거렸다.

나는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것 같다. 입안에 침도 말랐다.


의사 선생님께서 한 참을 검진표와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시더니 

미소를 지으시고 말씀하신다. 거의 정상치와 같습니다.

이제 약을 줄이시면 됩니다. 1/8을 먹이라고 하신다. 1/8을 먹이라고 이미...

나는 기뻐서 방방 뛰고 싶었다. 이미 1/8을 먹이고 있었다. 


통했다, 엄마와 나의 방법이 통했다.

선생님께서 한 달 후에 검진하러 오세요 하신다. 

내가 개기름, 여드름은~ 말도 끝까지 못 하였다.

아마 약을 끊을 때쯤이면 사라질 것입니다.

[어머니, 사실은 우리가 어머니 보다 더 기쁘고 뿌듯합니다.

이아이를 치료할 수 있게 되어서 우리로서는 너무 기쁩니다.]하신다.

수술은요 하고 물으니 

그래서 더욱 기쁩니다. 수술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하셨다.


우리 집은 그 이후로 음식을 담백하고 좋은 재료 영양가 따지고 재료고유의 맛 등을

챙기며 먹는다.  우리 엄마는 천재 셰프다.

우리 아이, 나의 둘째는 잘 견뎌내고 있었다. 아직 결과는 완전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게 우리는 또 다른 시간대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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