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암, 임종, 가족
며칠 전 수술 하나가 끝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보호자들에게 수술 결과와 앞으로의 치료 방향에 대해서 설명드리기 위해서 수술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수술받은 환자의 보호자 말고 낯익은 얼굴이 있었습니다.
저를 멀리서 보던 그분들은 제가 수술받은 보호자들에게 설명 중인 것을 아시고는 잠시 기다려주는 듯했습니다.
수술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그분들이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저도 수술방 밖에서 그분들의 얼굴을 보았을 때 놀라움과 함께 최근 가족들 곁을 떠나신 환자 한분이 떠올랐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희가 인사가 늦었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인사를 못 드렸어요.
저희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몇 년 전부터 입원해 계신데요.
좀 오래 쓰는 주사 바늘 잡으러 모시고 왔어요."
"그러셨구나.
저한테 입원해계셨던 게 6개월이나 되었었네요.
그동안 간병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힘드셨을 텐데."
"아니에요.
선생님이 더 고생하셨죠."
다음 수술이 예정되어 있던 터라 짧게 인사만 나누고 저는 다시 수술방으로 갔습니다.
최근 저한테 6개월 정도 입원해있으셨던 환자가 돌아가셨습니다. 80세가 넘으셨던 환자분이셨고 다리가 불편해서 걸어 다니시는 것이 힘드셨지만 병실에서 책이나 신문을 자주 보셨던 분이셨습니다.
이환자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작년 가을 등에 혹(표피낭)과 염증이 생기면서 치료받으러 오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면담을 하면서 우리 병원에서 식도암을 진단받은 후 서울의 큰 암센터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등의 염증 때문에 치료받으면서도 소화기 내과 선생님이 식도암을 잘 발견해주셔서 이렇게 살아있다고 말씀하시던 환자였습니다. 염증도 심했고, 식도암 치료 후 항암치료를 했던 상태라 상처가 좋아지는 기간이 좀 길긴 했지만 새살도 차고 상처도 깨끗해지면서 치료는 어느덧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랑은 짧은 인연인 줄 알았던 그 환자가 올해 봄에 복통이 생기면서 응급실을 통해 저희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배 수술을 크게 받거나 소장이나 대장을 크게 절제하고 연결하는 수술을 받은 경우에는 '장폐색'이 생길 수 있습니다. 회진 돌기 전 낯익은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환자를 보러 병실로 갔더니, 환자와 보호자 두 분이 저를 알아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환자가 내가 당직 때 딱 입원했지??
신기하네."
처음 장폐색으로 입원했을 때는 다행히 치료가 잘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잘 퇴원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다시 같은 증상이 반복되어 재입원했는데, 복부 CT, 복부 X-ray 검사 결과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폐색 기간이 길어지고, 복통도 점차 심해진다면 수술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서울의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상태라 배 안의 상태, 어떤 수술을 어떻게 했는지 다른 외과의사는 알기 힘들기 때문에 보통은 이런 경우 수술했던 의사에게 치료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자에게
"연세도 있고 식도암도 수술받으셨는데, 수술받으셨던 병원에서 진료 한번 보시는 것이 좋겠어요.
이렇게 잘 안 풀리고 복부 CT 소견도 좋지 않은데 수술하셨던 선생님 얘기 좀 들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수술했던 환자면 지금 수술하자고 할거 같아요.
장폐색도 수술해야 하는 적절한 시기가 있어서 너무 늦어버리면 하고 싶어도 수술을 할 수 없어요. 체력이 떨어지면 수술도 못 받습니다."
이런 설득으로 수술했던 병원 외래 진료 후 입원 치료를 하고 2주 정도 있다가 다시 저한테 오셨습니다.
"그쪽 병원에서도 수술했던 외과 교수님이 다른 교수님들과 여러 차례 상의했는데, 수술은 안 하는 걸로 결정하셨어요. 나이도 많고, 여러 가지 위험성 때문에 이쪽 병원에서 치료하라고 했어요."
CT 검사나 다른 여러 가지 정밀 검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배안의 상태는 100%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수술을 많이 하고,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100% 알기는 힘들죠.
하지만, 가까이서 환자를 지켜봐 왔던 담당의사는
내환자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어떤 검사,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지금이 수술을 해야 하는 순간인지 아닌지??
이런 것들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똑같은 수술을 하더라도 매번 다양한 순간들을 만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감각들은 수술할 때 더 깨어나게 됩니다.
모든 수술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보호자와 더욱 자주 상담을 했습니다. 수술을 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처럼 좀 더 기다려볼지??
제가 수술했던 환자였다면 배안의 상황이 어떨지? 좀 더 예상이 되기 때문에 수술에 좀 더 힘을 실었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수술을 결정해도 그 결과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단지 수술을 한다면 늦지 않게, 좀 더 좋은 체력에서 수술을 하고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줄 따름입니다.
보호자와 여러 번, 많은 시간 고민했고 결국 수술을 안 하고 통증 없이 편하게 지내실 수 있게 해 달라는 보호자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수술실 문 앞에서 짧게나마 인사를 나누었던 그 환자의 보호자가 며칠 전 케잌을 하나 사 가지고 다시 저의 외래로 찾아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바쁜 일 정리 좀 하느라 인사를 빨리 못 드렸어요.
아버지 마지막까지 편하게 지내시고
멀리사는 아들, 딸들 다 만나고 가실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수술했던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어요.
암환자고, 연세도 많으시니 위험하다고
웬만한 다른 병원에서는 받아주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멀리사는 가족들까지 함께 모여서 마지막까지 아버지 임종 잘 모실 수 있었어요.
아버지도 가시는 순간까지 행복해하시는 것 같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 환자인데요.
당연히 제가 봐드려야죠.
6개월간 간병하시는 분도 안 쓰고 힘드셨을 텐데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간병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셨어요.
6개월이라는 시간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마지막까지 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오히려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요. 안 계시잖아요.
힘들지 않았어요."
저는 아직도 그때 수술을 했었으면 어땠을까??
그 결과가 좋았을까?? 아닐까??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죠.
임종하시는 날 오후 병동에서 환자 숨 쉬는 것이 좀 가쁘고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왠지 느낌이 안 좋았습니다. 사실 그날부터 다른 일정이 있어서 병원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었거든요. 다시 병원으로 들어왔습니다. 환자 상태를 보고 옆에 있는 보호자에게 1인실로 환자 옮기고 다른 보호자들 모두 오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왠지 바로 병원으로 가봐야 할거 같은 그 느낌
떠나시기 전 제 얼굴 잠깐 보시려는 것이 아니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