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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닥터오 Oct 22. 2021

그래도 외과의사 하길 잘했어

2번의 수술, 우연, 감사편지

우연(偶然) :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누구나 한 번쯤은 뜻하지 않는 곳에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하는 만남 때문에 반가울 수 도 있고, 때론 당혹스러울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작은 동네의원 같은 경우는 멀지 않은 거리의 환자들이 주로 오지만 규모가 큰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의 경우 아주 다양한 지역에서 오시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최근 퇴근하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스마트폰을 보면서 걸어가는 수술했었던 환자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의 젊은 환자였는데, 이렇게 편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니..

뭔가 뿌듯하고 흐뭇한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2 달이라는 시간 동안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학교 수업부터 시험 보는 것까지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녔을 텐데 잘 참아왔던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대견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1번째 수술 후 퇴원하고 외래에서 치료하면서

"언제 치킨 먹을 수 있어요??

언제 삼겹살 먹을 수 있나요??"

젊은 나이에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았을 텐데 치료 때문에 이런 것들을 참아내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환자는 충수염(맹장염)때문에 2번이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충수염은 한 번의 수술로 치료가 됩니다. 하지만 이환자는 염증이 발생하고 10일 정도가 지난 후 뒤늦게 제 외래로 찾아왔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충수염은 복통이 시작하고 2~3일만 지나도 터지고, 더 시간이 지나면 농양(고름집)이 생깁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를 10일 동안이나 갖고 지냈으니 배안이 어떤 상황일지는 충분히 예상되었습니다.


응급수술이 끝나고 보호자에게 설명하기 위해 수술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실제 수술하면서 오른쪽 대장과 소장까지 절제해야 하는 큰 수술을 할 수도 있었지만 우선 충수 주변의 농양과 충수를 제거하고 항생제를 충분히 쓰면서 남은 염증을 치료해보는 방법도 있었기에 이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대장을 절제하고 복부에 큰 흉터가 남기에는 환자의 나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수술했던 부위는 잘 치료가 되어 퇴원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소장 사이의 염증이 먹는 항생제로 얼마나 좋아질지가 걱정이었습니다.


수술할 때는 항상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메스(Mes, surgeon`s knife)를 잡습니다. 병이 심하고 환자의 상태가 위중할수록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아.. 환자가 조금만 일찍 왔었으면..

조금만 빨리 수술을 받았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낄 수 있지만 수술하면서 이런 감정은 내려놔야 합니다. 내 눈앞에 보여지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치료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모든 수술은 수술 전 수술 동의서라는 것을 작성하게 됩니다. 환자가 받아야 하는 수술은 어떤 것이고, 어떤 과정으로 수술하고 부작용, 합병증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를 구하고 서명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 수술할 때는 어떨까요??

손을 닦고, 수술 가운을 입고 메스를 잡는 순간 외과의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합니다. 환자는 이미 담당 의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기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수술방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수술이 끝나고 수술실 밖으로 나온 저에게

"선생님. 수술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저희가 너무 늦게 왔나 봐요.

그냥 장염인지 알고 동네병원 다니면서 약만 먹었는데 이렇게 큰 병인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대장까지 수술 안 해서 다행이에요."


"아직은 안심할 수 없습니다.

항생제 쓰면서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염증이 너무 심해서 수술한 부위가 안 붙거나 소장 사이의 염증이 치료가 안되면 2차 수술이 필요할 수 도 있어요."


퇴원 후에도 미열과 복통이 있어서 입원 치료를 몇 번 했었고, 결국 1차 수술 후 1달이 되는 시점에서 복부 CT 검사를 해보니. 소장 사이의 염증과 농양은 항생제 치료에 효과가 없는 듯했습니다.


보호자인 어머니에게

"어머니

열이 있다. 없다 하고 가끔씩 복통이 생기는 것은 여전히 소장 사이에 염증과 농양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거예요.

항생제를 충분히 써봤는데도 소장 사이의 염증이 좋아지지 않는 거 같아요.

수술하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2차 수술을 해야 하는데 염증과 유착이 심해서 농양이 해결 안 되면 소장 절제술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2차 수술하면서 보니 배안이 염증과 농양이 심해서 결국 문제 있는 소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하였습니다. 1차 수술을 했던 부위는 괜찮았지만, 소장 사이의 염증은 항생제로 해결이 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배안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두 번째 수술 후 1달이 되는 시점에 정밀검사를 시행했습니다.

다행히 수술 후 경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여전히 먹고 싶은 것이 많았던 환자는 치킨, 피자, 삼겹살을 먹어도 되는지 물어봤습니다.

"오늘 검사한 것 보인깐 배속의 염증은 다 좋아졌고, 수술 후 경과도 좋아요.

이제는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될 거 같네요."


환자의 삶과 죽음에 관련된 상황을 많이 접하는 외과의사들은 여러 가지 고충들이 많습니다. 때론 개인적인 시간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해야 하는 시간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자신의 감정도 영향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아침에 시작한 수술이 밤까지 지속되는 경우도 있고 위급한 상태의 환자가 있을 경우 새벽이라도 나가서 수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렇게 개인적인 시간 없이 병원에 붙어살면 힘들지 않냐??

좀 더 쉽고 편하게 살지.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는 생사를 오가는 위험한 순간을 잘 이겨내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는 환자들도 있고 수술받기까지 여러 사연들이 많았지만 수술 잘 받고 건강하게 퇴원한다며 감사의 편지를 주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힘든 순간들은 결국 지나갑니다. 모든 상황들이 다 결과가 좋을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이 지나 뒤돌아봤을 때 후회는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순간순간 진심을 다하고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늘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위험하고 힘든 시간들을 잘 이겨내고 건강하게 퇴원하는 환자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

 그래도 외과의사 하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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