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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닥터오 Oct 28. 2021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닙니다.

대장암, 할머니, 선택

90세가 넘는 연세.

대장암.

이 대장암이 배안에서 터졌다면(천공, 복막염, 패혈증)..

이런 상황이 나에게 또는 내 주변에 생겼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수술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최근 90세가 넘은 할머니께서 아들과 함께 배가 아프다며 응급실로 오셨습니다. 배가 아프셨다는 것이 추석부터 있었다고 했으니.

만약 배 안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났다면 아마도 상당히 진행되였을 거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복통이 심하지는 않아 동네 병원에서 약만 처방받아먹었고 식사 양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드셨다고 하니. 아들도 그냥 늘 생기는 복통이고 약 먹고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하셨던 거 같습니다.


응급실에 오셨을 때는 열도 나고 혈압, 심장 박동수, 호흡수, 산소포화도가 불안정하여 1인 격리실에서 여러 가지 모니터링하는 장치를 달고 있었습니다. 응급실에 들어가기 전 응급의학과 선생님에게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몸상태, 피검사 결과, 복부 CT 정보까지 확인하고 환자, 보호자를 만나러 갔기 때문에 저도 할머니의 상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코로나(COVID19) 때문에 예전과 달리 열이 나는 환자들은 의무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하게 됩니다. 또한 열나는 것과 상관없이 입원해야 하는 환자도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결과를 예전보다 빨리 확인할 수 있어 수술해야 하는 외과의사에게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할머니 복부를 촉진해보니 상당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발열(fever)과 함께 피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올라가 있었고 복부 CT 결과 또한 심각했지만 이런 검사들에 비하면 오히려 할머니는 통증을 덜 느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환자를 늦게 응급실로 모셔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을 느끼는 신경들이 젊었을 때보다는 둔해집니다. 또한 연세 많은 분들은 "괜찮겠지. 약 먹으면 좋아지겠지. 예전에도 시간 지나니깐 좋아지더라." 하면서 참고 견디다가 마지못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병이 발견되곤 합니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 후 보호자(아들)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해드렸습니다.

"할머니 상태가 아주 안 좋으세요.

오른쪽 대장에 큰 혹이 있고, 이것이 터진 것 같습니다.

대장천공이 생긴 거예요.

이렇게 대장 안에 혹이 있으면서 천공이 생기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마도 "대장암"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대장내시경 해보셨어요??"


"시골분이시고, 연세가 많다 보니깐 아마 대장내시경 해보신 적이 없을 거예요."


나이가 많은 경우 대장이 터질 정도의 암덩어리가 생겼다면 대장내시경을 한 번도 안 하신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호자가 어떤 말을 하실지는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추석 때부터 복통이 있으셨으면 아마 그때부터 천공이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앞쪽으로 터졌으면 염증이 주변으로 퍼지면서 쉽게 진단이 되었을 텐데.

복부 CT에서 보이는 것처럼 대장의 뒤쪽으로 터지면서 염증이 주변으로 퍼지지 않고 고여있었기 때문에 통증을 잘 못 느끼셨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늦게 오시게 된 거 같아요."


"아..

그런 것도 모르고, 소화 안되고 변비 있는 거 같다고 동네 병원에서 약만 타다 먹었네요.

진작 큰 병원으로 모시고 올걸 그랬어요."


"지금 같은 상태에서 치료는 수술밖에 없습니다.

터진 대장과 대장암으로 의심되는 병변까지 모두 제거하고 나머지 건강한 장을 연결하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연세도 많고, 복막염과 패혈증 상태라 수술 중, 수술 후 위험한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할머니 몸상태가 아주 위중하긴 하지만 현재 수술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수술 안 하시면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연세가 많다는 점과 대장암 가능성, 장천공, 패혈증까지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보시던 보호자는

"이 연세에 수술은 안될 거 같아요.

수술하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큰 수술 하다가 고생하고 돌아가시는 것보다는 그냥 편하게 가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집으로 모시고 갈께요.


이런 경우처럼

결코 어떠한 선택도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무엇이든 골라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택을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좋으련만. 마치 어떤 운명의 장난처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과의사는 어떤 심정일까요??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떤 선택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과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알려드려야 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이렇게 물어보시는 환자, 보호자가 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아버지, 어머니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수술하실 건가요?

안 하실 건가요?"


저는 이런 질문에 제가 어떤 선택을 한다고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생각을 말하는 순간 제 의견대로 따라오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기보다는 좀 더 충분한 설명으로 그 대답을 대신합니다.


할머니의 몸상태나 병의 진행 정도를 생각해보면 수술을 안 하고 집으로 모신다는 말도 이해가 되었기에 저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수술할 때는 미리 환자, 보호자에게 수술 설명을 하고 `수술 동의서`라는 것을 받습니다. 여러 가지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수술이라면 특별한 문제없이 잘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수술 전 환자의 여러 가지 생체징후(혈압, 심박수, 호흡수, 혈액 내 산소 포화도, 피검사 결과 등등)가 좋지 않고 위험한 상황이라면 아마도 수술 후 회복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와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바로 "가능성"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좋아질 가능성, 나빠질 가능성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닙니다.

설계도를 보듯 모든 사람이 동일한 몸상태는 아니라는 것이죠.


외과의사들은 많은 수술을 하면서 아주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통사고로 배안에 피가 많이 나서 응급으로 수술해야 하는 상황, 대장이나 소장이 터지면서(천공) 생긴 복막염과 패혈증을 치료해야 되는 상황, 대장암과 같은 여러 종류의 암 때문에 수술해야 하는 상황 등 생사를 오가는 위험한 순간들이 많습니다.


이런 순간에 외과의사인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환자, 보호자들이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수술에도 적절한 시기가 있습니다. 그 시기를 놓친다면 아무래도 결과는 좀 더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수술이라도 해볼껄." 이런 후회가 남지 않도록 환자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도 외과의사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오래전 "명의"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참 감명 깊은 구절이 있었는데..

의사는 단지 '꿈의 직업'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명의는 인간의 한계와 싸우고 싸우다 '신의 손'을 빌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의사라는 직업이 특히, 외과의사의 경우 요즘처럼 워라벨(work-life balance),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처럼 일과 생활의 적절한 균형을 찾거나 손에서 메스(Mes, surgeon`s knife)를 놓고 일찍 퇴직할 수는 없기 때문에 꿈의 직업이 아닌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외과의사들은 매일 환자의 병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수술해야 이 병을 제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대변이 나오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싸우다 보면 어느덧 환자는 좋아지고, 회복되고 먹을 수 있고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것이 신들이 외과의사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요??


집으로 향하고 있던 저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열어보았습니다. 응급실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다른 환자가 생겼나 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집으로 할머니를 모시겠다던 보호자가 마음을 바꾸셨다고 했습니다. 이미 시간은 어둑어둑한 밤 12시가 다되어가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수술 생각에 오히려 맑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떻게 수술할지??

어떻게 할머니를 살릴지??


다행히 90세가 넘으셨던 할머니는 무사히 수술을 잘 버티셨고 중환자실 거쳐 일반 병실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계십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진심을 다해 싸우다 보면 신도 저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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