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간병, 관심
병원에서는 내과적인 치료를 받거나 외과적인 수술을 한 후 환자가 회복할 때 옆에서 이것을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 누군가가 환자의 남편이나 아내가 될 수도 있고, 자식이 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가족 중 한 사람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 옆을 지킵니다. 물론 간단한 수술을 하거나 환자의 나이가 젊은 경우 입원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혼자 치료받고 건강히 퇴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큰 수술을 받거나 나이가 많은 경우 또는 걸어 다니는 것이 불편한 경우 옆에서 환자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때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들이 환자 옆에 있어주지 못할 경우 "간병사" 또는 "간병인" 분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간병(看病) : 앓는 사람이나 다친 사람의 곁에서 돌보고 시중을 듦
요즈음은 간병인 분들이 환자를 돌보고 도와주는 경우가 과거에 비해서 더욱 많아졌습니다. 가족들이 환자 간병을 하는 경우가 여전히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그 비율은 적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병동 회진을 하다 보면 "간병인"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회진하면서 보호자가 없는 경우 환자의 상태와 경과, 앞으로 어떤 검사를 하고 치료를 할 것인지를 마치 보호자에게 설명하듯 간병하시는 분에게 설명하곤 합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회진하면서 하는 말을 유심히 들으시고, 질문도 하고 여러 가지 물어보시기도 합니다. 마치 보호자처럼 적극적으로 물어보시는 경우도 있는데, 가끔은 진짜 가족인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보호자들이 담당의사와 매번 만나서 환자 경과에 대해서 상의할 수 없으니 환자 옆에 있는 간병하는 분들을 통해서 궁금증을 해소하시는 듯합니다.
얼마 전 90세 초반의 할머니 환자를 수술했습니다. 장중첩증(intussusception)이라고 하여 소장-소장, 대장-소장, 대장-대장이 서로 끼어들어가는 병이 생겨서 입원 치료를 했지만 끼여있는 장이 자연적으로 풀리지 않아서 수술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연세가 많아 걱정을 하였지만 수술 전 시행하는 폐검사, 심장 검사에서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여 보호자와 상의 후 수술하였습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경우 장중첩증이 생긴다면 대장이나 소장 안의 혹이나 덩어리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를 보니 대장의 악성 종양(대장암)이 확인되었습니다.
대장암이 진단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주 초기였기 때문에 수술 후에 항암치료까지는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연세가 많은 경우 암수술처럼 큰 수술을 받은 환자는 중환자실(ICU)에서 며칠 회복되는 것을 지켜봅니다. 저는 1 ~ 2일 정도 잘 회복하면 일반 병실로 가서 열심히 걸어 다녀야 심장과 폐 기능이 잘 돌아온다라고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가서 열심히 걸어 다니고 운동해야 한다고 하면 바로 하지 못합니다. 수술한 지 하루 이틀밖에 안되었으니 수술 부위 통증 때문에 환자가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수술했던 저도 잘 알고 있지만 수술하고 회복하는 초기가 앞으로의 경과에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번 운동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할머니 환자는 하루, 이틀이 아닌 8일 동안이나 중환자실에 계셨습니다. 배안의 병변은 수술로 잘 제거되고 장운동도 잘 돌아오고 있는데, 폐기능이 잘 회복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보호자에게 물어보니 평상시에도 폐렴으로 1년에 몇 번은 입원했었다고 하니 일반 병실로 가면 더욱 열심히 운동하시라고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airvo라고 하는 환자의 호흡을 도와주는 기계까지 하고 있는 할머니를 보면서 중환자실 담당 간호사에게 물어봤습니다.
"수술하고 배안은 좋아지고 있는 거 같은데.
이거(airvo) 유지하고 걸어 다닐 수 없나요??
운동을 빨리 시작해야 하는데."
"과장님.
airvo가 중환자실 침대 위의 산소공급 장치에서 나오는 거라 airvo유지한 채로는 걸어 다니거나 운동하는 게 힘들어요."
그럴거라 예상은 했지만 혹시나 airvo를 유지한 채로 환자가 운동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지나 않을까??라는 생각에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No였습니다.
외과적으로 배안을 수술하게 되면 유착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배속의 수술했던 상처가 아물어가면서 주변의 대장, 소장들도 이런 영향을 받는데 그러면서 장끼리 엉겨 붙을 수도 있고 복벽에 붙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술은 잘되었어도 유착 때문에 생긴 장폐색으로 환자가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외과 수술하고 나면 통증 때문에 환자는 아파 죽겠는데도 담당 주치의나 교수님들이 운동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8일간의 중환자실 입원과 호흡기 치료가 끝나고 드디어 일반병실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일반병실로 올라가게 되면 운동이 중요합니다. 병실과 병실 사이 또는 병원 주변을 자꾸 걸어 다니시라고 하는데 연세가 많은 경우에는 반드시 옆에 누군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어나거나 앉다가 넘어지는 경우에는 뼈가 골절되거나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실로 오셨을 때는 보호자가 옆에 계실 수 없었던 이유로 간병하는 분이 환자를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회진 갈 때마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식사는 어느 정도 하셨고, 대변양, 오늘은 어느 정도까지 운동하셨는지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던 며칠 후 회진 돌러가는데 평소에 계시던 병실에 할머니가 없어서 확인해보니 공동간병실로 병실을 바꾸신 것이었습니다. 아마 1대 1로 할머니 한 명만 개인간병을 하기에는 비용적인 문제가 있어서 공동간병실로 옮기신 거 같았습니다.
이후 간헐적인 미열과 함께 숨 쉴 때 체크하는 산소 포화도(sPO2)가 자꾸 떨어지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공동 간병실은 비용이 적은 대신에 간병하는 1명이 여러 명의 환자를 간호하기 때문에 환자 한 명에게만 집중적으로 신경 쓸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는 아직 폐, 심장, 양쪽 다리의 힘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호자 또는 개인 간병하는 분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회진하고 나서 담당 간호사에게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이제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데.
나이가 많으셔서 퇴원할 때 까지는 안심할 수 없어요.
조금만 방심해도 다시 중환자실 갈 수 있습니다.
보호자에게 연락해서 직접 오셔서 환자 운동하는 거 도와주시거나 아니면 저번처럼 개인 간병하는 분이 있어야 한다고 알려주세요."
다음날 회진 돌면서 할머니의 병실이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공동간병실로 옮기기 전에 계셨던 간병하는 분이 할머니 옆에 있었습니다. 여전히 환한 미소를 띠면서 환자 상태에 대해서 차근차근 얘기해주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 편으로 안심이 되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의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의사, 간호사, 간병사, 병원행정을 도와주는 직원, 병원 시설을 관리해주는 직원 등등 아주 많은 인력들이 유기적으로 각자의 일을 하기 때문에 결국 병원이 돌아가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렇게 환자 옆에서 직접적으로 식사와 대소변을 확인하고 운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환자의 작은 변화부터 큰 변화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은 담당 의사가 아닙니다. 바로 환자 옆을 지키고 있는 간병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담당 주치의나 수술했던 외과의사도 24시간 환자 옆에 붙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의사들은 수술을 하고 외래환자를 보고 다른 입원환자들도 치료하다 보면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변화까지 안다는 것은 역부족일 수 있습니다.
환자가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은 바로 "관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느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치료의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하다 보면 환자가 어디가 불편한지, 어디가 아픈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일 수 있습니다.
수술은 잘된 거 같은데, 환자 회복이 느리네.
환자 회복이 잘 안되네.
이런 생각이 들 때쯤 환자를 가까이 지키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가 있습니다.
아주 아주 고마운 일입니다.
대장암 수술을 받으셨던 이 할머니 환자는 이제 퇴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식사도 잘하시고 대변도 잘 보고 숨 쉬는 것도 괜찮아졌기 때문입니다. 오후 회진을 돌면서 주무시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고 있으니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식사 1/4 정도 하셨어요.
영양음료도 1캔 정도 드셨고요.
수술하기 전에도 평소에 식사는 이 정도만 하셨데요.
오늘은 침대를 붙잡고 서는 연습을 하셨어요.
휠체어 타고 운동하는 것은 잘하시는데, 걸어 다니는 것은 힘드신가 봐요."
할머니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셨지만 이제는 휠체어도 타고 운동도 열심히 하십니다. 아마 조만간 다시 걸어 다니실 것입니다.
이런 환자의 회복과 변화가 과연 내가 수술을 잘해서. 내가 치료를 잘해서. 단지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저보다도 환자 가까이서. 환자의 작은 변화까지 체크하는 그분들의 환한 미소와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