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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닥터오 Nov 03. 2021

"선생님 아니였으면 병원 벌써 바꿨을 거예요"

투석환자, 친절, 반성

저희 병원은 의사들만 60명이 넘는 종합병원입니다. 대학병원이나 서울의 큰 병원에 비하면 작다 할 수 있지만 이 정도의 의사들이 근무하는 병원이면 지방에서는 꽤나 큰 병원입니다. 각기 다른 여러 전문 분야의 의사들이 근무하면서 다양한 질환과 많은 환자들의 진료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저한테 수술을 2번 받은 환자가 퇴원하였습니다. 3개월 전에 처음 수술받고, 이번이 두 번째 수술이었습니다. 눈, 코, 입도 뚜렷하고 머리도 시원하게 밀고 다니셔서 "쎈남자" "상남자"분위기를 풍기고 다니십니다. 게다가 체격도 좋고, 회진 돌러 병실로 들어가면 더우신지 환자 상의복 단추는 절반은 풀어놓고 계시는데.. 제가 만약 담당 의사가 아니었다면 말 걸기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환자의 왼쪽 팔을 보면 인상만큼이나 도드라져 보이는 두꺼운 혈관이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아. 팔뚝까지 무섭게 생겼네."라고 할 수 있지만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조혈관"이라는 것이고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혈관입니다.

맞습니다. 이 환자는 투석하는 분입니다.

이환자와 만남은 3개월 전 복통 때문에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부터였습니다. 심한 복통으로 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하였고, 복부 CT에서 확인해보니 왼쪽 아랫배에 있는 대장(에스결장)이 터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며칠 대변보는 것이 힘들고 변비가 있었는데, 등산을 다녀온 후 점점 배가 많이 아파졌다고 했습니다.


투석 환자들은 신장기능이 떨어져서 변비가 흔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심한 변비가 원인이 되어 대장이 터질 수도 있고 대장에 발생하는 게실염 때문에 대장천공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응급수술을 시작했고, 이렇게 대장이 터져서 배안에 복막염이 심할 경우에는 '장루'라고 하는 '인공항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문제가 있는 대장을 절제하고 다시 연결했을 때 장 안을 지나가는 대변 때문에 수술 부위가 다시 터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런 환자의 경우 왼쪽 아랫배에 장루 만드는 수술을 하게 됩니다.


등산 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환자는 장루를 달고 산에 다닐 수 있는지?? 사람들은 만날 수 있는지?? 아주 많은 질문을 하셨고, 저는 그럴 때마다


"괜찮아요.

장루 가지고도 평생 아무 문제없이 일상생활하는 환자들도 많습니다.

단지 대변 나오는 길이 바뀌었을 뿐이에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얼마나 많은 장루 환자들이 있는데요.

아직 우리나라는 장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그렇지.

외국 나가면 장루에 대해서 아주 당당하고 아무렇지도 않아요.

장루환자들도 당당히 비키니 입고 수영하고, 몸 만들어서 헬스 대회 나가고 상도 받고 합니다."


"그리고, 이 장루가 없었으면 수술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요.

장루가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예요.

아주 아주 고마운 존재죠."


장루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친근 해질 수 있도록 이런 설명을 자주 해드렸습니다.

 

이환자는 만성신부전이라는 병과 투석을 오래 해온 만큼 건강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참 많았습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말도 빠르고, 성격도 급하고 때로는 잘 삐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병동 담당 간호사들이 환자 퇴원할 때까지 고생 많이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투석도 오래 하셨고, 건강에 대한 관심도 많고, 성격도 급하다 보니 상담하다 보면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외래로 내려와 해결할 때가 많았습니다.


장루 수술 후 환자가 충분히 회복되면 '복원 수술'이라는 두 번째 수술을 하게 되는데 이때 수술하기 전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합니다. 2차 수술을 하기 전 내시경을 하고 문제 있는 부분이 확인되면 수술할 때 같이 제거하고 건강한 대장끼리 연결하기 위함입니다.


수술 전 내시경 결과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지만 회진 돌 때마다 종종 위내시경 결과를 물어보시는 것을 보면 내과에서 시행한 위내시경 소견이 계속 이해가 안 되고 걱정이 많이 되었던 거 같았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내과 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수술했던 상처의 실(실밥, 봉합실)을 제거하기 위해서 저의 외래로 들어오셨습니다. 상처는 아주 잘 붙었고 내일 잘 퇴원하실 수 있다는 말을 다 듣고는


"과장님

저 내과 선생님 바꿔주시면 안 돼요??

환자가 모르니깐 물어보지. 알면 상담하러 왔겠어요.

성의도 없고, 불친절해서 기분 나빠요.

저 다음번에도 저 내과 선생님한테 진료 봐야 하면 병원 바꿔버릴 거예요.

내가 과장님만 아니었으면 한바탕 했었을 거예요."


워낙 불같은 성격이라 내과에서 그런 소동 없이 저한테 와서 하소연하는 것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아. 진정 좀 하시고요.

오늘 내시경도 많고, 바쁘셔서 그러셨을 거예요.

내시경까지 직접 해주셨는데, 담당 의사를 맘대로 막 바꿀 수가 없어요.

우선 다음 외래 때 저랑 다시 얘기하시고 기분 좀 푸세요."


그렇게 화가 좀 풀어진 환자는 다시 병동으로 올라갔습니다. 환자를 안내해주던 외래 간호사가 다시 들어와서는


"저는 과장님이 환자한테 화내는 거 한 번도 못 본 거 같아요.

"화를 안 내긴. 마스크 때문에 안 보이는 거야."


그렇게 너스레 농담 삼아 대답해주었지만 맘은 왠지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환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만 삭일뿐 가급적 표현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처럼 '의사'라는 권위의식에 빠져서 '환자'를 대하거나 갑/을 관계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요즈음은 의사를 고르는 시대이고, 의사가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병원으로 가버리는 상황입니다. 예전처럼 의료서비스가 부족해서 진료를 받기 위해 먼 거리를 오가지 않아도 되고 내 주변 어디에서나 진료를 받을 수 있고 건강과 의료에 대한 정보 또한 언제 어디서나 검색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입니다. 

환자들도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면서 병원을 찾고 의사를 만납니다. 그에 상응하는 관심을 받지 못하면 뒤돌아버립니다.


저도 100% 모든 환자에게 친절한 것은 아니지만 늘 환자에 대한 존중과 관심, 아픔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응급수술을 하고 밤늦게 들어오면 집에서 아내와 시원한 맥주 한잔 하면서 수술실에서 있던 일들이나 그날 하루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렇게 수다 떨고 있으면 아내는 문득 이렇게 물어봅니다.


"오늘은 수술실에서 화 안 냈어??"


이렇게 물어보면 저는 뜨끔하면서 이런저런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변명거리를 장황하게 늘어놓게 됩니다.


"환자한테만 잘하지 말고, 수술실에서 수술 도와주는 분들한테도 잘해.

그분들 힘들어서 나가면 당신 책임인 거야.

그러면 의사만 힘들어지는 거지.

너무 밤늦게까지 수술하면 수술 어시스트해주는 그분들도 힘들어."


밤늦게 까지 하거나 밤에 하는 수술은 응급이고 큰 수술이니깐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마음속으로 드는 미안한 생각은 어쩔 수 없습니다.


예전 '공감'이라는 프로에서 "나는 외과의사다"라는 다큐가 있었는데, 흉부외과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수술할 때 수술장은 전쟁터입니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수술이 끝날 때까지 항상 긴장의 연속입니다. 환자의 생명이 위중할수록, 응급수술일수록 날카로운 신경은 극에 달합니다. 그러다 보니 수술을 도와주는 주변의 손길들이 내 맘같이 않으면 "버럭"하게 됩니다. 


험난하고 응급수술일수록 서로 간에 부딪히는 순간들이 많았기에 수술이 마무리되어갈수록 마음 한켠이 편치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앞으로는 수술이 끝나고 미안한 마음에 억지로 웃고 나오는 웃음이 아닌 늦게까지 도와준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이 묻어나는 그런 웃음을 짓고 나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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