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내시경, 운(運), 확률
따르르릉.
따르르릉.
진료실의 전화벨이 울려서 받으니 수술방에서 수술 준비 다되었다는 전화였습니다. 마스크를 끼고 외래 진료실 문을 열고 수술방으로 올라가는데, 이번에는 핸드폰이 또다시 울어대기 시작합니다. 발신자 이름을 보니 지금은 서울의 Big 3 대학병원에서 펠로우를 하고 있는 외과 후배가 전화한 것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어. 그래. 오랜만이네.
이제 펠로우 2년차지??
힘들겠네. 그래도 몇 달만 있으면 펠로우도 끝나는구나."
"선생님. 통화할 시간 되시나요??"
"지금은 수술 들어가는 중인데. 왜??"
"제 친구가 OO병원에서 내시경을 하는데요.
대장내시경 하다가 대장 손상이 좀 있는 거 같아서요.
혹시 선생님 병원으로 보내서 환자 치료 좀 부탁드릴 수 있나 해서요."
"그래??
아이고.
내가 지금은 수술 들어가야 하니깐 환자 상태에 대한 것은 문자로 먼저 보내주고 환자는 보내라고 해."
"감사합니다.
문자는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래 걸리는 수술은 아니였기에 끝나고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손상된 대장 내시경 사진과 환자의 현상태, 어떻게 대장 손상이 생겼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가 출발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전화통화를 했었고 출발해서 지금 저희 병원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는 것까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녁 7시가 다되어서야 병원으로 도착할 수 있었고 그 시간에는 외래가 끝나기 때문에 응급실에서 환자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는 기본적인 검사와 복부 CT를 촬영하였고, 그 검사 결과가 나올 때쯤 응급실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과장님
다른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하다가 대장 손상 생긴 거 같은데, 진료의뢰서에 과장님 이름을 ‘꼭’ 찍어서 환자 보낸다고 써있네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후배 녀석과 환자에 대해서 상의했던 터라 환자 이름도 알고 있었고, 응급실에 도착해서 검사하고 있는 것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응급실에 가서 환자를 만나고 복부를 촉진(만져보니)해보니 다행히 심한 복통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복부 CT에서 확인되는 손상부위와 내시경 사진은 환자를 그냥 지켜보기에 왠지 모를 불안감과 석연치 않은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촉"입니다.
수술에는 시기가 있습니다.
늦어도 안되고 빨라도 안된다는 흔히 말하는 그런 적당한 시기가 아닙니다.
환자가 안전하게 회복하기 위해서 "늦어서는 안 되는" 그런 시기입니다.
그럼.. 그 시기가 빠르다면??
수술을 빨리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확인되고 빨리 수술한다면??
다들 느끼셨지만 문제가 있고, 병이 확인되었다는 전제하에 수술 여부를 빨리 결정하고 수술한다는 것은 당연히 '훌륭한 결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환자는 힘들지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건강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없어 다행이라고 느꼈던 환자와 보호자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얼굴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지금 복통이나 열, 복부 팽만과 같은 증상은 없지만 내시경 소견이랑 복부 CT 검사를 보면 수술을 해야 합니다. 내시경 사진을 보면 대장 손상이 좀 깊어요.
근육층을 뚫은 것 같은데, 대장의 가장 바깥층은 괜찮아서 통증을 못 느끼시는 거예요.
이런 경우 그냥 수술 없이 지내시다가 식사하고 대변보고 나서 점점 배가 아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손상된 대장 부위가 뒤늦게 터져서 그런 거예요.
배 안으로 복막염이 생기는 것이죠."
"오히려 이렇게 바로 확인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모르고 있다가 복막염으로 수술하게 되면 수술 자체가 커질 수 도 있거든요."
증상이 없어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환자와 보호자는 저의 설명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듯 다른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셨습니다.
"대장 내시경 하다가 장천공이 생기는 것은 아주 드물어요.
교과서적으로 보면 0.1 ~ 3%까지 보고하는데, 용종을 떼어내거나 치료적인 내시경을 하는 경우는 3%가 넘는다고 하는데요.
보통 검사만 하는 대장내시경은 0.1% 정도로 그 확률을 이야기합니다.
내시경 하는 선생님들의 스킬이나 환자가 가지고 있는 병에 따라서 대장천공이 되는 빈도는 달라질 수 있고요."
"천공되는 부위는 주로 직장에서 위로 올라가는 대장인 에스결장(S-colon)이라고 하는데서 많이 생깁니다.
말 그대로 결장이 꼬불꼬불, 영어 알파벳 S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르는데요.
이 부분이 굴곡이 많아서 내시경 하다가 손상되기 쉬운 자리예요.
손상받은 부위가 CT에서도 S결장에서 보이네요."
이렇게 설명드리니 고민보다는 수술하기로 결정하신듯한 표정으로
"환자(남편)가 내시경도 생전 처음 하는 거고, 수술도 처음인데요.
어떻게 이런 일이 저희한테 생겼는지 모르겠네요.
대장내시경 하다가 이런 일이 생긴 것도 당황스러운데, 수술까지 해야 한다니 걱정이 많아요.
수술 잘 좀 해주세요."
확률이라는 것이 참 웃깁니다.
1%, 0.1%, 0.01%라는 숫자는 아주 작아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 보통은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어떤 일이 생길 확률이 저렇게 작으면 아무 문제없이 해결될 가능성은 오히려 99%보다 크기 때문에 대부분 신경 쓰지 않죠. 하지만 만약 1%보다 작은 확률이라도 내가 해당된다면 바로 100%가 되는 것입니다.
수술은 그날 저녁 바로 진행하였습니다. 대부분 이렇게 대장내시경 하다가 대장 천공이 된 경우는 복강경으로도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부 CT와 내시경상에서 보였던 문제 있는 부분은 실제 수술하면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장 밖으로 터져있지는 않았지만 안쪽을 확인해보니 대장의 가장 바깥쪽 벽은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었고 점막부터 근육층까지 깊게 손상받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대장 천공이 발생한 경우 오히려 복강경으로 봉합술 하는 것이 안전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상받은 부위가 크거나 봉합해야 하는 대장의 조직들이 지저분한 경우, 또 다른 부위의 손상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오히려 개복수술로 바꾸어서 수술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복강경과 개복수술 중 선택을 해야 할 때 항상 고민되는 것이 바로 "수술 부위 상처(흉터)"입니다.
만약 처음으로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1%보다도 작은 확률이지만 대장천공이 생겼고 게다가 복강경에서 개복수술로 바꾸어 수술을 해야 한다면..
어느 누가 봐도
이렇게 운이 나쁜 경우가 어디 있을까??
이런 최악의 경우가 생길 수 있나??
어쩜 저렇게 안 좋은 상황들이 한꺼번에 왔지??
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환자의 수술이 막바지로 향해 갈수록 개복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자꾸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복강경에서 개복수술로 바꿀까??
그럼 환자 배 흉터는 어쩌지??"
이런 걱정들로 제 머리로는 끝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켠은 이미 결정을 한 상태였습니다.
수술은 사사로운 감정이나 연민에 사로잡혀서 할 수는 없습니다. 불쌍한 감정, 미안한 감정, 애처로운 감정들은 메스(Mes, surgeon`s knife)를 잡기 전까지입니다.
메스를 드는 순간 냉혹(冷酷)하리만큼 냉철(冷徹)해야 합니다.
항상 수술할 때는 최선의 결정을 해야 합니다. 수술할 때는 여러 가지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수술 전 계획했던 것들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절대 당황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복강경 봉합술을 끝까지 진행하려고 무리하게 욕심을 부렸다가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수술했던 부위가 새기라도 한다면(수술부위 누출) 2차 수술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생각에 개복술을 진행했고 다행스러운 것은 수술해야 하는 부위가 쉽게 확인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피부의 상처를 작게 만들고 수술을 잘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내시경.
내시경 하다가 생기는 1% 이하의 대장 손상.
손상받은 부위가 커서 개복수술로의 변경.
동시에 이런 일들이 생길 가능성은 아주 아주 드물 것입니다. 확률로 따진다면 0.00001%보다도 더 작은 확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꺼번에 이런 것들이 생길 수 있는 원인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모릅니다.
수술하다 보면 종종 생각지도 못했던 상활들이 발생하기도 하고 위험한 순간들과 마주칠 때도 있지만 어떤 상황이 생기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안전"입니다. 내시경 하다가 대장 손상이 생겼는데 복강경으로 잘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보다는 수술을 마무리하고 나오는 순간까지도 어떤 것이 환자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인지를 늘 고민해야 합니다.
수술이 끝나고 환자가 회복기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외과의사는 예민해집니다.
환자가 열이 나는지??
배가 아픈지??
잘 걸어 다니는지??
마치 짝사랑하는 연인처럼 환자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됩니다.
며칠 전 기운 없다고 힘없이 걸어가던 환자가 어제는 '방귀'가 나왔다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주니 제 마음도 덩달아 환해졌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웃을 일이 많길 바라며 진료실 문을 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