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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닥터오 Nov 09. 2021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혈관외과, 대학병원, 판단

대학에서는 인문, 공학, 경제, 역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배웁니다. 이를 모두 배우기에는 범위가 아주 광범위하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전문 분야를 나누어 공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공이 있고,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의학도 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 등 아주 다양한 전문과목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출처 : 서울아산병원

외과라는 전공 분야를 알아볼까요??

외과는 상부위장관외과, 대장항문외과, 간담췌외과, 이식외과, 유방외과, 내분비외과, 혈관외과 등등 좀 더 세부적인 전문 진료과목이 많이 있습니다. 암(Cancer) 또한 간암, 대장암, 위암, 유방암 등 우리 몸에서 생길 수 있는 암의 종류에 따라서 그 영역을 나누고 해당되는 환자들을 검사하고 치료하게 됩니다.


또한 병원도 1차 의료기관, 2차 의료기관, 3차 의료 기관이 있습니다. 1차 의료기관은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쉽게 갈 수 있는 동네 의원, 개인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2차 의료기관은 대학병원은 아니지만 여러 진료과가 있어서 입원치료와 다양하고 큰 수술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차 의료기관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대학병원을 말하는데, 암(Cancer)수술과 희귀질환, 고위험 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입니다.


4차 의료기관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이나 서울삼성병원, 서울대 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처럼 서울의 큰 Big Center들은 대학병원에서도 이런 병원으로 환자를 의뢰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농담 삼아 "저기는 4차 의료기관이야" 이렇게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며칠 전 50세 중반의 남자분이 배가 아프다며 내과에서 진료 후 흉부외과를 거쳐 저한테 오셨습니다. 배가 아파서 내과에서 진료를 받았고 복부 CT를 찍었는데, 혈관 문제가 있다고 하여 흉부외과에서 다시 진료를 봤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되는 혈관이 SMA라고 하는 상장간동맥(SMA, superior mesenteric artery)이였습니다. 이 혈관은 대동맥에서 나와서 주로 소장(small bowel)에게 혈액공급을 하고 있는 동맥인데 만약 이혈관에 손상이 생기거나 문제가 생기면 혈류공급이 떨어지면서 소장 허혈(ischemia)/괴사(necrosis)가 생길 수 있습니다.


보통 입원하고 있는 환자를 그 질환에 맞게 해당 전문과로 옮기는 것을 "전과" 라고 합니다. 환자를 "내과에서 외과로 과를 옮긴다." " 내과에서 외과로 전과한다."라고 부르는 것이죠.


이 환자는 SMA라는 혈관에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 중에서 "SMA dissection"이라고 하는 "상장간동맥 박리"가 생겼는데 이 병은 흔하게 생기지는 않지만 약물 치료를 하면 경과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만약 복통이 심해지고 약물에 효과가 없다면 시술이나 수술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복부 CT에서 보이는 것처럼 배꼽 위쪽으로 통증이 있었고, 피검사에서 염증 수치도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약물 치료를 위해서 입원하였습니다. 다행히 다음날 복통도 호전되고 컨디션도 어제보다 좋아서.

"그래도 증상이 빨리 좋아져서 다행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환자가 입원하지 3일째 되는 새벽,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과장님.

환자분이 갑자기 새벽부터 복통이 심해지셨는데, 입원할 때보다 통증이 더 심하시데요.

일반 진통제로는 효과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럼 OO진통제 주시고요.

금식은 되어 있는 상태죠??

바로 복부 CT 촬영해볼께요."


아침에 출근하여 복부 CT를 확인해보니 영상의학과 과장님이 미리 판독을 해주셨는데 안타깝게도 입원할 때보다 SMA dissection(상장간동맥박리)이 더 안 좋아진 상태였습니다. 만약 혈류 공급이 안되거나 혈관이 막히면 소장의 괴사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소장 절제술까지도 해야 할 수 있습니다.


소장의 상태는 다행히 괜찮았지만 혈관 박리로 좁아져 있는 공간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스텐트(stent)삽입술까지   있는 전문가가 필요한 상황이였습니다.


이런 환자 치료는 외과 중에서도 "혈관외과"라는 전문분과 외과의사가 해야 합니다. 또한 혈관 조영술과 혈관 스텐트를 넣을 수 있는 영상의학과 팀과 의사 선생님도 필요할 수밖에 없겠죠.


저는 외과 4년의 레지던트를 끝내고 대장항문외과를 추가적으로 2년 더 전공하였습니다. 외과 레지던트만 마친경우에는 "외과전문의" 가 되지만 대장항문외과를 2년 더 공부한 경우에는 "대장항문외과 세부전문의" 가 됩니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면 대장항문외과, 상부위장관외과, 간담췌외과, 유방외과, 이식외과, 혈관외과 등등 여러 진료과목이 있는 것이 이런 세부전문의 교수님들이 환자 진료를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저희 병원에는 혈관외과 선생님이 없고, 만약 소장의 혈관에 스텐트를 넣어야 하는 경우 이를 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환자를 위해서 병원을 옮기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도 진료하고 수술을 하다 보면 환자가 "좀 더 일찍 왔었으면" "수술을 좀 더 빨리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환자들은 '그냥 장염이겠지, 예전에도 이렇게 아프다가 좋아졌으니깐' 이렇게 생각하고 병원을 늦게 방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다른 환자들은 입원 치료 중 좀 더 큰 병원(종합병원 or 대학병원)으로 빨리 옮겨져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판단이 늦어 안타까운 순간들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당 진료과를 바꾸는 것을 "전과" 라고 부르고, 이렇게 병원을 옮기는 것을 "전원" 이라고 합니다. 흔히 저희 의료진들은 다른 병원으로 트랜스퍼(transfer)보낸다라고 하는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나 다른 의학드라마에서 들어봤던 단어일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옮길 경우에는 해당 병원 응급실로 방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의 컨디션이 괜찮아서 외래 진료를 보고 담당 교수님이 입원이나 통원치료를 판단하면 좋겠지만 대학병원 외래 진료를 당일 예약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보통은 대학병원 응급실을 방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옮긴다는 것

이것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자의 현재 몸 상태가 더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만 할 정도로 안 좋다는 것이고 병원이라는 심리적으로 안정된 장소에서 벗어나 이동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병원에서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할까 라는 겁나고 두려운 생각마저 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약물 치료가 잘 되지 않으면 시술이나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긴 했지만 복통이 다시 생겨 찍은 CT를 보면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추가설명을 하였습니다.


"오늘 다시 촬영한 복부 CT를 확인해보니깐 SMA dissection(상장간동맥박리)이 더 심해졌어요.

다행히 소장으로 혈류 공급이 되고 있어서 괴사가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혈관외과가 있는 전문의료센터에서 치료받으시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지금은 통증이 또 괜찮아진 것 같은데요.

꼭 옮겨야 하나요??

그렇게 나빠진건가요??"


"지금은 진통제 때문에 괜찮다고 느끼시는 거예요.

소장괴사가 진행되었다면 저희 병원에서 바로 응급수술을 할 수도 있지만 아직 소장상태가 괜찮기때문에 수술 안 하고 소장도 절제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항응고제같은 약물치료나 소장혈관조형술, 혈관 스텐트 시술을 하면 수술 없이도 치료될 수도 있으니깐

그쪽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지금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는데 만약 안 받아주면 어떡해요.."


뉴스에서 보면 환자가 입원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이 종종 보도되곤 합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 할 때는 그쪽 병원에서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지, 치료가 가능한지를 미리 확인하고 옮겨야 합니다.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고 그 병원으로 안전하게 안내해주는 것도 아주 아주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이렇게 하면 될 거야." 같은 단순한 희망과 가능성에 환자의 안전과 건강을 배팅할 순 없습니다.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고 수술하는 과정은 확실한 대안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1차 치료가 안된다면 2차 치료, 이후 3차 치료와 같은 환자 치료 plan을 미리 계획해야 합니다. 이런 plan에는 "전원"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만약 1차 치료 후, 또는 2차 치료 후 효과가 없거나 환자의 예후가 좋지 않아 좀 더 큰 의료기관에서 진료가 필요하다면 고민 없이 전원 해야 합니다. 이런 것도 정확한 판단과 큰 용기가 필요한 과정입니다.


저는 바로 혈관외과가 있는 주변의 대학병원을 알아보았습니다. 응급실로 전화를 하고 혈관외과 교수님이 환자를 입원시켜 치료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환자와 보호자가 직접 알아보는 경우는 응급실로 무작정 찾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만약 해당 진료과에서 환자를 입원시키기 힘든 경우가 생긴다면 환자와 보호자는 또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면 당연히 환자의 병은 더 진행될 수 있고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습니다.


환자에 대해서 상의했던 대학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환자 상태와 검사 결과 보시고 저희 병원 혈관외과 교수님이 환자 입원 치료 가능하다고 하셨어요.

그쪽 병원에서 검사했던 복부 CT 가지고 저희 병원 응급실로 오시면 된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환자, 보호자에게 OO대학병원에서 입원 가능하다고 해서 병원 옮기시면 된다고 했더니.


"과장님. 감사합니다.

저희는 막막했어요.

병원 옮겨야 한다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다른 병원에서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하나.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도 했고요.

아무튼 너무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치료해주신다는 혈관외과 교수님이 더 감사하죠.

얼른 짐 챙기시고. 치료 잘 받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판단하고 인정하는 것도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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