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이었다. 하고 많은 음식 중에 퉁퉁 불어터진 누른국수 생각이 났을까?
예전에는 먹기 싫다며 거들떠도 안 보던 음식이었다.
더구나 극심한 통증으로 입맛이 똑 떨어져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이다.
지난 4월 오랫동안 앓아오던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으로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살면서 하루 이상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던 나로서는 수술 후 고통의 신세계를 경험한 것 같다.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되었다.
무통주사를 달고도 수시로 진통제를 맞아가며 견디는 상황이니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약에 취해 비몽사몽 하는 중에 엄마의 누른국수 생각이 났다. 칼국수랑 다를 것이 없었는데 누른국수라고 했다.
반죽에 콩가루를 넣어 누리끼리해서 누른국수인지, 홍두깨로 꼭꼭 눌러가며 밀어서 누른국수인지, 엄마의 사투리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는 늘 누른국수라고 했다.
엄마는 넉넉지 않은 살림을 살면서 여러 식구들의 배를 곯지 않게 하려고 하루 한 끼는 국수나 수제비를 했다.
끼니때가 다가오면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커다란 양푼에 국수 반죽을 했다. 뻑뻑하던 반죽이 반들하게 윤기가 돌면 뚜껑을 덮어 놓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대청마루에 앉아 암반에 올려놓고 내 키랑 비슷한 홍두깨로 밀어 얇게 썰었다. 다 썬 국수는 둥그런 쟁반에 밀가루를 솔솔 뿌려 펼쳐 놓았다.
마당 가장자리에는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화덕 아궁이가 있었다. 아궁이 위에는 언제나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 놓은 양은솥이 걸쳐져 있었다.
양은솥에 멸치를 한주먹 넣은 물이 팔팔 끓어오르면 쟁반에 펼쳐 놓았던 국수를 서로 달라붙지 않게 살살 흔들어 넣었다. 이어서 채 썬 애호박과 파, 마늘을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엄마표 누른국수가 되었다.
모든 식자재가 귀했던 시절이라 멸치 한주먹 애호박, 파와 마늘이 전부였던 소박한 국수였다. 엄마의 누른국수는 다들 맛있다고 하였지만 먹을 것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니 맛보다는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것 같다.
양은솥 가득 끓인 국수를 대접에 그득히 퍼주면 아랫방 새댁네랑 안집 할머니께 갖다 드리는 심부름은 온전히 맏딸인 내 차지였다.
나는 누른국수 하는 날이 싫었다. 때때로 나만 시킨다고 골내다가 지청구를 듣기라도 하면 얼마나 서럽던지 뒤꼍 은행나무 아래서 한참을 울었다.
어떤 날은 한 지붕 아래 사는 온 식구들이 먹고도 남아서 양푼에 담아 장독대에 올려놓았다가 다음날까지 먹는 일도 있었다. 그때는 퉁퉁 불어서 차게 굳어진 국수를 젓가락 대신 수저로 퍼먹어야 했다. 아버지와 동생들에게는 밥을 주면서 맏딸인 내게만 당신과 함께 불은 국수를 먹자고 하는 엄마가 혹시 계모가 아닐까 하는 철없는 생각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끙끙 앓느라 헛소리까지 나오는 와중에 밥상 끝머리에서 엄마와 같이 먹던 불어터진 누른국수라니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었다. 그 옛날의 누른국수가 아니어도 각가지 해물이나 채소를 넣은 맛집 칼국수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수술한 지 달포가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누른국수가 먹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엄마가 그리웠던 게다. 아들인 동생들과 차별을 하고 때때로 억울한 지청구에 서러웠어도 엄마의 품이 천국이었다는 것을 이 나이가 돼서야 깨닫는다.
투박한 엄마의 손을 잡고 지친 육신을 한 번만이라도 기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