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안재현의 영상을 보면서
얼마 전, 배우 안재현의 나 혼자 산다 출연 영상을 보며 든 생각 하나.
"세상엔 당연한 건 없다"
해당 영상에서는 안재현이 홀로 추석 명절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형 뽑기에 9만 원을 태우고, 집에서 혼자 전을 부쳐 먹으며 명절을 지내는 잔잔한 영상이었달까. 그런데 영상 마지막 즈음, 안재현은 혼자 보내는 명절이 외롭다 말하며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의 이른 이혼 그리고 대부분의 가족들이 자영업자였기에 명절은 대부분 혼자 조용히 보냈다. 그리고 (수십 명의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이대호 아나운서의 명절 영상을 보면서 '아, 저런 명절도 있구나. 여럿이 함께 보내는 명절은 어떨까?'를 느끼게 됐다."
그리고 문득 ‘나는 어땠지?’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시끌벅적한 명절을 보낸 편에 가깝다. 어릴 적부터 명절은 언제나 친가, 외가 심지어 큰댁까지 방문하며 시간을 보내왔으니 말이다.
심지어 설, 추석 전날에는 항상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모두 음식을 만드시는데 손자이자 아들인 내가 빠질 수 있을 리가...
그런 나에게 명절 전날과 당일은 너무나 당연하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내 친구들 모두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대학생이 되고 처음 깨달았다. 그걸 왜 대학생이 되어서야 알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은 너무 어렸고, 중/고등학생 때는 남중남고를 나와서였을까? 서로의 집안 분위기나 환경에 대해 딱히 서로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대학교에 가서 다양한 지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고, 어른이랍시고 술도 한 잔씩 하다 보니 (취기에?)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됐다. 그제야 내가 당연하다 생각했던 가족의 모습이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음을 처음 깨달았다.
명절 때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친구, 혼자서 보내는 친구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명절을 너무도 피하고 싶었던 친구까지... 그렇게 나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알게 됐다. 사실 사별을 제외하고) 이혼 가정이 실제로 있구나란 사실 자체가 당시의 나에게는 꽤나 충격이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살다 보니 내가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자주 경험하게 됐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당연하다 생각했던 사소한 몇 가지 사실들을 나열해 보자면...
• 나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이다
• 수건은 한 번 쓰고 빨아야 한다
• 대학 입학/취업만 하면 다 끝이다
• 회사에서 이어폰을 쓰면 안된다
• 결혼/육아는 다 겪는 일이다 등…
(입대 전까지만 해도) 정말 나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나름 많이 먹고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냥 덜 먹었던 거였다. 군대에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루 3끼만 먹어도 살이 찌더라.
세수 혹은 손만 닦은 수건이 아니라면 절대 2번 이상 쓰지 않았다. 심지어 모두가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너무 과격한 예시지만) 수건과 걸레를 혼용해서 쓰는 기안84라는 캐릭터도 함께 사는 세상임을 미처 알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취업에 성공했을 때 정말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을 시간이구나 진짜 끝났다..는 무슨. 언제나 새로운 문제가 시작됐고 심지어 점점 더 풀기 어려운 숙제를 받는 기분까지 든다.
첫 입사했던 회사에서 업무 중 이어폰을 꽂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약간 '어딜 감히?'이런 느낌이었달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노이즈 캔슬링은 필수요 거기에 노래까지 들으며 일한다(심지어 여유가 생기면 종종 글도 쓴다ㅎㅎ).
사실 비혼주의, 딩크에 대해서도 아주 소수의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랑 가장 친한 친구들이 비혼 그리고 딩크였음을 알게 됐다. 아니..뭐 친구들 이야기까지 할 필요도 없는 게 30살 전에 결혼해서 아빠가 되어있을 줄 알았던 30대 중반의 난… 아직 결혼도 못했다^^
이제는(내가 생각했던) 당연한 무언가가 당연하지 않아 지는 순간을 계속 마주하게 되리라는 걸 잘 안다. 다만, 그런 순간들을 마주했을 때 내가 "그랬구나!"하며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가 붙는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경험과 생각이 다르고 당연한 건 없음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분명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들이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그래도 이런 경계(?)조차 하지 않는 순간이 어쩌면 흔히 말하는 "꼰대"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만큼, 항상 세상에 당연한 건 없음을 잊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