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일상
며칠 전, 호주 법원 로고가 찍힌 우편물이 도착했다.
봉투를 열어보니 뜻밖에도 ‘배심원으로 선정되었다’는 안내문이 들어 있었다.
맙소사!
미국 법정 드라마를 즐겨보던 터라, 배심원이 하는 일쯤은 대충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앉게 된다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무엇보다도 영어를 완벽히 알아듣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우편물의 QR코드를 찍고 법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설문 항목 중에 ‘통역사가 필요하다’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칸에 체크했다.
그런데 ‘Next’를 누르자 곧바로 “평생 배심원 선정에서 제외됩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모든 과정이 1분 안에 끝났다.
긴장과 두려움이 섞였던 마음이 허무하게 풀려버렸다.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공허함이 밀려왔다.
이 나라 시민으로서 내가 받은 건 많은데, 내가 사회에 내보내는 건 세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요즘은 일을 쉬고 있어 Jobseeker 보조금을 받고 있는 처지다.
호주는 단순히 돈을 주는 나라가 아니다.
도움을 받으려면 정해진 기관을 통해 봉사활동 등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병원 진단서를 제출해 예외 심사를 받았고, 담당 의료 상담사가 전화를 걸어와 상태를 걱정하며 지원 기간을 연장해 주었다.
필요하다면 집안일이나 정원 가드닝을 돕는 서비스도 신청할 수 있다며 진심으로 챙겨주는 그 목소리에 마음이 뭉클했다.이렇게 많은 배려를 받으며 살고 있음에 새삼 감사함이 밀려왔다.
남편은 “그건 결국 내가 낸 세금 덕분”이라며 웃었지만, 그 말 속에도 어느 정도 진실이 있다.
일하는 사람들이 세금을 내고, 그 세금이 누군가의 안전망이 되는 선순환 사회.
나 역시 일할 때 세금을 냈고, 그 돈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온다.
호주는 내가 낸 세금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주는 나라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도 천만원을 받았고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아이들 앞으로 한달에 백만원 정도의 꽤 큰 금액이 입금된다.
때로는 느린 행정 절차에 속이 터지기도 하지만, 그 느림 안에는 사람을 함부로 놓지 않겠다는 따뜻한 의지가 숨어 있다. 아프거나 혼자가 되어도 외면하지 않는 나라.
그 품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이 오늘 하루를 감사함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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