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잔상 : 다정함에도 대상이 있다는 걸, 나는 여덟 살에 알았다
나는 여덟 살에 처음 알았다.
말에도 온도가 있다는 것을.
유치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나에게
국민학교에서 만난 첫 담임 선생님은 세상의 전부였다.
선생님은 눈이 부실 만큼 예뻤다.
그리고 늘 다정했다.
나는 그분을 좋아했다.
아마, 많이.
어느 날 아침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났다.
울음을 참고 학교에 갔지만
마음은 이미 엉망이었다.
교실에 도착했을 때는
수업이 시작된 뒤였다.
뒷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칠판 앞에서 글씨를 쓰고 있던 선생님이
뒤를 돌아보셨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참고 있던 울음이 터졌다.
나는 선생님이 물어봐 줄 거라고 생각했다.
왜 울어?
그 한마디만 들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를 한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쟤 왜 저렇게 울어? 미쳤나?”
순간
교실이 낯설어졌다.
몇몇 아이들이 나를 쳐다봤고
어떤 아이는 웃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로 걸어갔다.
눈물을 닦으면서도
이상하게 울음을 멈춰야 할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알았다.
선생님의 다정함은
교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반 아이들’을 향해 놓인 것이었을 뿐,
울음을 터뜨린 한 아이에게까지
닿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여덟 살의 나는
그날 처음 배웠다.
다정함에도
대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말에도
온도가 있다는 것을.
어떤 말은 사람을 안아 주지만
어떤 말은 어린 마음을
조용히 얼려버린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
먼저 묻게 된다.
“왜 울어?”
그리고 문득,
그날의 나에게 묻는다.
울고 있는 너에게
누군가는 다정할 거라고
말해 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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