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ok”라고 말하고 시작된 3주간의 지옥

숨 고르기

by 숨나

3주 전이었다.
카이로프랙틱 교정을 받고 몸이 한결 가벼워진 채 약국에 들렀다 나오는 길.
그날은 분명, 괜찮은 하루가 될 줄 알았다.
문을 나서던 순간 발이 꼬였다.
콰당— 생각보다 큰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사방에서 동시에 날아온 말.


“Are you ok?”


아픔보다 먼저 올라온 건 창피함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른 일어나 옷을 털며 말했다.


“I am ok. I am ok.”


“Are you sure?”


걱정스러운 얼굴의 여자와,
“Is she ok?”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어린 딸.
나는 그 친절을 뒤로한 채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그날의 황급한 퇴장이, 3주짜리 지옥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목디스크가 심해진 줄 알았다
다음 날부터 이상했다.
귀 옆 목덜미에서 어깨까지가 하나로 굳어버린 듯 뻣뻣했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팠고, 온몸이 긴장으로 울부짖는 느낌이었다.


‘또 목디스크가 심해졌나 보다.’


나는 이미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목 디스크가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넘어지면서 더 악화됐다고 믿는 건 자연스러운 추론이었다.
일주일 만에 다시 카이로프랙틱을 찾았다.
교정을 받고 나오면 잠시 숨이 트이는 듯했지만,
통증은 곧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은 뒷전이 된다.
매일 챙겨 먹던 우울증 약을 어느 순간부터 먹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먹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통증에 매몰되어 있었다.


며칠 후, 통증과는 별개로 또 다른 종류의 증상들이 밀려왔다.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팔을 조금만 움직여도,
심지어 발걸음을 한 발 내딛기만 해도
온몸을 휘감는 전기 자극.
찌릿찌릿.
뇌를 관통하는 듯한 불쾌한 감각.
그리고 핑 도는 어지럼증.


나는 확신했다.
‘디스크가 신경을 건드리고 있구나.’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건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묘하게 전기적인 느낌.


피지오세러피(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더니 목과 어깨가 상당히 뭉쳐 있고 목디스크가 신경을 누르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지럽고 전기 자극이 올 수 있다고.

치료를 받고 나니 뻣뻣했던 목이 그나마 풀린 듯 괜찮아졌다.

그런데도 어지럼증과 전기 자극은 여전했다.


어제 교통사고 상대측 법정전문의를 만나야 해서 기차를 탔다.

걸을 때마다 어지럽고 전기자극이 온몸을 감쌌다.

넘어지지 않으려 최대한 천천히 걷는데 기차가 떠나버렸다.

기다려주지 않는 기차가 야속했고, 내 신세가 괜히 처량하고 서글펐다.

볼일을 마치고 기차 타러 가는 길에 배낭을 멘 여행객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여러 나라의 국기 패치들이 붙어 있었다.

세계여행을 떠난다며 한국을 떠날 때 회사 친구들로부터 받은 내 배낭에도 한국, 호주, 일본, 중국, 필리핀, 영국 국기가 붙어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은 국기 패치를 붙이고 싶은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여행하려면 잘 걸어야 하는데 조금만 걸어도 어지럽고 휘청거리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앞으로 남은 날들에 대한 걱정을 넘어 마무리까지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다 알 게 된 '단식 존엄사'

이런 멋진 방법이 있다니...

책도 샀다.


언젠가 내 의지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된다면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며 조금 마음이 평온해졌다.

심지어 호주에서는 이를 돕는 의료 기관도 있다고 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음식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아무리 가족이나 의료진이라도 억지로 음식을 먹게 하는 건 불법이라고 한다.


그러다 오늘 문득, 아주 사소한 생각이 스쳤다.


‘우울증 약을 안 먹으면 어떻게 되지?’


급히 검색창에 입력했다.


“항우울제 중단 증후군”


그리고 화면에 뜬 증상들.
어지럼증
전기 자극 같은 감각
두통
불안감
몸살 같은 통증

극단적 선택 위험 증가


소름이 돋았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약을 꺼내 다시 복용했다.
그리고 한숨 잤다.
일어나자,
거짓말처럼 전기 신호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지럼증이 약간 가라앉았다.
3주 동안 나를 괴롭힌 것은 디스크의 악화가 아니라 몸이 보내는 신호였다.


“약이 필요해.”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살 것 같았다.


** 오늘의 뼈아픈 교훈


넘어졌을 때의 창피함은 3주간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마음의 균형을 붙잡아 주던 작은 알약 하나가 얼마나 무거운 존재였는지.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 꼭 말하고 싶다.


우울증 약은 절대, 임의로 끊지 마세요.
중단은 반드시 의사와 상의하세요.
몸의 균형만큼 마음의 균형도 같은 무게로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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