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하늘 아래 천천히 숨 고르며 기록하는 나의 일상과 여행 이야기
2006년, 여섯 해를 다닌 만화 출판사를 그만두던 날,
내 마음은 이미 세상 밖으로 나가 있었다.
‘세계여행을 해야겠다.’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의 첫 페이지를 새로 넘기게 했다.
필리핀에서 네 달 동안 영어를 배우고,
2007년, 서른 살의 나이에 호주로 향했다.
시드니 월드타워 셰어하우스에서 여덟 명이 함께 살며
낯선 언어와 냄비소리에 익숙해질 무렵,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함께 퀸즐랜드의 포도농장으로로 향하던 날,
20년 된 중고차를 몰고 끝없이 이어진 도로를 2박 3일 달렸다.
중간에 가스가 떨어져 견인을 부르기도 하고,
농장에 거의 다 왔을 때는 폭우가 쏟아져 차가 멈춰 섰다.
비 속에서 허둥대던 우리를, 농장에 살던 호주 커플이 함께 밀어주며 겨우 차를 끌고 들어갔다.
그때의 차가운 비와 따뜻한 손길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포도농장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 시절의 땀과 웃음이 내 인생의 한 장면이 되었다.
딸기밭과 캔버라의 겨울을 지내며
돈보다 값진 인연과 시간을 얻었고,
2009년 우리는 호주 영주권을 받았다.
그리고 2010년과 2012년, 두 아이를 품에 안으며
세계여행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맞았다.
하지만 캔버라의 겨울은 너무 길고 추웠다.
집에만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어느새 나는 하늘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2016년, 우리는 결심했다.
“따뜻한 곳으로 가자.”
그해 10월, 브리즈번으로 이사했고
햇살 아래에서 다시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차일드케어 공부를 마치고
패밀리 데이케어(가정 어린이집)를 열며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하루를 채워갔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가 세상을 멈춰 세웠다.
데이케어의 문을 닫고,
세상과의 거리를 두는 동안
나는 온라인으로 한국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며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2024년,
예기치 못한 두 번의 교통사고가
모든 걸 다시 정지시켰다.
목과 허리, 어깨의 통증.
끝나지 않는 두통과 신경통.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의 우울함까지.
하지만 여전히 나는
‘다시’라는 단어를 놓지 않았다.
언젠가 이 고통도
내 이야기를 완성하는 한 문장이 될 거라 믿으면서.
**이 매거진은 나의 ‘다시’의 기록이다.**
호주의 일상, 여행, 건강, 반려견, 그리고 삶의 조각들.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회복해 가는 나의 이야기.
지금, 브리즈번의 하늘 아래에서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다.
구름이 조금 드리워져도 괜찮다.
이 하늘은 여전히, 끝내 푸르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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