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가고 싶은 펄잼 '소년미'

Pearl Jam - Corduroy

by Knson Ryu

커버이미지 ⓒ Unsplash의 Brooke Balentine


펄잼(Pearl Jam)을 좋아하시는 이들에게는 아마도(?) 많이 알려진 이야기. 프런트맨(Frontman) 에디 베더(Eddie Vedder)가 단돈 12달러에 구입하여 입었던 코듀로이 재킷을 본뜬 재킷이 650달러 정도에 팔리는 걸 보고 dl에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가 지금도 수많은 공연에서 플레이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코듀로이(Corduroy)>라는 곡이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밴드를 알게 된 것은 2011년 푸파이터즈(Foo Fighters)의 앨범 <Waisting Light>를 듣고 그런지록(Grunge Rock)이라는 장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조금씩 검색하고 찾아 듣다가 펄잼이라는 이름을 만나게 되었다. 한동안 데뷔 앨범 <텐(Ten)>을 귀에 박아놓고 살았는데, 한참이 지나 ‘다른 앨범은 뭐 있지?’ 궁금하여 찾아보다 이 노래를 알게 되었다. 대략 2013년 무렵의 일인 듯하다.


b7b2453de1b5f45f3852abd73ac86867.899x899x1.png 펄잼의 코듀로이가 실린 스튜디오 앨범 <바이탈로지(Vitalogy, 1994)>


오래도록 내 플레이리스트에 한자리 잡고 있는 노래들이 그렇듯 <코듀로이> 역시 처음 들을 때부터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미약한 영어 실력이지만 도입부에 이어지는 “I don’t want to take what you can give(네가 줄 수 있는 것 나는 원하지 않아), I would rather starve than eat your bread(너의 빵을 먹느니 굶고 말겠어), I would rather run but I can’t walk~(걸을 수는 없지만 차라리 뛰고 말지)” 정도를 알아듣고 밴드가 역시 나와 같은 ‘반항종자’ 임을 알아보고서 내적 동질감을 나 홀로 쌓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게 이 노래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면 “응 됐고 상업성 뻐큐 머겅!” 정도라 하겠다. 데뷔 후 큰 성공은 바랐던 것보다 더 큰 유명세를 가져다주었는데 약관을 지난 청년에게는 요즘 말로 ‘선을 넘는’ 수준으로 ‘우리가 이만큼 해줄 테니 너도 그만큼 해줘’라고 지배하듯 요구하는 세상에 영혼까지 싹 털리는 느낌이었을 테다. 이에 거부감을 느끼고 자본주의와 사회가 선사하는 달콤한 보상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 이 노래란 말이다.


에디가 겪었던 괴로움에 비하자면 보잘것없겠지만, 당시 조무래기 패션 에디터로서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괴로워하던 내게 모종의 후련함을 가져다주던 노래였다. 힘찬 기타와 심장이 웅장해지는 베이스와 드럼, 그리고 울부짖는 에디의 목소리는 위안이 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뭔가 신나게 내지르는 느낌이니까 가사를 다 못 알아들어도 좋았다. 그래서 사소한 일로 털리고 나서 기분 풀고 이를 악물 때 아이팟에서 이 노래를 찾아들었던 기억들이 눈에 선하다. (물론 지금은 그런 날들마저 그립다만…)


지극히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유튜브에서 펄잼의 공연 영상을 보면서 참 나이를 안 먹는 밴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실제론 아니지. 날이 갈수록 에디 얼굴에 주름이 더 깊어지는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호응을 유도하고 무대 위에서 점프를 하며 신나게 노래하는 그와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 ‘소년미’라는 것이 느껴진다. 마음의 울림에 충실하고 패기롭게 덤벼드는 그런 소년미.


멤버 중 드러머 매트 캐머론(Matt Cameron)이 얼마 전 가족에게 충실하기 위해 펄잼의 투어 일정에서 빠지기로 결정했다는 선언을 하긴 했지만, 다섯 멤버 모두 오래오래 즐거운 음악생활 계속 이어나가길 바란다.


나도 펄잼의 소년미를 따라가야겠다. 비록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마인드로 살다 가겠다는 의지만큼은 지켜야지.


그나저나 브런치 맞춤법 검사 기능 너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