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 알 수 없는 인생
커버 이미지는 Unsplash의Pedro Mealha
기억하기로는 아내가 임신하고 있을 때였다. 이문동에 살던 시절, 성수동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신설동역에서 환승을 하던 중이었다. 바쁜 걸음을 성실하게 옮겨 이제 막 2호선 플랫폼에 다다랐을 무렵 무작위로 플레이리스트 속 노래를 듣는데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2006)>이 흘러나왔다.
지나간 일이라 그런지 지금이야 ‘왜 그토록 힘겨워했을까?’ 생각하지만(지금이 더 힘들어서…) 당시 내가 지고 있던 마음의 무게는 지금껏 경험했던 그 어떤 어려움의 무게보다 컸다. 아내의 뱃속에는 쌍둥이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그런 까닭인지 전에 없이 불안해하던 아내는 가정에 더 충실해주길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고, 회사에서는 예의 하얗게 불태우던 퍼포먼스를 기대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어려워하는 나를 확인하고선 탄탄했던 끈을 슬며시 내리기 시작했다.
곧 큰일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느껴본 적 있는지? 말 그대로 조만간 틀림없이 큰일이 있을 것 같은데 오늘도 일어나지 않고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기분만 들고,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고,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는 나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스스로 무척 답답해했었다.
이런 것이 사면초가인가 싶었던 그 시절. 다른 예비 아빠들은 곧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행복하다고 하던데 나는 매일 하는 생각이 우울한 것들이었고, 매일 일기에 적어 내려 가는 소회라는 것들이 울적했다. 다만 그날만큼은 힘을 내 이겨보자고,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마음먹고 이를 악물고 밖으로 나와 일하러 가던 중이었는데, 그러던 중에 마치 ‘나는 다 알고 있어,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하는 듯한 이문세 아저씨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내 귀로 흘러 들어온 것이었다.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내가 느끼기론 중간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눈물이 핑 돌았고, 왈칵 흐르고 말았다.
나이를 사십씩이나 먹고(사실은 좀 더 먹고) 사람들 많은 이곳에서 이럴 일이란 말인가. 그 와중에도 창피함을 느꼈던 나는 사람이 가장 없는 2번 칸 쪽으로 가서 그곳 벤치에 앉았다. 이미 노래는 끝이 났고, 지나는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는 것만 같기도 하고, 그래서 열차 하나가 떠날 때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이 한마디가 그렇게 정곡을 파고들었다. 전에도 알고 있던 노래였는데, 어딘가 요란했던 드라마가 먼저 생각나 그저 그런 노랜가 보다 했던 것이 십 수년이 지나서 제대로, 아주 제대로 들렸다. 잘난 맛으로 여태 살아왔는데 세상 앞에 나는 한없이 보잘것없는 존재였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대로 해놓은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것 같았는데... 그런 내가 절규하는 듯했다.
차라리 후련했던 것이다. 답답해도 한 마디 내놓지 못하다가 내가 아닌 누군가 대신 내뱉은 말인데 그게 그렇게 고마웠던 것 같다. 어디 가서 할 말 꼭 하고야 마는 성질이었는데, 어느덧 나이를 먹으며 내가 이렇게 됐구나.
키는 190이 다 되고, 겉보기엔 좀 신경질적이며, 세상 무관심한 사람처럼 보이는 아저씨를 울려버린 이 노래는 윤일상 님이 작곡하고 김영아 님이 작사하여 2006년 방영된 드라마 <발칙한 여자들> OST에 수록되었다.
작곡가 윤일상 님에 대해선 워낙 잘 알려진 작곡가인 데다 방송활동도 많이 하시고 최근엔 유튜브로도 모습을 많이 보이시는 것 같아 더 이야기할 것은 없을 것 같다. 작사를 하신 김영아 님은 생각보다(?) 대단한(!) 분인데 일단 1996년 <미키의 전쟁>이라는 댄스곡으로 데뷔한 가수 출신이시며 보아의 <No.1>, 젝스키스의 <폼생폼사>, 브라운아이즈의 <그녀가 나를 보네> 같은 노래의 노랫말을 쓰셨던 분.
언뜻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 행보가 오락가락인 듯한데 리드미컬한 음악에 의외성이라 할 수 있는 울적한 가사를 붙이길 즐겨하신 듯하다. 그리고 일상적인 언어를 구사해 주신 덕분에 처음 들어도 어려운 부분 하나 없이 부드럽게 스며들어서 마음을 꼬옥 쥐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