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서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가케인 May 08. 2023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질 때] 북리뷰

By 페마 초드론

    우리 인간은 인생을 살면서 종종 이 세상이 무너질 듯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이합니다. 이러한 고통을 어떤 이는 슬기롭게 이겨내는 반면 이겨내지 못하고 더 없는 정신적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사실은 인생에 있어서 이러한 고통은 우리를 성장시킨 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닌 그 고통을 대면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고통은 어쩔 수 없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고통이 우리의 삶을 가로막을 때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그 고통을 마주해야 하는지 얘기해 줍니다. 대부분의 저자의 가르침이 불교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나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종교와 관계없이 큰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기 전에 책에 나와있는 저자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페마 초드론 (Pema Chodron)


    1936년 뉴욕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UCLA에서 영문학과 초등교육학을 공부하했다. 이혼 후 티베트 불교의 큰 스승 초감 트롱파의 메시지를 접하고 그의 수제자가 됐다. 현재 서구인들을 위해 최초로 설립된 티베트 불교 사원인 감포 사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페마 초드론은 출가 후 티베트 불교게의 대표적인 여성 승려이자 금강승 수행을 완성한 최조의 미국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불교와 명상의 지혜를 편안하고 현실감 있게 전달해 '마음 전문가'로 명성이 높습니다. 그녀는 현재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는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책의 본문을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자는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꿈을 꾸고 있으며 이러한 꿈에서 깨어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깨어남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의 깨어남>

    
   부처는 ‘세 가지 깨어남’에 대해 가르쳤다. 하나는 잠을 자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죽음을 맞이하여 삶에서 깨어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우리가 뜬 눈으로 꾸는 꿈인 ‘미망’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을 때 마치 오랜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경험을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친구의 악몽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정녕 꿈이라면, 무서워하는 것에서 도망치기보다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물론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깨어남은 당연히 세 번째 깨어남일 것입니다. 여기서 '미망'이란 사전적 의미로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또는 그러한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는 모두 이 미망 속에 살고 있으며 여기서 깨어나야 지만 영원한 고통과 기쁨도 없는 평온한 상태 즉 불교에서의 열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우리의 삶이 꿈에 지나지 않는다면 고통이나 두려움을 무서워하여 도망치기보다는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게 낫다고 하였습니다. 이 러한 저자의 생각은 실존주의의 대표 문학가인 알베르트 카뮈의 '반항'과도 유사한 의미라고 생각이 듭니다. 카뮈는 우리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 없는 허무함의 연속이고 이러한 허무함 속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반항'이라고 하였습니다.


<희망과 두려움>


    희망과 두려움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언제나 TV 채널을 바꿔야 하고, 온도를 바꿔야 하며, 음악도 바꿔야 한다. 뭔가 끊임없이 불편하거나 불안하고, 어딘가 아파오고 또 그 대처법을 끊임없이 찾는다. 그러나 무신록적인 마음에서는 희망을 포기하는 자세가 긍정이며,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 이제 문에 "나는 날마다 좋아지고, 좋아진다"는 낡은 열망대신 "희망을 포기하라"는 문구를 붙여보자.


    우리는 때때로 긍정적이 되라는 폭력에 시달리곤 합니다. 힘들어 보이는 주변인에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힘내~!",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라고 조언을 해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오히려 언어폭력으로 다가울 수 있습니다. 이건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울한 자신을 발견할 때면 긍정적이 되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고 수많은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보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들은 우울한 우리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이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됩니다. 절대로 우리는 노력하면서 까지 우울함을 벗을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자신에게 닥친 고통과 좌절을 충분히 느껴야 합니다. 방금 전에도 언급하였듯이 우리의 인생은 어차피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과 좌절도 그리고 희망조차도 인생을 멀리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실패하였다고 슬퍼할 필요도 성공하였다고 기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어차피 실패와 성공은 우리의 삶의 의미를 찾아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의미 없는 삶에 대한 '반항'일 뿐입니다. 기쁨이 찾아오건 슬픔이 찾아오건 반항하시길 바랍니다. 오로지 반항만이 우리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를 실현시켜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유의지만이 실체가 있는 사실일 뿐입니다. 우리의 삶에 반항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고통을 알아차려라>


    고통이 일어날 때도 무상처럼 그저 고통으로 알아차리면 된다.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 원치 않는 일을 감당할 때, 몸이 여기저기 아플 때, 나이가 들 때 죽어갈 때 우리는 누구나 고통스럽다. 그것을 그저 고통으로 인식하라. 그때 스스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마음을 챙기며, 알아차려라. 무아도 마찬가지이다. 무아를 그저 무아라고 알아차리면 된다. 무아는 시각, 후각, 청각의 명료한 인식이며, 자신을 좁고 답답한 자아에 속박시키지 않고, 다양한 감정이나 생각을 향해 조연하게 여는 순간이다. 삶에서 빈 공간을 봤을 때, 내면의 재잘거림 사이에 드문드문 지나가는 공백이 있을 때, 우리는 불현듯 그것을 무아로 인식한다. 이런 경험을 위해 뭔가 대단한 사건을 벌일 필요도 없다. 무아는 늘 새로움과 열려 있음으로 존재하며, 우리가 오감을 통해 감각하는 환희로 존재한다.


    알아차림은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매우 친숙한 개념일 것입니다. 저자는 알아차림이란 우리의 고통을 억제하려 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우리 자신으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알아차림이 앞서 말한 반항과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이 책에서는 정확히 서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저자는 알아차림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정화되고 이 정화된 마음이 우리를 무아로 다가가게 하는 열쇠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무아로 점점 다가간다면 드디어 자유의지에 의한 진정한 반항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과정 없이 우리가 반항을 한다면 그 반항이 진정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발생되어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에 길들여진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 고통을 적대시하고 공격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공격성을 버리고 행동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일 것이라고 또한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의 견해가 그저 견해임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이든 타인이든 누군가를 억누르는 것이 아닌 그저 자기가 하는 생각과 말, 행위를 잘 알아차리도록 스스로 돕고 격려하면 됩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책을 통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고통의 알아차림에 대해 매우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삻에서 힘이 들 때면 저 자신을 이 고통스러운 상황과 느낌에서 한 걸음 멀리 떨어져 바라보려고 한 적이 많았고 이 방법은 상당한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늪과 같습니다. 우리가 빠져나오려고 하면 더욱더 우리를 자신의 몸속으로 흡수시켜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 우리는 고통과 한 몸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늪에 빠진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지금 늪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최대한 늪에 내 육체를 맡기고 주위의 나뭇가지를 찾아보는 것일 겁니다. 그 뒤에 나뭇가지를 찾는 다면 여지없이 내 몸을 끌어당겨 '반항'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고통 없는 삶은 없습니다. 다만, 그 고통이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어떤 쪽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