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훔친 13살, '오야지'가 되어 돌아오다

누나에게 팔려 간 매매혼, 그리고 1년 만의 파경

by 새벽

나의 아버지는 1958년 개띠.
그의 인생은 시작부터 비범했다.

국민학교를 갓 졸업한 13살. 아버지는 집안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소 한 마리를 몰래 끌고 집을 나갔다. 가출이었다.

그 깡마른 소년이 소를 판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그 길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치열한 생존 게임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진 거라곤 초졸 학력과 깡 하나뿐이었다.

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중국집 철가방을 들고 서울 골목을 누볐고, 밤무대 웨이터로 쟁반을 날랐다. 그러다 흘러들어 간 곳이 거친 건설 현장, '노가다 판'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기지가 빛을 발했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 현장에는 알 수 없는 숫자와 기호가 빼곡한 커다란 종이 도면들이 굴러다녔다. 초졸 학력이었지만, 아버지는 그 복잡한 도면을 그림 보듯 읽어냈다.

어깨너머로 배운 눈썰미 하나로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일명 '오야지(작업반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 기세로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젊음을 팔아 외화를 벌었다. 목적은 하나였다. 고향에 있는 홀어머니.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 병원비가 필요하다."

누나들의 연락을 받을 때마다 아버지는 피같이 번 돈을 몽땅 고향으로 부쳤다.

몇 년 뒤, 귀국했을 때 아버지의 수중에 남은 건 없었다.

어머니 병원비로 다 썼다는 누나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으니까.

빈털터리가 된 노총각 동생.

큰누나(큰고모)는 서둘러 중매를 주선했다. 상대는 꽤 잘 산다는 집안의 딸이었다.

"참한 처자다. 집안도 넉넉해서 굶길 일은 없을 거다."

아버지는 누나의 재촉에 떠밀려 몇 번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식을 올렸다.

하지만 그 결혼은 '매매혼'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친가는 가난했고, 외가는 제법 살 만했다. 그런데 왜 잘 사는 집 딸이 가난한 집 노총각에게 시집을 왔을까. 비밀은 '쌀 가마니'에 있었다.

큰고모는 알고 있었다. 나의 엄마가 조금 남다르다는 것을.

엄마는 지적 능력이 부족한, 순진하고 셈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외가에서는 나이 찬 장애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지참금(쌀과 돈)을 쥐어 보냈고, 큰고모는 그 대가를 챙긴 뒤 자기 동생을 '하자 있는 며느리'의 남편으로 팔아넘긴 것이다.

신혼의 단꿈은 처참하게 깨졌다.

아버지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엄마는 어린아이 같았다.

천기저귀를 갈아 채우는 법도 몰라 쩔쩔매거나, 대소변이 묻은 더러운 기저귀를 방구석 아무 데나 던져두기 일쑤였다. 집 안에는 늘 지린내가 배어 있었고,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그 꼴을 볼 때마다 이성이 끊어졌다.

"내가 이러려고 뼈 빠지게 돈 벌어왔나!"

속았다는 억울함, 더러운 집안꼴,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

그 배신감은 갈 곳을 잃고 분노가 되었고, 결국 그 화살은 엄마를 향한 손찌검으로 변했다.

그런 지옥 같은 시간이 1년쯤 흘렀을까.

내가 태어나고 갓 돌이 지날 무렵, 결국 사달이 났다.

딸이 사위에게 개처럼 맞고 사는 꼴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외할아버지가 우리 집으로 들이닥쳤다.

"내 딸, 내가 데려가겠네."

그 길로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데리고 떠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덩그러니 남겨진 핏덩이인 나, 그리고 분노만 남은 아버지.

엄마 없는 하늘 아래, 기구한 나의 유년 시절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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