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동화
비비와 나나는 아주 친한 친구랍니다. 하지만 어느 날 비비와 나나는 학교에서 말다툼을 하게 되었어요. 그럴 수 있죠. 친한 사이여도 의견이 다르면 싸울 수 있어요. 그런데 그날은 싸움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정말 이상한 날이었어요.
그날 나나는 비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비비가 제일 아끼는 작은 색연필을 딱 한번 사용했어요. 자리로 돌아온 비비는 나나가 작은 색연필을 사용한 것을 몰랐고, 나나는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미미가 비비에게 그 사실을 얘기한 거예요. 게다가 미미는 나나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면서 남의 물건을 허락 없이 쓰는 건 아주 나쁘다고 말했어요.
비비는 화가 났어요. 잠깐만요, 이때 비비는 정확히 누구에게 화가 난 건지 잠시 헷갈렸어요. 하지만 곧 나나에게 다가가 딱딱한 목소리로 따지기 시작했어요.
"나나야, 네가 내 색연필을 사용했니?"
나나는 솔직히 비비의 색연필을 아주 조금 사용했어요. 그냥 밑줄을 한 번 그은 정도였어요. 그래서 나중에 비비에게 얘기해야지 생각하고는 그냥 잊어버린 거예요. 꼭 말을 해야 하는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왜냐하면 비비도 나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는 일이 많았거든요. 이를테면 나나의 엄마가 만들어준 과자를 학교에 가져오면 비비는 나나의 간식가방에서 제 것처럼 꺼내 먹었어요. 그래도 나나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어요. 엄마가 비비랑 나눠먹으라고 싸주신 간식이었으니까요.
"응, 내가 한번 썼어. 왜?"
헐, 왜냐고? 비비는 화가 조금 더 났어요.
"나한테 물어보고 써야지. 나나야. 안 그럼 나 없을 때 썼다고 말을 하던가. 그 물건의 주인은 나고, 그 물건은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선물로 주신 거야. 나에게는 아주 소중하다는 거 나나 너는 잘 알잖아. 그렇다면 너도 소중하게 생각해 줘야지. 너는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
조금 전까지 나나는 비비에게 먼저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었지만, 비비가 저렇게 따지고 드는 것을 보니 나나도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래 난 다 알지. 친구니까. 그런데 말이야. 친구니까 소중한 것도 나눌 수 있는 거 아니야? 너는 내 간식도 함께 나눠먹고, 저번에는 예쁜 머리핀도 나는 비비 너에게 나눠줬잖아. 그리고 일부러 말을 안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잊어버린 거야. 내가 먼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비 네가 이까짓 일로 이렇게 화를 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비비는 또 한 번 어이가 없었어요. 미미도 비비의 편에 서서 나나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 먼저 사과를 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은 나나가 원래부터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무례한 아이라서 그렇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화가 나서 붉어진 비비의 얼굴을 보고서도 나나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수업을 마치고서도 비비와 나나는 평소처럼 웃으며 함께 집으로 돌아갈 기분이 아니었어요. 결국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따로따로 각자의 집을 향해 갔어요.
집으로 돌아간 비비와 나나는 부모에게 서로의 입장만을 이야기했어요. 나나도 비비도 확실하게 자기 손을 들어주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싶었거든요. 누구든 안 그러겠어요? 비비의 부모들은 당연하게도 비비의 편을 들었고, 나나의 부모들은 당연히 나나의 편을 들었지요. 비비와 나나네 가족은 서로 멀지 않은 이웃에 살면서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지만, 일이 그렇게 되자 성격이 급한 비비의 엄마가 먼저 나나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래도 나나의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주장했어요. 그러자 나나의 엄마가 시비를 가릴 일말의 가치도 없는 일을 터무니없이 크게 만든다면서 똑같은 색연필 백 개라도 살 돈을 보낼 테니 사과는 비비가 하라고 받아쳤죠. 비비의 엄마는 비비네 가족을 거지취급 하는 거냐며 크게 화를 내었어요. 그러자 옆에서 저녁에 먹을 수프를 저으며 듣고 있던 비비의 아빠가 외마디 욕지기를 하더니 앞치마를 한 채 주걱을 들고 나나의 집 앞으로 쿵쾅쿵쾅 쫓아나갔어요. 미친 사람처럼 집 앞으로 달려오는 비비의 아빠를 보고 놀란 나나의 엄마는 경찰을 불렀고, 나나의 아빠는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튼튼한 골프채를 들고나가 소리를 지르며 비비의 아빠와 맞섰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맹비난하며 주걱과 골프채를 휘둘렀지만 비비나 나나의 사과에 대해서가 아니라 평소 서로에게 못마땅했던 것들을 유치하게 쏟아내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이웃들이 보고 듣고 있었죠.
비비와 나나의 부모들은 경찰서로 가서 서로 고소 고발을 남발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때 동네에선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던 이웃들이 거리로 나와 자신들이 본 것과 들은 것을 공유하며 떠들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다들 차분하게 설명을 하며 재미나게 이야기를 맞춰갔어요. 그러다 차츰 비비네 가족과 친한 이웃들이 비비네 편을 들기 시작했고, 나나네 가족과 친한 이웃들은 나나네 편을 들었어요. 어떤 식으로 말해도 결국엔 두 편으로 나뉘었고, 서로 다른 편을 향해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거친 말로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어요.
이게 좀 우습게 된 건 거친 말들이 오갈수록 비비네와 나나네의 일을 떠나 평소 쌓였던 아주 개인적인 갈등을 들먹이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어느 집 마당에 누구네 개가 매일 똥을 싸지른다거나, 누구네 화단에 핀 꽃들을 어느 집 여자가 자꾸 뽑아간다거나, 집 앞에 세워둔 차에 옆집개가 자꾸 오줌을 누어 지린내가 가시지 않는다고 하는 불평도 있었고, 파티를 하도 많이 열어서 바비큐 연기와 음악소음 때문에 죽을 것 같다며 옆집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누군가 사탕을 빼먹은 포장지가 길에 너무 많이 버려진다고 불평하자 젊은 이들은 주머니에 항상 사탕을 넣고 다니는 노인들을 탓했고, 이에 화가 난 노인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무책임한 젊은 부모들을 향해 그치지 않는 욕설을 날렸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누군가는 피캣을 들고 나왔고, 누군가는 확성기를 가지고 나왔어요. 마치 크리스마스가 다가온 것처럼 촛불과 랜턴으로 마을의 여기저기가 훤하게 밝혀지고 있었죠.
다들 알겠지만 사실은 편을 가를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그렇게 화를 낼 만한 상황은 아니었잖아요? 그런데도 비난이 빗발치고 성토가 이어지다 보니 비비네 집 앞과 나나네 집 마당에는 어느새 커다란 텐트가 여럿 들어섰고 그 앞에서는 서로 다른 진영에서 몰려나온 철부지들이 휴지나 음료컵 혹은 구겨진 종이쓰레기 같은 것들을 마구마구 던지고 있었어요. 서로 지지 않으려고 이웃이 친한 이웃을 부르고, 그들이 좀 더 먼 거리의 친척들을 부르고, 친척들이 그들의 이웃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경찰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큰 싸움이 되어버렸어요. 그 상태로 며칠이 지나자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군대를 부르게 되었어요. 무서운 총을 지닌 군인들과 탱크가 텐트 앞으로 나서자 사람들은 겁을 내며 겨우 진정하게 되었어요. 군인들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집으로 돌려보내는 동안 비비네 가족과 나나네 가족은 거의 집안에만 갇혀있었어요. 여전히 서로를 원망하면서요.
군인들이 돌아가자마자 숨어서 이를 취재하던 방송국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어요. 비비네 가족과 나나네 가족의 이야기를 토크쇼에서 다루고 싶어 했지요. 두 가족은 흔쾌히 승낙했어요. 비비와 나나는 토크쇼에 나간다는 사실에 흥분했고,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들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싶었거든요. 토크쇼에 나간 두 가족은 그간의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방송국에서는 양쪽의 입장을 공평하게 존중한다면서 각 가족들의 입장을 따로따로 인터뷰했어요. 그리고 시청자들을 향해 그들의 입장이 정확하게 다르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했어요. 두 가족이 함께 앉아 긍정적인 논쟁을 하거나 입장차를 줄이기 위해 양보하는 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막았어요. 그리고 방송을 통해 전 국민 투표를 진행했어요.
처음엔 비비와 나나 중 누가 옳은가에 대해서만 그 이름을 써서 문자로 보내달라고 했어요. 방송은 대박이 났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투표율이 엄청났거든요. 곧이어 방송국은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최대한 짧게 여러 편으로 나누어 편집하고 사이사이마다 광고를 넣어 붙이는 한편 다른 여러 주민들의 이야기를 곁가지로 들려주면서 투표를 더 많이 하도록 유도했어요.
방송국의 유료광고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방송국은 오직 어떻게 하면 두 가족을 더 멀어지게 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까에 대해서만 골몰했어요. 게다가 투표의 결과가 비비네 가족과 나나네 가족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거의 매번 반반이다 보니 재투표에 재투표를 거듭하는 상황도 나타나게 되었어요. 거기에는 군인들이 애써 집으로 돌려보낸 이웃과 이웃의 이웃과 이웃의 친척들과 이웃의 친척들의 이웃들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방송뿐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도 전해지며 온 나라 사람들이 비비네와 나나네로 갈라서고 있었어요.
군인들을 투입해도 바로잡지 못할 국가가 반반으로 나눠지는 불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대통령은 서둘러 담화를 발표하게 되었어요. 지금의 상황은 누가 옳은지 무의미할 만큼 사소한 사건에서 출발하므로 국민 여러분은 이 사건의 시비를 가리는 일에 관여하지 마시고 일상으로 돌아가 평화를 되찾으시길 바라며, 아울러 이 사건을 제작하여 송출한 방송국은 명백한 제재를 통해 국가의 혼란 상황을 야기한 데에 대한 대가를 엄중하게 치를 것입니다 어쩌고 저쩌고. 말이죠. 하지만 대통령 담화가 발표되자마자 대통령의 반대편 정당에서 들고 일어섰어요. 방송의 자유, 개인의 자유, 국민의 권리 등등 대통령이 막고 억압하는 게 아주 많다는 거예요. 당황한 대통령은 더 자주 TV에 나와 해명하고 해명에 대한 해명도 하고 사과도 해야 했어요. 하지만 반대 정당은 물러서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당과 반대 정당이 크게 대립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들은 더 이상 비비와 나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들의 정당 존립에 대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어요. 방송국은 더 이상 비비와 나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정당의 대립각을 조명하며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있었어요. 방송국은 광고를 이용해 돈만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당을 국민의 편이라고 할 것인가를 규정할 수도 있는 막강한 힘도 가지게 되었어요. 사람들도 더 이상 비비와 나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정치가 혼란스러워지자 너도나도 마트로 달려가 이것저것 사다 놓느라 정신없이 바빴으니까요. 학교에서도 더 이상 비비와 나나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어요.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거든요.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외교적으로 연합한 국가들에게서 서둘러 연락이 왔어요. 문제가 된 비비와 나나에 대한 시비를 가리고 국가를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있게 통제해 주겠다고요. 그들 중 두 나라가 먼저 자신들의 강력한 개입의지와 지지입장을 밝혔어요. 결국 비비 편을 드는 나라와 나나 편을 드는 국가 간의 전쟁이 시작됐어요. 이제 지구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거예요.
비비와 나나는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해요. 너무 위험해졌거든요. 비비는 그때 미미의 속삭임을 듣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나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어요. 비비는 그때 엄마에게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어요. 나나는 방송에 나가 실컷 떠들었던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비비와 나나는 부서진 창가에 서서 망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어요.
"분명 다른 길이 있었을 거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