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관한 고집스런 믿음에 대해

신이 죽었다는 굳은 신앙을 가지는 사람에게

by 요크셔티


모든 무신론의 근본적 맹점은 그 세계관에 대한 고집스런 집착에 있다.




#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안 믿거나, 잘못 이해해서 않는다.


1. 신은 인간의 눈으로 제대로 관찰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당연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불신의 이유가 될 수 없다.

2. 잘못 이해하는 경우. 그럴듯한 설명들을 내놓고 믿을 수 없다 한다. 논거들이 때론 매우 옳아 보인다. 아니 사실은 정말로 옳다. 그러나 인간 차원에서만 그렇다. 납득 가능한가의 여부는 물론 중요하지만 진리의 작동과는 무관하다.




# '그 어떤' 과학적 설명도 신이 죽었다는 진술을 증명할 수 없다. 신의 모든 활동을 과학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신의 부재를 설명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단지 그 작동을 인간의 범위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될 뿐이다. 신이 행한 행동, 기적, 현상 등이 과학으로 대체 가능한 만큼, 모든 과학적 현상이라 불리는 것들-우주의 모든 것. 우주 밖의 무엇까지도 포함해-은 신의 존재를 상정함으로써 설명 가능하다.


이 둘은 다른 차원의 체계이다. 과학적 차원에서는 '신'이 근본적으로 반증될 수 없다. 두 관점 모두 개별의 독단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과학이 유신론에 우위나 우월을 내보일 수는 없다. 더 높은 차원에서 기능하는 유신론적 입장에서 뻗는 포용만이 가능하다. 다만 이 차원의 문제는 무엇이 거짓인가 진리 인가 와는 별개로 기능한다.


단순히 이성의 작동으로는 신의 존재는커녕 신앙인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다만 미련한 시도로 남을 뿐이겠다.




# 다음으로 어떤 근거로 신을 믿을 수 있나 하는 문제이다. 인간이 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인정하더라도 허공에 무턱 믿음의 고백을 내던질 수는 없다. 신에 대한 이해의 불능과 신이 존재함의 확신은 다른 개념이다. 즉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신은 우리의 의사와 무관히 정말 존재하는가? 어떻게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나?


인간의 망상과 신의 개입을 구별하기 불가능한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종교적 믿음이 인간의 집단적 광기로 흔히 이해되는 현 사회에서는 이 지점이 신앙인을 더욱 혼란스럽게 함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극복 불가능하다.


인간과 신 사이의 간극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신에 대한 믿음은 전적으로 신으로부터 주어져야 함을 알게 된다. 진정한 신앙은 언제나 인간적 세계(관)로부터의 탈피가 선행되어야 성립된다.


신앙이란 언제나 개인의 차원으로 귀결된다. 그 누구도 대신 증명해 줄 길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믿음만이 근거일 텐데 그마저도 불확실하다. 신앙은 너 안에도 내 안에도 우리 안에도 완전히 소유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주어지는 방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이론도 당신의 믿음을 파할 수 없고 확증할 수도 없다.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만 그 모두의 동의를 요하지는 않습니다.

진리의 배타성은 그 자체로 비판받을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진리는 다만 진리로써 존재할 뿐입니다.

진리는 꼭 인간에게 유익하지 않아도 되고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됨은 물론입니다.


진리가 왜 그렇게 생겼나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요? 당신은 설명은 요구할지 몰라도 진리는 답하지 않을 겁니다. 질문이 완전히 잘못됐나 봅니다. 우리는 그저 진리로부터 파생된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부산물이 주체가 되어하는 생각은 거의 대부분 틀립니다. 애초에 관점이 심히 왜곡되었기 때문이죠. 다만 진리의 관점으로 본다면 다시 명확해집니다. 핵심은 관점입니다. 질문의 시작점이 잘못 됐던 것입니다. 그 시작점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질문은 매한가지 무의미합니다. 진리에 관해서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가끔 진리의 과점에서 살아가는 부산물들이 있는데, 부산물의 세계에서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미치광이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르게 자신과 세계를 바라봅니다.




In God I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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