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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Doe Sep 09. 2022

은어 없는 은어 식도락 여행이라니

경상북도 봉화, 영주

토요일 오전에 나는 잼을 만들고 있었다. 말린 딱총나무꽃과 포도를 졸인 잼이었다. 주방 작은 창으로 드는 바람이 서늘했다. 썩 달큰한 여름 끝자락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어떤 리포터가 은어 축제를 취재하고 있었다. 봉화에서 열린 축제였다. 수박 향이 나는 물고기라고 했다. 비리고 수박 향이 난다니! 그걸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다음 날 끝났다. 대신 동생의 휴가에 맞춰 내려갔다. 내 생일이 있는 주였다.


1박 2일짜리 단출한 일정이었다. 그런데 그리 녹록하지가 않았다. 길은 항상 어렵다. 고속도로를 놓치면 뜻밖에 서울을 종단할 수도 있다. 간신히 들른 휴게소가 벌들의 사랑방일 수도 있다. 그들이 내 소시지에 눈독 들일 수도 있다. 너덜너덜한 소시지에서 톡 쏘는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아마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동생이 빌린 하얀색 캐스퍼 조수석에 앉아 버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 여행은 대부분 터미널에서부터였다. 그건 기다리는 시간들을 의미한다. 어릴 때는 그게 좋았다. 설렘이 세월에 삭기 전까지 그랬다. 한동안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부아가 치밀어 발을 동동 구르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기다리는 동안 그냥 그립다.


봉화에서의 일정은 우여곡절이었다. 도착하기만 하면 쉽사리 은어를 맛볼 줄 알았다. 얼개는 있었지만 실상 무계획이었다. P(MBTI)의 여행은 잘 풀리면 한없이 좋다. 잘 풀리면.


우리는 은어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첫 번째 장소는 양어장이었다. 식사가 되는 곳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서슬 퍼렇게 짖어대던 삽살개들만 기억난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 번째 식당은 30분 거리에 있었다. 다행히 진짜 식당이었다. 브레이크 타임이라 들어갈 수 없었을 뿐이다. 헤매는 길, 눈에 담은 봉화는 조용하고 고즈넉해 보였다.



고민 끝에 결국 수목원 먼저 들렀다. 인근에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이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했다. 대공원처럼 그럴듯한 매표소와 트램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내내 호랑이가 있으니 꼭 보고 가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안 될 건 없지.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산길을 따라 호랑이를 보러 갔다. 걔네들은 얇은 철창 너머에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썩 긴장감 넘치는 경험이었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조금 지쳐 있었다. 나는 전날 밤을 새운 탓에 차에서도 졸면서 왔다. 동생 역시 6시간 넘게 운전한 탓에 녹초였을 것이다. 그래서 은어가 안 된다는 말을 듣고도 돌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송어 회와 튀김을 먹었다.


송어회와 송어튀김, 특히 튀김이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숙소는 한옥이었다. 체크인할 때는 이미 어두웠다. 여덟 시쯤 잠들었던 것 같다. 농익은 피로와 와인 한 잔에 정신을 잃었다. 죽은 듯이 잤다. 한 번도 깨지 않은 채 아침을 맞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기와를 얹은 담장 너머로 고양이가 보였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길일까. 따라나서고 싶은 마음을 커피로 달랬다. 연하고 고소했다.


소강고택 사랑방에 묵었다.


아침 메뉴는 송이밥이었다. 봉화의 두 가지 명물 중 하나였다. 놀랍게도 거기서 은어를 먹을 수 있었다. 회가 아니라 구이였다. 가격이 범상치 않았지만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은어는 마치 전어나 정어리의 중간 어딘가처럼 생겼다. 구이라 그런지 고소했지만, 수박 향이 나지는 않았다. 불길에 모두 날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별수 없는 일이었다.


송이밥과 은어구이


두 번째 날 첫 번째 일정은 부석사였다. 불국사나 용궁사처럼 유명한 사찰이었다. 그래서인지 전에 가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올라가는 길을 따라 판매대가 늘어서 있었다. 사람이 없어 고요했다. 아마 성수기에는 시장처럼 보일 것 같았다.


부석사는 아름다웠다. 연예인이 유명세를 타고 더 예뻐지듯 절도 그래보였다. 화려하게 칠한 불가의 문양이 눈길을 끌었다. 지나온 만큼 다시 세월이 흐르면 그곳은 어떻게 될까. 돌아 나오는 길, 힐끗 바라본 목조가 수척해 보였다.


부석사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은 카페에 앉아 여유를 부렸다. 나는 차가운 우유 차를 마셨다. 달콤하고 민트향이 났다.


이틀 동안 특별히 즐거웠던 것 같지는 않다. 고생이라면 고생, 실패라면 실패였다. 은어도 사실 못 먹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봉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썩 흡족했다. 지금도 마음이 충만하다. 아마 출발했던 순간에 나는 이미 만족했던 것 같다. 어쩌면 세월에 씻겨 예뻐진 옛 기억만큼 좋은 것은 이제 드물겠지. 그렇지만 여운을 따라 언제든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카페 하망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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