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고추장 제육볶음
나는 욕은 매우 감정적이고 어쩌면 창의적인 언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에 다닐때는 주변에서 말하는 것마다 욕을 곁들이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욕을 상대방에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어떤 사람들의 경험을 들을 때, 감정이입이되어 한 적은 많다. '걔 미춋네. 야 미쳤다. 미친 놈이네'. 이런 식이었다.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내에 상대방의 기분을 망칠 수 있는지, 발끈하게 하는지 연구한 욕들이 많다. 그건 아주 짧은 시간에 벼랑 끝에 있는 감정을 해소해야하기 때문에 평의할 수 없는 언어다. 어쩌면 극적이라고나 할까. 그런 언어가 오가는 것이 문제를 잘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까. 다만 이렇게 생각하기때문에 내가 노잼일 수 있다.
욕을 상대방에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 돌아올지 짐작해보았기 때문이다. 가는 말이 험상궃으면 오는 말 역시 평범하거나 예쁘지 않다. 그걸 감당할 멘탈이 안된다. 나는 그런 부정적인 기운을 받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 누울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왜 미친놈인지 고민해볼 것이다.
욕은 통용되는 언어이므로, 언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언어는 굳이 말로 내뱉지 않아도 느껴질 때가 있다. 얼마 전에 회의를 했는데, 나를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누군가를 향해서 눈으로 욕하는 사람을 봤다. 평소에는 온순한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업무를 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부분이 그를 건드린 것이다. 그는 잘 정리해서 말을 가져왔지만, 눈은 분명히 상대방을 향해 욕하고 있었다. 너는 나의 오늘 집행 대생이야. 미사일 장전 준비를 하듯, 그는 빠르게 엔진을 손보고 있었다. 그건 몇 개의 자동 버튼을 설정해서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으로 미사일의 위치를 겨냥하고, 마지막으로 미사일이 발사될 수 있도록 불을 붙인 활촉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고나 할까. 다행히 그는 활을 거두었다. 그는 속으로 얼마나 많은 욕을 했을까. 이기기 위해서일까. 자신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생각한대로 되지 않아서일까.
그의 분노가 느껴지는 순간, 어쩌면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혼잣말로 욕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회사를 다녔던 시절에는 가끔 혼자 있을 곳이 필요했다. 점심때 회사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카페에 자주 갔었다. 2층에 있는 그 카페에는 흡연실이 있었다. 카페 안에서 흡연실이 잘 보였다. 거기에서 벽을 보고 중얼거리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자를 종종 보았다. 어떨 때는 너무 궁금해서 흡연실에 들어가 보았는데,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욕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마치 주술사가 주술을 외우 듯 리드미컬한 분노를 벽을 향해서 연기와 함께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담배 연기 때문에 어지러웠지만,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상대방에게 또는 혼자 있는 시간에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공공장소인 카페의 흡연장소의 벽을 향해 욕을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타협했을까. 타협이라하기에는 너무 자주였던 것 같다.
15년 정도 전에는, 늦은 저녁 지하철에서 담배를 피는 여자를 봤다. 검정색 옷을 입은 사람이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연초를 꺼내들고 담배를 폈었다. 그 연초는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총처럼 보였다. 연초에 불을 붙이자 발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분노의 대상이었을까. 내 분노에는 내가 솔직한가. 아무래도 제대로 된 욕이 잘 나오지 않는다. 라고 고추장 제육볶음을 먹으면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