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정원에게
오랜만에 신설희의 '묻고 싶어'를 듣는다. 정원아 너도 내 이야기를 했으니―너는 내 이름까지 그대로 적었잖아―그러니 나도 네 이야기를 해도 될까. 일기장에 적혀 있는 문장들을 죄 옮겨적고 나니 우리의 추억이 너무 많아서. 많이도 지웠다. 네가 얼마나 나한테 못되게 굴었는지는 적지 않을게. 너 원래 못된 애잖아.
2024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계절과 시기마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그저 그런 삶. 크리스마스가 싫어진 것은 2024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다. 다들 웃고 즐기는데 나 혼자 골방에 틀어박히게 되니까. 아버지가 '드디어'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하던 나의 모습처럼, 다들 웃으며 눈이 내리기를 고대하니까. 꼭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날처럼.
과거, 다시 현재. 별거 아닌 일들로 신경이 예민해진 요즘과 생각보다 이른 시간. 시절 인연이라 판단되는 무엇으로부터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받을 수 있을까 가늠하며 무기력함을 느끼는 요즘. 그러나 근래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일들이 꼭 그대로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것이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좋은 말로는 자기 확신, 나쁜 말로는 근거 없는 자신감.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은 없다. 내 마음처럼 안 되는 일들은 그만큼의 가치가 없는 일들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돌이켜보면 당시 내가 그토록 원하던 모든 것들이 꼭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원과의 관계도 그랬다. 정원과 친해진 뒤로, 정원은 나에게 '왜 늘 깨어 있어?'라고 묻고는 했는데, 나는 정원이 나를 보고 싶어 할 때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한동안은 꼭 정원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잠들고는 했다. 정원은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고, 일부러 잠든 척을 하고 잠든 내게 연락하고는 했다. 그러면 늘 잠에서 깬 나는 핸드폰에 온 정원의 연락을 보며 절망하고는 했다.
우리는 서로의 남모를 음침함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정원과 나는 서로의 인스타그램 알람을 죄 켜놓고 서로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확인하는 것을 좋아했다. 애초에 이런 행동들을 숨길 생각도 없었으므로 나는 그 애가 내게 하는 모든 행동이 좋았다.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나는 늘 정원의 모호하고 애매한 면에 끌렸고, 그 면을 싫어했다. 어느 날 정원이 나에게 노래 한 곡을 보내왔다. 지바노프의 곡 We (OUI). 이 곡의 노래 가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가사가 꼭 우리 사이 같다던 그 애의 작은 고백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테지만 고작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만 표현했던 정원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솔직했던 고백. 한동안 정원의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러닝을 하던 도중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아직도 정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애매했던 만남처럼 명확한 이별도 없었으니 애초 정원의 흔적을 지울 생각도 없었고, 지울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낡은 나의 핸드폰 곳곳에서 그 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 노래 취향이 달랐음에도―실은 아주 사소한 모든 취향이 달랐다. 반대의 사람에게 끌리는 것처럼 나는 정원의 모든 취향이 멋지다고 생각했다.―음악 듣는 것은 좋아하던 우리였기에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려 했다. 우리는 연락하고자 하면 연락할 수도 있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둘다 늘 괜한 자존심을 부렸다.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텐데. 우리는 친구 사이가 아닌 친구의 겹지인으로 남는 것을 선택했다.
모든 것이 달랐던 우리였으나 못된 면은 닮아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서로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교묘하게 피해 가며 모르는 척을 했다. 그리고 은근히 드러나는 실망감에서, '저 사람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와 같은 사실들을 가늠하며 티 나게 기꺼워하고는 했다. 정원은 내게 져주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도 조금 더 좋아하고, 조금 더 노력하는 사람은 있었다. 나는 정원처럼 영리하지 못해서 늘 정원보다 더 티가 났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불확실성에 나는 분명하게 지쳐가기 시작했고, 나는 더 이상 관계를 노력하지 않았다. 정원은 우리의 관계에서 늘 노력하는 사람이 내가 되기를 바란 것 같다. 그 애는 늘 먼저 다가왔지만, 내가 하는 연락에는 쉽게 답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정원에게 3번의 연락을 하면 정원은 늘 그 중 한번을 답하고는 했다. 나는 정원과의 관계에서 진중함을 원했고, 그 애는 재미와 즐거움을 원했으면서도 이 관계가 너무 빠르다고 말한다면 나는 당최 어떻게 해야 했을까. 조금 더 진지해지자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 친구지?'와 같은 고리타분한 말을 꺼낸 새벽의 연락이 조금은 우습게 기억된다. 우리가 원하는 관계의 방향성이 너무도 달랐고, 붙잡고 있던 끈을 계속 잡고 있기에는 내가 너무 빨리 지쳐버린 탓일까.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당시에는 억울함이 있었다. 간절한 것들은 다 내 손을 떠나가니까. 나 스스로 놓아버리면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혹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놓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내가 놓으면 다 끝날 텐데. 저 사람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텐데. 이런 소모적인 관계를 왜 이렇게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것인지.
먼저 관계를 놓아버린 것으로 인한 것일지, 정원은 나에게 크게 실망했다. 우리 사이의 규칙을 어긴 사람처럼 그렇게 나를 대했다. 썸타는 사이에서 내가 애인이라도 생긴 사람처럼 굴었다. '내가 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와 같은 서운함을 표명하는 말은 우리 관계에서 의미가 없다. 내가 정원을 좋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정원은 꼭 전경린 작가의 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의 규처럼. 사랑한다고 말하면 지는 내기를 제의해 놓고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규처럼 굴었다. 내가 그를 규와 같다고 생각한 것처럼 정원도 나를 규와 같다고 생각할까. 난봉꾼, 사기꾼. 여우 같은 정원과 여우와는 먼 나.
그러나 다시금 이렇게 그 애가 바보 같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나도 아직 정원을 좋아한다.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게 되면 내 일기장을 보여줄게. 우리는 원래 그런 사이잖아. 나는 늘 과하게 솔직해야 한다고 믿고, 너는 모든 걸 다 감춰놓고 내가 그걸 파악하는 것을 좋아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