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좋아하세요

때로는 공연과 사귀고 싶다

by 한독언

좋은 감정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싫은 것들과 힘든 경험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늘어놓고서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단순히 '너무 좋다!'라고만 일축해 버리는 게 싫다.


나름 긍정적인 사람인데, 브런치에 올리는 일기들만 읽으면 나는 너무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 같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입체적인 사람이 아니다.


작은 변명을 하자면, 그간의 일기들은 내가 뭐라도 되었다고 착각했던 2024년에 따라 있다. 크게 성장통을 앓았던 시절이라 이 시절의 나는 나만 비난하고 나만 비판할 것이다. 실은 지금도 그때와 거진 다름이 없지만, 지금은 어떤 일들에 있어 무던하게 잘 넘기는 법을 나름 터득한 것 같다. 그리고 믿기지는 않겠지만 이런 일상에서도 여유를 느낀다.


실제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던 2025년을 겪고 나니 다시 일어서는 법도 배웠다. 파도처럼. 최근 속초로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 바다와 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늘 바다에 잠겨 죽고 싶었는데, 뮤지컬 <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에서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파도는 계속 쉼 없이 밀려오는데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자리에 서서 뛰어오른다.'이 가사처럼. 나는 아직도 많이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일어설 수 있는 법을 배웠다.


여전히 누군가는 나를 미련하다고 한다. 그러나 공연을 하면서, 잃은 것들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 지워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잊어버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그저 잊어버리겠다는 다짐도 했다. 공연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영원히 이 행복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공연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은, 더 이상 공연으로 인해 넘어지고 싶지 않다는 욕심 때문에. 너무 좋아하는 것들이 무가치한 것들로 인해 싫어지는 것이 싫다. 그러나 계속 곁다리를 걸친 채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여전히 공연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공연을 좋아한다. 공연을 좋아하는 이들을 좋아한다. 공연을 만들어가는 주변인들의 열정과 애정을 사랑한다. 그냥 그대들이 좋다는 고백 같다. 공연이 좋다. 좋다는 말을 한번 시작하니 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때로는 공연과 사귀고 싶다. 공연과 결혼을 해서 평생을 함께하고―분명 안정적인 배우자는 아니겠지만―싶은 것도 같다. 혼인서약서에 빨리 사인을 하라고 닦달하고 싶다. 지문도 실체도 없는 이 공연과. 그러니 내가 공연을 더는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이들의 코를 때리고 싶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었다. 못된 이들에게 죽으라고 비난하고 싶지만, 이제는 남을 미워하는 시간도 귀찮다. 나는 나를 보필하는 시간도 부족하다.


처음으로 공연을 올렸던 것은 중학생 때. 당시 음악 선생님은 뮤지컬을 몹시 사랑하시는 분이었고, 일반 중학교였음에도 학교 행사를 위해 모든 반이 20분 남짓한 뮤지컬을 만들어야 했다. 우리는 당시 <윤동주, 달을 쏘다.>의 넘버들을 인상 깊게 들었기에 시인 윤동주를 주제로 했고, 나는 프로듀서이자 소품 담당이자 작가였다. 공연 속 배역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이후 가장 먼저 총에 맞고 순사에게 끌려가는 역할이었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연기는 한번 배워보고 싶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말하길, 나에게는 연기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조언. 떳떳하게 살아온 것도 아닌지라 무대에 서고 싶다는 욕심은 없다. 그저 막연하게 연기를 해보고 싶다. 텍스트를 다르게 해석하고 발산하는 모습에서 흥미를 느낀 것일까. 혹은 연기를 하는 이들의 눈동자를 사랑해서 이런 욕심이 들었을까.


이후 공연에 대한 흥미의 시작은 단순했다. 언니와 다툰 후 우리는 거의 3년가량을 대화 없이 지냈다. 처음에는 불편했으나 금방 적응했다.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나보다 일찍 성인이 된 언니였다. 물론 엄마를 통해. 우리 둘이 대화하지 않는 기간에도 가족들과는 무던히 잘 지냈다. 가족여행도 꽤 여러 차례 다녀왔다. 물론 이제는 이 기간을 통해 언니와 다투지 않는 법과, 다툰 후 해결하는 법을 깨달았다. 나와 언니는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으하하―이제는 서로가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안다.


햇살이 좋던 봄의 보라매 공원. 언니와 엄마, 그리고 나는 공원을 한참 동안 걸었다. 언니는 엄마―3년간 인공위성 같은 역할을 해주셨다.―를 통해 '00이 이 공연 좋아할 것 같은데 보러 갈 시간 있나?'하고 물었다. 처음 나는 시간이 안 된다며 일축했지만, 어느 날 정말 갑자기. 우리 사이 3년이라는 공백은 없었던 사람처럼 언니와 혜화에 가게 됐다.


인생 처음으로 공연의 성지인 혜화에 갔을 때는 혜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유년 시절 잠시 혜화에 살았던 기억이 있었는데도, 대학로에 대한 첫 기억은 중학생 때 학교 단관을 통해 관람했던 뮤지컬 <담배 가게 아가씨>. 뒷자리에서 계속 내 머리를 발로 차며 시비를 걸었던 동급생이 떠오른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 난리를 피웠으니, 처음 본 대학로 공연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 않았다. 사실 그때 내가 보고 싶던 소극장 뮤지컬은 <담배 가게 아가씨>가 아니라 <쓰릴 미>였다.


사실 지금도 혜화의 거리는 어렵지만, 고등학교 진학 이후 숙제 수행을 위해 방문한 혜화의 거리는 완전한 초행길이라 더욱 복잡하게 느껴졌고, 건물은 다 비슷한 것 같았다. 한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근 20분 정도 극장을 찾아다니던 기억으로 다시 한번 혜화에는 흥미를 잃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언니와 함께 다시 방문한 대학로. 성인이 된 언니는 혜화의 거리를 아주 잘 알았다. 소극장에 대한 매력을 온전히 느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암전, 어둠 속에서 무대 위로 걸어들어오는 배우의 발소리와 사람 형체가 보였다. 조명이 켜지고, 배우가 눈앞에 등장한 순간. 나는 저 무대 중앙에 선 배우가 언니가 좋아하는 배우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는 이미 눈앞의 배우를 좋아하고 있었다. 좋아하게 된 것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다. 처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처럼,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당연하게.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를 좋아한 것과 같은 느낌으로 이미 그 배우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 배우가 공연을 할 때마다 한두 번, 혹은 세 번 정도 공연을 관람했다. 이후 성인이 된 이후에는 공연을 관람하는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일주일에 한 번씩 보는 것은 당연한 처사가 됐다. 티켓팅에 실패하고, 내가 보고 싶은 회차의 공연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비정상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그렇게.


학창 시절 좋아했던 대극장 공연은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관람 당시에도 낡은 부분이 있던 공연이라 한창 예민했던 나를 굉장한 악플러로 만들었지만, 넘버 '비난'을 생각하면 아직도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내가 늘 농담처럼 말하는 '아냐 난 그저 단 한 사람만 사랑해.'라는 말은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기인한 것이다.


중독적인 마음으로 공연을 본 것은 2년에서 3년 정도. 제작자로 참여하기 전까지의 일이다. 그렇다고 공연을 하면서 그렇게 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어린 나는 공연을 보지 않으면 몸에서 사리가 나올 만큼이나 약간 미쳐있었다.


근 3년 전, 인스타그램에 좋아하는 공연의 스태프 모집 공고가 올라온 것을 우연히 마주쳤다. 퇴사를 한 이후 상주 프리랜서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연을 할 만큼의 여력은 크게 없었다. 막연하게, '되면 하고 안 되면 말고.'와 같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운이 좋게 그 공연의 팀원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 새로운 친구 사귀는 법을 몰랐던 나는 팀에 적응하는 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연을 만드는 일이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줄 알았던 공연은, 취미를 넘어 종종 본업을 잡아먹고는 했다.


공연을 하며 늘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 변하기 때문에, 공적으로 어떤 사람과는 어떤 대화를 하며 어떻게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또 좋은 점은, 여러 사람을 만나며 정체하지 않는 나 자신을 만난다는 지점에 있다. 처음 공연을 만들어가는 것이 좋던 이유는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세상을 나도 잠시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에 있었다. 그리고 공연을 만들다보니 공연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과, 공연을 만드는 요소들이 좋아졌다.


공연의 텍스트, 배우의 연기,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들의 모습. 배곯고, 잠 줄여가며 왜 공연을 계속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돈이 되는, 돈을 버는 공연이 무엇인지에 대해 골몰하지만, 여전히 공연을 사랑하고 공연을 만들고 싶어 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한다. 어떨 때는 과하게 술을 마시고, 늦은 시간까지 술집에 모여 택시 할증이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모습까지도. 그리고 다음날 이른 오후 공연장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숙취를 호소하는 미련함까지. 공연을 하고 나서 흡연을 시작한 동료들의 불만과 투정까지도. 그것이 어떠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까 나는 늘 그런 모습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실은 싫은 사람이 하면 꼴 보기 싫다.


연극 <잘못된 성장의 사례>를 만나고 나서는 내 희곡을 적고 싶어졌다. 말맛이 살아 있는 연극의 텍스트는 늘 매력적이다. 나는 언제쯤 내가 적은 희곡으로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 어떻게든 되겠지...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바라보는 세상이 궁금해서 시작했던 일이, 그래서 도전했던 일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래서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안다. 공연을 준비하는 4개월 혹은 5개월 동안 짧고 굵게 봐야 하는 군상들에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모르겠다.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마음껏 사랑합시다. 공연을 사랑합시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