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나를 조금은 걱정했으면 좋겠다

by 한독언

영화 <헤어질 결심>의 홍산오 같은 사랑―나 너때매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은 당신 덕분에. 나는 지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다시금, 조금 오래 방황하고 있다. 근래 일주일은 술 없이는 잠들지 못한 날이 더 많았고, 3주간은 꼬박 당신을 생각하느라 아팠다. 잃은 것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려고 누우면 계속 무럭무럭 자라나가는 생각들에. 결국 나는 다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고는 했다. 일기를 적는 지금도 술을 마셨다. 온전히 잠들기 위해.


맨정신으로 계속 고통스러워하느니 차라리 숙취로 인한 두통이 나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피로와 숙취가 뒤섞인 하루를 보내느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가끔은 엉엉 울며 잠들기도 했다.


사춘기라는 것은 하나의 변명거리라도 있는데, 나는 늘 주기적으로 변명거리도 없이 방황했다. 최근 상황이 좋지 않기는 했다. 이에대해 할 말이 많다. 당신에 관해 묻는 이로 인해 나는 2년간 슬퍼하지 않으려 애썼던 시간에 대한 보답이라도 받는 것처럼, 몰아치듯 당신과의 이별을 슬퍼했고, 일은 끊이지 않았고 번번이 취직에는 실패했다.


'당신'의 생각을 제외하고,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또 다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본디 모르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지라 뒤에서 도는 이야깃거리들은 알고 있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한번 듣고 나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잘 감추지 못하는 편이라 내 이야기의 중심에 있던 지인을 만났을 때는 웃음도 안 나왔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늘 과하게 티가 났다. 보고 싶다는 말은 습관처럼―거짓말은 아니었다.―했는데, 그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일주일간은 꼬박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상태를 유지했다. 이럴 때마다 누군가를 곁에 두지는 않으려 했다. 각자의 일상이 있을 텐데, 굳이 내 위태로운 상황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늘 그러하듯 한번 의지를 하기 시작하면 관계는 쉽게 불공평해진다. 무너지는 것은 늘 나였다.


일기장에는 의지하고 싶지 않다고 적었으나, 이후 실망하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일기장에까지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고질적인 습관이다. 혼자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다정한 말 한마디와 엄마의 전화 같은 것들이 나를 단숨에 무너지게 했다.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던 나는 이때 당시 친구가 선물한 와인과 엄마가 사온 치즈를 먹고 있었다.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편한 감정들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혹은 내가 무시하고 있는지 구분조차 하지 못한 채로. '잘 사는데? 생각보다 멀쩡한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전화를 받자마자 나이에 맞지 않게 울었다. 엄마도 울었다. 우리 둘은―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는 분리불안이 있다.―서로가 보고 싶어서 울었다.


관계에서 기대와 실망은 한 끗 차이라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으나 차라리 기대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어느 관계이든 실망은 고질적인 것이지만 나는 나를 실망하게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 힘든 순간에는 특히. 솔직한 욕심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조금은 걱정했으면 좋겠다. 나를 이해해주면 좋겠다. 언젠가 한 번은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크게 울고 나면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만. 그때 나의 곁에 누군가 한 명은 있어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다시 그 사람을 더욱더 사랑하고 말겠지... 큰일이다.


한동안은 타인을 의지하고 싶어 할 것이고 걱정과 심려를 끼치고 싶어 할 것을 안다. 그러나 걱정은 금물이다. 나는 늘 단단해지고 있으니, 내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 약간은 거짓말이다. 모르겠다. 실은 취중 진담이라면 진담일 것, 내 옆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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